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베테랑 강사가 들려주는 사물인터넷의 미래
소셜스트럭팅 시대, 우리는 삶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앞으로 세계 최고의 강의들을 온라인에서 무료로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그 강의들은 그 어떤 대학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보다도 더 훌륭할 것입니다.” ―빌 게이츠
큰 조직일수록 거래비용을 줄여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고전적 전략은 오늘날 빠른 속도로 그 힘을 잃고 있다. 인터넷은 거래비용을 한없이 낮췄고, 소셜네트워크는 집단지성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편된 산업 구조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까? 『증폭의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미래를 시민행정(Foldit), 여가(Airbnb), 스타트업(Kickstarter)에까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미래학자이자 경영컨설턴트인 마리나 고비스는 이 새로운 ‘관계 주도적’인 구조 속에서 개인의 삶은 진화하는 기술과 결합하여 증폭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영역은 무료 온라인 교육(TED, Khan Academy)에서부터 크라우드소싱으로 운영하는 무료 생물학 실험실(BioCurious), P2P 대출(Lending Clubs)까지 다양하다. 이제 거의 제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온라인 기반 협업이 가능하다.
혁신적인 개척자들이 사물인터넷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창업, 교육, 의료, 금융, 행정, 심지어 과학 연구에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리나 고비스는 현재진행형의 트렌드를 통해 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한다.
“소셜스트럭팅의 가장 큰 가능성은 우리의 삶과 일에 열정과 자기 주도, 사회적 연줄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경우에는 기존에 제도적 기관이 지휘하고 규정했던 일을 사랑의 노동으로 변모시키게 될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개인에게 고도의 맞춤형 교육이 제공되고 사회 전체가 크고 넓은 교실이 되어 줄 것이다. 의료 보건은 참여 과정으로 변하고 개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증폭시키는 커뮤니티와 전문가 사이의 협력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통치의 경우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왔던 절차가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본문에서
■ 관계 주도적 사회: 사회적 연줄이 상품화되는 시대
‘품앗이’,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어도 누구나 교과서를 통해 배워 알고 있을 것이다. 일손이 부족하던 시절에 대규모의 노동력을 단기에 모을 수 있는 긴요한 방법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교환 노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노동을 사용함에도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이번에 김 씨가 나를 도왔다면 언젠가 나 또한 김 씨네를 도와야 한다. 분명 노동력이 교환되고는 있지만 화폐적 가치로 수치화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교환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저잣거리의 거래에서는 상품과 은화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교환 노동에서는 김 씨와 나 사이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친분과 인맥,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미래의 본질’이 있다고 한다면? 시장경제의 도래와 함께 잊힌 (혹은 그렇게 생각된) 품앗이, 이를테면 ‘도움의 경제’가 새로운 유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일군 ‘관계의 풍요’는 우리의 미래를 열어젖히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다. 소비에트연방 출신 미래학자가 보여 주는 대안적 미래의 초점이 ‘사회 구조’에 맞춰져 있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 삶과 경제가 통합될 미래 사회의 본질을 탐구한다
고전 경제학을 대표하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한다.”는 명제를 내세웠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야말로 부의 원천이자 시장경제의 제 1원칙이라고 주장하였다. 애덤 스미스가 약육강식적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물신화하여 악마적으로 숭배한 건 아니었지만 인류의 미래가 우리의 이기심에 의해 추동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기심만큼 강력한 동기는 없다. 인간의 ‘좀 더 잘 살고자 하는 욕구’가 교환과 경쟁을 불러와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를 이룩해 내고, 장차 그것이 영원한 번영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저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이자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윤리학자였던 애덤 스미스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지극히 순진한 몽상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동안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가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분쇄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자본주의의 위력은 애덤 스미스의 예상을 한참이나 압도하였다. 그야말로 세계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 충분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부의 본질(the Nature of the Wealth of Nations)은 무한한 욕망과 한정된 물질이라는 전제에서부터 이미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사실상 방관자일 뿐인 ‘보이지 않는 손’은 늘 승자를 위해 사역한다. 결국 영원한 번영이란 있을 수 없고, 과도한 부의 양극화로 인해 세계는 총체적인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애덤 스미스식 자본주의는 수정되거나 전면적으로 부인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에 의해 시도된 ‘공산주의 실험’도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또 ‘미래의 본질(the Nature of Future)’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증폭된 개인의 시대: 사회적 자본 구축으로 개인을 살린다
과거의 민간요법은 일부 위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혜를 지니고 있다. 첨단 제약회사들도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전근대적인 민간요법을 종종 참고하곤 한다. 선조들은 화학식이나 분자로 이루어진 성분에 대해선 완전히 무지하였지만 경험을 통해 특정 약초와 열매의 효험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근대인들은 저러한 ‘전근대의 유산’을 미신이라 여기며 불신하였지만 실상 따지고 보니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민간요법을 활용한 암이나 여타 난치병 치료는 더 새로울 게 없다. 우리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은 완전히 낯선 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매우 익숙한 곳에 벌써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라는 질병도 지난 시대의 민간요법, 잊힌 지혜, 좀처럼 보이지 않던 작지만 위력적인 가치들을 통해 치료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자본주의가 새롭게 갱신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마리나 고비스는 “사회적 자본을 되살려야 경제가 산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는 소비에트연방에서 보낸 유년기를 반추하며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인간관계가 주도하는 거대한 비공식 경제에 대해 언급한다. 당시 소비에트의 사람들은 사회적 연줄이라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원을 거래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였지만 이러한 네트워크 자체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하진 않았다. 단지 필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진화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인간관계 중심의 경제 환경이, 새로운 종류의 네트워크가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관 중심의 몰개인적인 세상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줄과 사회적 보상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를 창조하고 있다. 고비스는 이것을 가리켜 ‘사회적 자본 구축’이라 명명한다. 그는 “사회적 모델, 보통 사람 기반 모델, P2P 모델”보다 더 진일보한 개념으로서 이를 검토한다. 이 새로운 사회적 경제는 우리의 글로벌 및 지역 경제 교류 양면에 전례 없는 수준의 친밀성과 연결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재정에서 교육과 보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자본 구축’은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 경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사회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편재가 인간소외를 부추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묵시록적 미래에 새로운 희망이 깃들고 있다. 첨단 기술에 의한 상호작용, 인간관계, 소통의 질적 변화, 즉 ‘사회적 자본 구축’의 출현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우리에게 창조, 학습, 공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증폭된 개인’의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 미래학자가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보여주는 미래 가상 시나리오
『넌제로』의 저자인 로버트 라이트는 “인간이 두 번째 종류의 진화를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에 의한 ‘문화적 진화’를 강조하였다. 한편 『어번던스』의 저자인 피터 다이어맨디스도 전통적으로 값비싼 기술이었던 정보 확산(혹은 정보 접근)이 근래에 들어 급속하게 민주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앞으로의 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키피디아의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베이스 구축, 정치적으로는 ‘아랍의 봄’도 전부 다 정보 확산이 모두에게 개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더불어 『크라우드소싱』(제프 하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그리스 시대의 소규모 아고라를 전 지구적인 단위로 끌어올렸다. 과거엔 소수의 발신자, 혹은 생산자들이 다수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생산과 소비, 수신과 발신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게 되었다. 격하게 말하자면 종전까지의 일방향적 전달은 사실상 허물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백과사전도 ‘내’가 편집하고, 영화도 ‘내’가 제작하며 저자의 작품을 마음껏 비틀어 댈 수도 있게 되었다. 시장경제에 있어서도 공급자와 소비자로 결렬된 이질적 이중 구조는 ‘사용자’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통합되고 있다. 따라서 비즈니스 환경이 바뀌는 것도 이상스러울 게 없다. 제프 하우는 ‘아웃소싱’을 차용하여 대중의 창조성을 경영에 활용하는 ‘크라우드소싱’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일견 고비스의 ‘사회적 자본 구축’과 유사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다. 하우의 ‘크라우드소싱’이 기업 중심의 발상이라면 고비스의 ‘사회적 자본 구축’은 철저히 개인 중심이다. 전자는 기업이나 국가 행정부의 입장에서 대중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하지만 고비스는 ‘개인’이 기업, 혹은 거대 권력 기구처럼 영향을 발산하고 역량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2021년 이후의 근 미래 사회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이 픽션/가상 시나리오는 독자들에게 더 풍부한 상상을 자극한다. 유비쿼터스 무료 콘텐츠로 온 세상이 교육이 된 세상(4장), 엘리트에서 시민으로의 권력이 이양된 뉴아고라 시대의 시민 행정(5장), 폐쇄적이고 비싼 정보에서 공개적이고 폭넓게 접근 가능하게 바뀐 과학 정보의 시대(6장), 정교한 시스템인 인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협업하는 새로운 의료 보건 모델(7장) 등이 그 내용이다.
마리나 고비스는 8장에서 이 상상 불가능한 가능성의 세상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첫째 화폐 경제와 소셜스트럭팅이 공존하는 세상, 둘째 소셜 화폐 경제로 사회적 자원이 상품화되는 사회, 마지막으로 선물사회(膳物社會)로의 복귀라고 내다본다. ‘사회적 자본 구축’은 경직된 교육 현장에서 소크라테스와의 심포지엄을 다시금 가능하게 할까? 우리는 마이크로 참여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까? 과학과 의료는 보다 민주화되고 개방될 것인가? 물론 장담할 순 없지만 그 가능성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의 미래가 고비스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변화의 방향만큼은 틀림없이 일치할 것이다. 개인들의 마이크로 참여로 이루어진 대규모 네트워크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규모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경제 활동에 사회성과 사회적 연줄이 복원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보상과 인센티브, 성장과 통화의 개념이 재정의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와 혁신이 상품이나 시장기반 생산을 벗어나 ‘사회적 자본 구축’을 통한 가치창출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위키피디아와 바이오큐리어스와 같은 ‘사회적 자본 구축’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성장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 구축’과 관련된 도구 및 활동들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폐경제와 ‘사회적 자본 구축’의 공존체계가 그저 장밋빛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공생관계는 사회적 긴장과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전의 시장경제가 ‘사회적 자본 구축’을 통해 치유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시장경제에 의해 ‘사회적 자본 구축’의 근본이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미래는 ‘사회적 자본 구축’의 잠재력으로 말미암아 “시장경제와 선물 경제의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미리 그려보는 2020년대의 상상 불가능한 세상
뤼시엥 페브르의 지적처럼 16세기엔 ‘불가능에 대한 관념’ 자체가 없었다. 때문에 악마와 마술, 천사와 기적이 모두 실재적인 대상이자 사건이었다. 불가능이 없던 시대에 불가능한 현상은 과학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사실일 뿐이었다. 현대의 우리도 마치 라블레 시대의 사람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급격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불가능’을 체감할 수 없는 시대에 다다르고 있다. ‘내’가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다못해 그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16세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실상 ‘마법’을 소유하게 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할 수 없는 일,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을 요구하는 물리적 불가능을 정보 통신의 이기와 사회적 자본의 결합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시대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적 자본, 즉 품앗이와 좋은 평판의 메커니즘이 각종 플랫폼과 전산망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증폭을 돕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기제로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예언을 할 수 없는 한 우리는 장래의 대략적인 방향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미래는 분명 ‘사회적 자본 구축’에 힘입어 전혀 새로운, 그럼에도 우리가 늘 꿈꿔 왔기에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는 갱신될 것이며 우리들 또한 증폭된 개인으로서 새로운 행복과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1 사회적 자본이 개인을 살린다
2 사회적 기술, 사회적 경제
3 화폐의 역할
4 온 세상이 교실
5 시민 행정, 그리스 이상을 실현하다
6 과학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7 치료가 아닌 예방 의학으로
8 소셜스트럭팅: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의 세계
9 미래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