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스스로 해방이 아닌 구속을 욕망하게 만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야만적이고 세련된 지배 속에서
비평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시대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과 신진 영문학자인 매슈 보몬트의 대담으로 구성된 『비평가의 임무-테리 이글턴과의 대화』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글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가장 최근의 비평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한다. 그의 학문적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가 집필한 모든 책의 탄생 배경과 그에 대한 이글턴의 평가와 입장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으며, 레이먼드 윌리엄스, 리비스, 비트겐슈타인, 루카치, 골드만, 알튀세르,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 라캉, 제임슨, 지젝 등 수많은 비평가 및 이론가와 이글턴 간의 개념적 조우 또한 상세히 그려 내고 있다.
지식인은 되도록 광범위한 독자층에게로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다. 이글턴이 경계하는 것은, 유명한 급진적 지식인들이 그들의 의무를 방기하면서 아카데미가 요구하는 담론적 규범들을 묵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이론의 제도화 역사 자체가 인문학을 사회 현실로부터 절연시키고, 그것의 순수성을 작품으로만 한정하려는 정치적 의도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가의 임무는 텍스트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문화적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 속에 비평가로서 이글턴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시대정신에 반항한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이자,
우리 시대의 뛰어난 문학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의 지적 자서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영문학자인 매슈 보몬트가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의 9개월간 나눈 일련의 대담을 엮은 이 책은 이글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집필한 모든 책, 그리고 가장 최근의 비평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고 있다. 초점은 비평가로서의 이글턴의 학문적 여정에 맞춰져 있는데, 근 반세기가 넘는 기간에 걸쳐 이글턴이 실존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일련의 이론적 담론들을 취하여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하고 갱신하고 재정립하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새로운 지적 도전들에 대응하며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 가는 모범적 능력을 보여 주는 이글턴을 만날 수 있다.
지적 유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일랜드계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태어난 이글턴은 14세 무렵부터 ‘좌파 지식인’이 되기를 꿈꾸며 청년 사회주의자 클럽에 가입하고, 케임브리지 영문과에 입학해 당대 최고의 영문학자 리비스의 강의를 듣다가, 리비스의 제자이면서 그를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으로 돌파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만나면서 그의 제자가 되고, 1960년대 후반 구조주의와 정신분석,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이론을 만나고, 이를 섭렵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확고히 유지하면서 옥스브리지의 이단아가 되며, 출간하는 책마다 비평계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이글턴의 저서들을 탐독하고 질문하는 매슈 보몬트의 성실성이다. 그의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인해 이 책은 그의 책들을 몇 권 읽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평생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아온 한 문학 비평가의 학문적 행로를 통해 현대 문학 비평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레이먼드 윌리엄스, 비트겐슈타인, 루카치, 골드만, 알튀세르,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 라캉, 제임슨, 지젝 등 수많은 비평가 및 이론가와의 만남, 지난 50년간 좌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글턴의 개인적, 정치적 반응을 상세히 그려 냄으로써 서구 문학 비평과 근현대 사상에 관한 역사서를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노동 계급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가 리비스주의, 문화 연구, 구조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등 당대의 이론적 물결들을 어떻게 겪어 내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흡수하고 무엇을 거부하는지,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 내는지를 보여 준다.
이론은 곧 실천이자 민주적인 것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이론이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글턴에게 이론은 소수의 전유물이나 전문적인 방법을 요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천 행위들에 대해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론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숙고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저는 이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들에 대해 불편한 질문들을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우리의 습관적인 추정과 실천이 어떤 이유에서든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은 그러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건 현실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거지?’ 하고 물음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습관적인 실천이 광범위한 권력 구조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진정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322쪽)
‘이론(theory)’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그리스어 ‘theoria’가 기본적으로 ‘보다(to look)’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문도 모른 채 뭔가를 습관적으로 하면서 그것을 상식이자 진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론은 ‘볼’ 것을 주문한다. 따라서 이론을 공부하는 가장 일차적인 목적 역시 새롭게 보는 것, 다르게 보는 것, 뒤집어 보는 것에 있다. 살펴볼 수 있는 이론적 자세가 없이는 실천 역시 맹목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글턴은 현상학, 해석학, 기호학,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 이론들을 점검하면서 그 이론의 핵심적 개념과 가치관들을 언제나 그것이 탄생하게 되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수용되고 활용되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바라본다. 이글턴에게 마르크스주의 비평이나 이론은 텍스트를 경유하여 역사와 현실을 거꾸로 해독하고 읽어 내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비평은 어떤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다. 비평 자체의 다양한 조류가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고, 아무리 스스로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해도 비평은 이미 정치적 함의를 불가피하게 담고 있는 문화를 전파하고 해석하는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비평이 새로운 사회적, 지적 참여에 매진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사회에서 정치적 기능을 완수하는 일에 대한 비평가의 책임을 탐구하는 데 전념한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자들이 다수가 된 세계에서
비평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저는 대중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더 많은 관중을 위해 글을 쓰고 싶어요. 실제로 『문학 이론 입문』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대학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이들은 그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현명한 일반 독자들일 뿐이지요. 급진적 지식인은 더 넓은 지지층을 끌어내야 할 의무, 혹은 적어도 자신의 지지층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의무가 있습니다.”(325쪽)
이글턴은 이미 학문적 위치를 확립하고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그런 일에는 관심조차 없고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의 일부로 여기지도 않는 급진적 지식인들을 신랄히 비판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가 대중이 그들의 글을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비판하는 그의 지적은 날카롭고 가차 없다.
‘공적 지식인’이란 학문 연구와 교육이라는 전통적 지식인의 역할에 더해 공적으로 관심사가 되는 일(public affairs)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참여하는 지식인을 의미한다. 이글턴은 오늘날 학계 너머의 영역들을 발견하는 공적 지식인이 극소수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반전 집회, 노동자교육협회의 수업, 노동자 작가 모임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국 무슬림 집단을 향한 마틴 에이미스의 끔찍한 인종주의적 공격에 대한 논쟁이 보여 주듯 기득권 세력에 맞서길 주저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글쓰기와 대중적인 글쓰기를 병행하는 이글턴의 관점에서 문학 비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그 주변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경시할 만한 분야가 아니다. 이글턴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내내 전통적 지식인의 고고학을 재구성하고 유기적 지식인에게 열려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을 모색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계속해서 추궁해 왔다.
전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 9·11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테러리즘과 종교적 근본주의의 번성, 핵 개발과 기후 변화의 위협 등으로 오늘날의 세계는 전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재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글턴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이론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글턴은, 윤리와 정치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이다. 전자가 필요, 욕망, 질, 가치 같은 문제를 탐구한다면, 후자는 그러한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관습, 권력 형태, 제도, 사회적 관계를 점검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윤리학을 “타인 또한 그 본성을 실현할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는데, 바로 이러한 윤리가 실제로 사회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변환시키는 일을 수반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위대한 비평가란 “자신의 비평적 분석을 토대로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저 벤야민의 금언에 대한 전형적인 예를 이글턴을 통해 보여 준다.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서문
1 샐퍼드|케임브리지
2 신좌파|교회
3 개인|사회
4 정치|미학
5 비평|이데올로기
6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7 이론|실천
8 옥스퍼드|더블린
9 문화|문명
10 죽음|사랑
결론
주
함께 읽을 책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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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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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혁 | 201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