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Marcovaldo ovvero le stagioni in citta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4년 11월 3일
ISBN: 978-89-374-4335-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0x210 · 176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이탈로 칼비노 전집 5
분야 외국 문학, 전집/선집, 이탈로 칼비노 전집 5
소설의 미로를 종횡무진하며 현대 환상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거장
잿빛 대도시 속 사람들 사이를 무지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자연을 그린 생태 우화
▶ 칼비노는 알베르토 모라비아,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20세기 이탈리아의, 그리고 유럽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이다. —《뉴욕 타임스》
▶ 우리는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고 애쓰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 가기만 한다. 환상 소설을 통해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이탈로 칼비노
▶ 칼비노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낯설고 외로운 탐사자로서, 상상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주인으로서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에도 언제까지나 빛날 것이다.—《인디펜던트》
1. 도시의 버섯 7
2. 벤치 위의 야영 12
3. 시청의 비둘기 22
4. 눈 속으로 사라진 도시 26
5. 벌침 치료 33
6. 어느 토요일, 태양과 모래와 낮잠 39
7. 도시락 45
8. 고속도로의 숲 51
9. 좋은 공기 56
10. 소 떼와의 여행 63
11. 실험실의 토끼 70
12. 잘못 찾은 정류장 82
13. 강물이 가장 푸르른 곳 92
14. 달과 냑 97
15. 비와 잎사귀 105
16. 마르코발도 슈퍼마켓에 가다 114
17. 연기, 바람, 비눗방울 121
18. 혼자만의 도시 130
19. 집요한 고양이들의 정원 135
20. 산타클로스의 아이들 150
작품 해설 163
작가 연보 169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이 민음사 이탈로 칼비노 전집 5권으로 선보인다.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은 1980, 90년대에 ‘꿈꾸는 노동자 마르코발도’, ‘나의 사랑 마르코발도’ 등의 제목으로 한국에 출간된 적 있으나, 이번에 이탈로 칼비노 재단과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후 새로이 출간되었다.
이탈로 칼비노는 환상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학적 실험을 거듭한 작가다. 그의 스타일은 초기의 동화적이고 우화적인 스타일, 선조 3부작으로 대표되는 ‘환상 문학’ 스타일,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적 문학 실험이 돋보이는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은 그중 동화, 우화적 스타일을 견지하면서도 본격적으로 환상적 요소를 활용하는 칼비노 초중기 문학 스타일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에서 칼비노는 특유의 환상적 시선을 대도시의 삶에 프리즘처럼 갖다 댄다. 이 소설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작용이 나타나던 1950, 6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환경오염, 자연친화적인 삶, 대도시 공동화, 대가족을 부양하는 서민 가장의 삶, 반려동물 문제 등 현대의 한국 독자에게도 큰 공감을 주는 우화로 가득하다. 스무 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 안에서 꾸준히 유지되는 관심사는 ‘자연’과 ‘도시’이다. 마르코발도가 도시에서 보내는 다섯 번의 환상적인 사계절을 따라 가다 보면 가슴 짠한 감동과 함께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상상력을 꽃피운 칼비노의 문학적 열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마르코발도는 여섯 아이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이다. 아내 도미틸라와 아이들과 함께 대도시의 반지하 단칸방이나 옥탑방에서 거주하며, 도시에서 갖가지 노동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시청에 소속되어 눈을 치우거나 공장 근로자로 박스를 나르는 단순 노동이다.
「도시의 버섯」에서는 마르코발도가 출근길에 가로수 밑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배고픈 아이들과 함께 버섯을 따 맛있는 버섯 요리를 먹을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그러나 막상 버섯을 따러 가자 도시의 청소부 역시 버섯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앞 다투어 버섯을 따지만, 결국 그 버섯으로 인해 시련을 겪게 된다. 「벤치 위의 야영」은 여름이 배경이다. 마르코발도는 좁고 답답하고 후텁지근한 반지하 방에서 벗어나 상쾌한 야외 벤치에서 잠을 청한다. 바람이 불고 분수의 물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편히 자려고 하지만, 공원에서 다투는 연인의 말소리, 번쩍이는 신호등 불빛과 공원을 감시하는 경비원 때문에 계속 방해를 받고 만다.
「벌침 치료」에서는 마르코발도가 잡지에서 벌침의 효능을 읽고 나서 벌을 직접 잡아 지인들의 몸에 벌침을 놓으며 돌팔이 의사 행세를 하는 일화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느 토요일, 태양과 모래와 낮잠」에서는 마르코발도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를 위해 모래찜질을 하러 강가에 간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바지선에 실린 준설기와 기중기가 한창 공사용 모래를 한가득 채취 중이다. 「도시락」에서 마르코발도는 아내가 싸 준 맛없는 도시락을 먹다가, 부잣집 도련님이 먹기 싫어하는 고급 요리와 바꿔치기한다. 「고속도로의 숲」에서 마르코발도와 아이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고속도로에 설치된 거대한 나무 광고판을 톱으로 잘라 집으로 가져온다.
「좋은 공기」에서는 아이들이 반지하 방에서 지내느라 폐가 약해져 콜록대자, 의사의 권고로 교외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며, 「강물이 가장 푸르른 곳」에서는 살충제 범벅의 채소와 야채, 가짜 재료로 만들어진 치즈나 계란, 신선한 것처럼 색칠을 한 생선 같은 못 믿을 음식을 피해 가족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먹이러 직접 강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선다. 「마르코발도 슈퍼마켓에 가다」에서 마르코발도의 가족은 다른 중산층 가족처럼 거대한 슈퍼마켓에 가서 각양각색의 상품을 구경한다. 그들은 이것저것 마구 카트에 집어넣으며 흥분하지만, 계산대 앞에 이르자 돈이 없는 그들은 뒤돌아서 카트를 끌고 멀리 도망치고 만다.
「연기, 바람, 비눗방울」에서 마르코발도의 아이들은 도시 주택의 우편함에 꽂힌 세탁용 세제 할인 쿠폰을 모아 세제로 교환한 뒤 되팔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어느 날 아침 가득 쌓인 세제를 처리하기 위해 강가로 가서 세제를 강물에 다 뿌려 버린다. 세제가 섞인 강물에서는 거품이 일며 비눗방울을 뿜어 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산타클로스의 아이들」에서도 역시 아이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회사의 말단 사원인 마르코발도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거래처에 선물을 돌리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곳곳을 돌며 선물을 전달하다가, 어느 회사 회장의 으리으리한 집에 방문한다. 거기서 모든 것을 다 가진 회장의 아들이 우울해하는 것을 본 마르코발도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라며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며, 그 선물로 인해 마르코발도는 회사에서 잘릴까 봐 두려움에 떨게 된다.
무거운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의 환상
자연을 꿈꾸는 도시민의 영원한 우화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쳐 잿빛 건물과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자연의 숨결을 찾아 헤매는 모습, 세제의 무분별한 남용이나 공장 폐수 유입으로 인한 강물 오염,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점점 살 곳을 잃어 가는 작은 동물들, 여름 휴가철이 되자 갑자기 한산해진 도시의 대로들과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는 겨울의 함박눈으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에는 자연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연을 느끼고 싶어 하는 도시민의 향수로 가득하다. 마르코발도의 모험은 ‘산업과 문학’에 대한 이탈리아 지성계의 논쟁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활동적인 좌파 지성인이자 작가로서 칼비노는 현실의 냉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거나 비판하는 대신, 마르코발도의 모험을 통해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환상적이고 완화된 우화 같은 방식으로 전달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도시의 작은 공원에서 풀잎과 꽃을 보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마르코발도의 일화는 마음 깊이 공감을 주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이 작품은 환상성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찜질을 하던 바지선이 흙더미에 부딪치면서 마르코발도가 허공으로 높이 날아가고,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국제선 비행기를 버스로 착각해 타고, 화분에 담긴 화초가 단 며칠 만에 엄청나게 자라고 잎사귀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떨어지기도 한다. (중략)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칼비노의 독창적인 관점과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현실의 무거움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작품 해설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오, 여기에서, 낮고 무더운 우리 방이 아니라 이 신선한 녹음 한가운데서 잠잘 수만 있다면! 온 식구들의 코 고는 소리, 잠꼬대하는 소리, 저 아래 도로에서 전차가 달리는 소리가 아니라 여기 이 고요함 속에서 잠잘 수 있다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덧창문을 닫아 만든 인공적인 어둠이 아니라, 여기 이 자연스러운 밤의 어둠 속에서 잘 수 있다면! 오, 눈을 뜨면서 나뭇잎과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매일 이런 생각과 함께 마르코발도는 막일 노동자로서 하루 여덟 시간에다 잔업을 시작해야 했다.(12~13쪽, 「벤치 위의 야영」)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서 마르코발도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상자를 옮기는 창고의 곰팡이 냄새를 떨쳐 버리는 것 같았고, 자기 집 벽의 습기 찬 얼룩, 조그만 창문 곁 전등 갓에 내려앉은 노란 먼지, 밤이면 엄습하는 기침을 떨쳐 버리는 것 같았다. 이제 아이들도 벌써 그 햇살과 녹음에 동화된 것처럼 덜 병약하고 덜 노랗게 보였다.(58쪽, 「좋은 공기」)
아주 단순한 식품 안에도 갖가지 위협과 함정, 속임수가 담긴 시절이었다. 신문에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시장에서 발견된 끔찍한 것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치즈는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졌고, 버터는 스테아린 양초로 만들어졌고, 채소와 과일에는 살충제의 비소 성분이 비타민보다 더 많이 농축되었고, 닭을 살찌우기 위해 특수 합성 알약을 잔뜩 먹였는데, 그런 닭다리 하나를 먹은 사람을 아예 닭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92쪽, 「강물이 가장 푸르른 곳」)
마르코발도는 바닥에서 떨어진 잎들을 치우고 건강한 잎들의 먼지를 닦아 주었으며, 화초 뿌리에다 물뿌리개로 물을 반 통 뿌려 주었다. 물이 넘쳐 바닥 타일을 더럽히지 않도록 천천히 뿌렸고, 화분의 흙은 금세 물을 빨아들였다. 이 단순한 행위에다 그는 자신의 다른 일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마치 가족 중 한 사람의 불행에 연민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중략) 왜냐하면 회사의 벽들 사이에 놓은 비쩍 마른 그 화초가 불행한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106쪽, 「비와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