글 조성기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3월 4일
ISBN: 978-89-374-3251-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5 · 264쪽
가격: 13,000원
분야 한국 문학
구도자적 자세로 도달한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
“이제 문학과 소설을 가르치는 직업에서 은퇴할 시점에 이르러 오랜만에 소설집을 묶어 내게 되었다. 밤을 새워 가며 이 소설들을 쓰는 시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득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세월호 사건과 유병언의 처연한 죽음, IS의 테러, IS에 대한 강대국들의 막강한 공습 들을 보면서, 그리고 친지와 지인들의 부고를 접하면서 정말 우리 인생은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구나 하는 느낌을 더욱 받게 되었다.
인생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거라면 소설도 아슬아슬하게 쓰고 있는 것이리라.“
-작가의 말에서
선인장과 또, 또, 또ㅇ
작은 인간
금병매를 아는가
내가 태어나던 날
있을 수 없는 고백
미라놀이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작가의 말
해설_감당(堪當)과 담당(擔當)의 삶/ 이경재(문학평론가)
■감당과 담당의 윤리로 바라본 ‘세월호 사건’
문학과 종교의 접점을 탐색하며 한국 문학의 독특한 지평을 열어 온 작가 조성기의 소설집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가 출간되었다. 2015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한 단편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를 포함해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에는 ‘세월호 사건’처럼 현실에 밀착한 작품을 비롯해 「작은 인간」, 「미라 놀이」 등 전족과 페티시즘을 통해 인간 본성을 탐색하는 작품, 「금병매를 아는가」, 「선인장과 또, 또, 또ㅇ」 등 작가로서의 자성적 특징이 두드러진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삶의 실상 그대로를 끌어안는 ‘감당’과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담당’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배경으로 ‘담당’의 윤리가 결여된 자들이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악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표제작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가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어떤 작품보다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이 소설은, 주인공 진혁이 서울을 떠나 부여에 머물게 된 사정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소기업 과장으로 일하던 중 구조조정 임무를 맡게 된 진혁은 고민 끝에 15명을 권고 사직하는데, 그중 한 명이 목을 매고 자살하면서 사장과 더불어 살인자로 낙인찍힌다. 자살한 직원의 아내는 1인 시위를 하며 진혁을 압박하고, 충격으로 방황하던 진혁은 1년 휴직계를 내고 홀로 부여에 내려와 고요한 시간을 보낸다. 부여에서 진혁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백제문화단지를 둘러보기도 하고 명상센터를 다니며 명상과 유체이탈을 배우기도 하던 중 세월호 참사라는 또 다른 충격에 빠지고 만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충격과 공포를 느끼던 진혁은 명상센터 사람들과 함께 유체이탈을 통해 세월호 선체에 다가가 보기도 하고, 사고가 났을 무렵의 청와대에 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담당’의 윤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너무나도 당연한 윤리마저 저버린 자들에 대한 작가의 분노 및 책무가 드러난 작품이다.
■ 압도적 교양과 지식이 돋보이는 소설
조성기 소설에서 자주 발견되는 지식에 대한 탐구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거의 모든 작품에 일반인들은 쉽게 알 수 없는 동서고금의 수준 높은 교양들이 마치 누구나 아는 평범한 일인 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가령 「미라 놀이」에서 펼쳐지는 고대 이집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이나 풍습에 대한 이야기는 지식의 향연이라기에 모자람이 없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 반복되어 등장하고 있는 중국의 전족 풍습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전문가적 수준에서 펼쳐진다. 「있을 수 없는 고백」에서는 소설가가 “제가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 없이 이러이러한 것을 잠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십시오. 자, 이제 어느 정도 그 사항에 대해 아셨지요? 그럼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라는 식으로 소설을 써 나갈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조성기의 소설이 방대한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쓰여 있음을 방증한다.
■전족과 페티시즘에 대한 탐구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중국의 전족 풍습이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번 작품집의 특징이다. 「작은 인간」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 작가는 스무 살 연상인 유명 작가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유명 작가는 ‘나’의 두 발에 집착하는데, ‘나’는 자신의 발을 신발째 움켜쥔 유명 작가를 보며 전족을 만지는 중국 남자들을 떠올린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나’가 쓰고 있는 소설 역시 중국의 전족 풍속에 대한 것이다.
「금병매를 아는가」에서도 소설가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연재하는 소설 「반금병매」는 ‘전족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족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라 놀이」에서 작가인 ‘그’와 이제 막 불륜을 끝내고 이집트로 여행 온 ‘나’가 하고 있는 미라 놀이 역시 전족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콧구멍을 제외한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성적 유희를 즐기는 미라 놀이에서 붕대로 감은 몸 전체는 발에 해당하며, 온 몸을 감고 있는 붕대는 전족한 여인의 발을 감싸고 있는 “하얀 무명 전족 천”의 변형이다.
작품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페티시즘에 빠진 인물들은 팔루스의 상실에 대한 공포에 빠져 있다. 팔루스는 생물학적 기관으로서의 페니스와는 달리, 남녀 모두가 갈망하지만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충만함과 완전함을 함축한 위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페티시즘의 심리학적 발생 원인은 이번 조성기의 소설집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다.
■작가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자성적 소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에는 조성기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자성 소설’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 작가 자신을 인물화하여, 현실의 사실성을 최대한으로 유지하면서 그 속에서 작가 자신의 사회적 실존을 전경화하거나 글쓰기 자체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면모가 더욱 강해진 것이다. 실제로 작품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 중 절반 이상의 소설에 조성기 작가와 유사성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특히 「금병매를 아는가」는 작가가 2003년에 《중앙일보》에 「반금병매」를 연재하면서 겪은 일들을 거의 그대로 서사화한 작품이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작가의 어느 소설집보다 강하게 드러나 있는 이번 소설집에서 독자들은 조성기문학의 근원을 체험할 수 있다.
■추천사
이번 소설집에서 조성기 작가는 수십 년간의 적공으로만 가능한 문학적 개성 위에 새로운 주제 의식을 담아 내고 있다. 그것은 삶의 실상 그대로를 끌어안는 ‘감당’과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담당’의 자세를 조용하지만 뜨겁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치열한 예술혼과 구도자적 자세로 삶과 세상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가 도달한 삶에 대한 성찰의 고도는 불모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구원의 손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 따뜻한 손길은 1971년 등단한 이후 문학이라는 하나의 등불만을 의지해 어두운 길을 오롯이 걸어온 문학적 거장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에서 / 이경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