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침묵의 질병 ‘고독사’를 정면으로 다룬
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다 가졌는데 살아야 할 이유만 없는,
까다롭고 냉소적이며 마초적인 노인에게 찾아온 마지막 첫사랑
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모나코』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977년 제정된 <오늘의 작가상>은 한수산, 이문열, 정미경 등의 거장을 배출하며 한국문학을 선도해 왔다. 올해 주인공 김기창은 수상작 『모나코』를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로, ‘고독사’라는 실존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개성적인 인물과 고유한 문체로 탁월하게 표현했다. 특히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주인공 ‘노인’의 철학적인 말과 신선한 비유 들은 한국문학에 흔치 않은 영역인 블랙유머를 성공적으로 구사하며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하고 페이소스 넘치게 다뤘다.
『모나코』는 좋은 집에 돈도 많고 취향도 고급인 할아버지, 즉 남들 눈에는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골드 실버’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전부 누리고 있지만 정작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은 가사도우미‘덕’과 아내 같고 친구 같고 딸 같은 사이로 지내던 중 이웃의 젊은 미혼모 ‘진’을 좋아하게 된다.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꿈틀거리자 노인은 당황하고, 그런 한편 세상을 좀 살아본 자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진’역시 가볍지도 무겁지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노인’의 관심이 싫지 않다.
『모나코』는 어느 노인의 생애 마지막 겨울을 배경으로 기묘한 삼각관계와 죽음에 대한 소묘를 쓸쓸하게, 그러나 생동감 넘치고 유머러스하게 전해 준다.
■현대적 죽음, 고독사
일본에서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노인과 젊은이를 하우스 메이트로 연결해 주는 동거 제도를 만들었다. 고독사 때문이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2013년 한 해 동안 보고된 고독사만 1717건. 대부분 주민의 신고로 알려지며 그 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외롭고 쓸쓸한 죽음 고독사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혼자 사는 사람이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 안겨진 침묵의 질병이다. 『모나코』는 독거하는 ‘노인’의 죽기 전 마지막 한 계절을 다룬 이야기로, 혼자만의 죽음과 혼자만의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환부와 인생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준다. “힘 빠진 수사자는 무리에서 쫓겨나 초원에서 홀로 죽는다. 사자에게는 어울리는 죽음이지만 나약한 인간에게는 더없이 슬픈 죽음이다. 나는 노인의 고독한 죽음을 통해 비정한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줄 수 있겠다고 여겼다.”‘작가의 말’처럼 『모나코』는 노인의 고독한 죽음을 다루는 소설이다. 하지만 죽음 전 벌어지는 황혼의 로맨스는 노인의 죽어 있던 삶의 감각을 깨우며 노년의 생 역시 예민하고 격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새로운 ‘노인’캐릭터의 탄생
『모나코』는 노인의 집을 배경으로 노인과 그의 가사도우미 ‘덕’, 노인이 짝사랑하는 미혼모 ‘진’의 삼각관계가 진행되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플롯이 만들어 내는 긴장감보다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특징을 두고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모나코』를 “서사가 아닌 인물로도, 사건이 아닌 관계로도, 인칭이 아닌 시점으로도 소설 속에서 갈등을 만들고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좋은 예”를 보여 준다고 했다. 주인공 ‘노인’의 캐릭터는 기존의 ‘노인’들과 거리를 둔다. 그동안 문학이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표현된 노인이 노쇠한 신체, 보호해야 할 대상, 지혜를 전도하는 어른 등의 전형적 유형으로 다루어진 반면 『모나코』의 노인은 까다롭고 냉소적이고 도덕이나 지혜와는 담 쌓은, 그런 반면 요리와 인테리어에 집착하고 차가운 농담을 즐기는 “욕망과 사유의 주체”로 그려진다.
■블랙유머와 ‘고독체’
『모나코』는 ‘노인’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건이자 갈등인 소설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시가라고 하는 거야. 몬테크리스토 520. 한정판이지.”
“담배보다 독해요?”
“프로이트는 시가를 줄곧 피우다가 구강암에 걸렸어.”
“프로이트가 누군데요?”
큰 남자아이가 말했다.
“우리 편.”
“우리 편요?”
“사랑과 성욕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거든.”
촌철살인, 블랙유머. 『모나코』는 정영문, 김태용으로 대표되는 블랙유머 계보를 잇는 소설답게 고도로 다듬어진 대사들이 읽는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다. 평론가 강유정은 아래 같은 표현으로 그 즐거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말’로 정서적 줄다리기를 하고, 아이러니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연민과 관리의 대상이었던, 타자로서의 노인이 아니라 스스로 발언권을 가진 노인이 등장한 것이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문체 역시 ‘고독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독특한 매력을 보인다. “『모나코』를 읽는 동안 나는 이 노인의 주름살을 본 기분이 들었다. 노인의 말투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윤성희 소설가의 표현처럼 『모나코』를 읽는 독자들 역시 오래된 한 인간, 외로움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사랑과 욕망을 즐기는 자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모나코는 노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남녀 모두 기대 수명이 90이었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모나코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노인은 그들이 신의 입김으로 빚은 햇살을 받으며 신의 피로 만든 물을 몰래 마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노인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노인이 고통스러운 것은 건강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이 없다는 점이었다. 돈은 충분했다. 지금까지 쓴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아직 남아 있었다. -24쪽
노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철봉에 매달렸다. 오래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 아니냐고? 시작은 그랬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반세기를 견뎌낸 습관이 노인의 몸을 밀고 나갔다. 언제부턴가 사는 것도 습관처럼 여겨졌다. 먹고, 자고, 걷고, 먹고, 걷고, 또 걷고. 어떤 날은 사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다음 날엔 또 잊어버렸다. 이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 것의, 사는 것의 의미는 조난당한 선원의 수영복처럼 부질없었다. -25쪽
노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법칙도, 도덕도, 일관성도 없었다. 죽음도, 여자도, 심지어 자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관된 생각이라곤 위에서 내려다보면 무엇 하나 별것 아닌 높이와 깊이를 가졌다는 것 하나였다. 희망 없는 낙천주의자, 쾌락 없는 쾌락주의자, 절망 없는 비극주의자. 사는 것이 시작이고 끝이며 전부였다.-32쪽
“죽고 싶어? 죽으려면 집구석에 처박혀 곱게 죽지 왜 나왔어? 꼴에 더 살아 보겠다고 기어 나왔어? 그럼 기어 다니지 왜 두 발로 걸어?”
노인은 어리둥절했다. 부모가 슈트 살 돈도 주고 철학도 열심히 가르친 것 같았다.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가슴 속에서 뭔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48쪽
노인은 덕이 필요한 것을 다 사 오는데도 불구하고 마트에 자주 갔다. 혹시라도 진과 마주칠까 해서였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유는 미래가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었다. 노망이 난 거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핑계 대기도 좋았다. -60쪽
진의 마음이 어떤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다. 배려는 강자의 미덕이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자신은 약자였고 무엇보다도 노인이었다. -66쪽
털모자를 뒤집어쓴 노인 두 명이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편의점 앞 도로변에 차를 주차해 놓고 담배를 피우는 택시 기사도 노인이었다. 틸트 트럭을 오토바이에 매달고 쓰레기봉투를 실어 나르는 환경미화원은 곧 노인이 될 사람이었다. 이른 아침은 노인들이 만드는 나라였다. 그들은 마법에 걸린 듯 조용했다. 이른 아침은 침묵의 나라이기도 했다. -143쪽
■심사평에서
이 소설은 ‘늙은’ 소설이 아니라 단지 ‘젊지 않은’ 소설에 해당한다. 삶이 삶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정공법을 구사하기에 무거울 수 있고 낡아 보일 수 있는 문제를 눈과 어깨의 힘은 빼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페이소스를 담아 형상화하고 있다. 서사가 아닌 인물로도, 사건이 아닌 관계로도, 인칭이 아닌 시점으로도 소설 속에서 갈등을 만들고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 주기에 가독성도 있다. 노인 소설의 확장이자 포스트 실존주의 소설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이종 장르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미현(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이 시니컬한 노인은 자신에게 이미 다 사라져 버린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자 거기에 순응하고, 그것에 휘둘리는 모습마저 여과 없이(스스로도 인정하면서)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관조하며 놓아준다. 이런 노인의 태도를 작가는 억지스럽지 않게 생생하고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려 냈다. 그래서 더 쓸쓸했다. 말하자면 그저 개연성 있는 모습을 그린 게 아니라, 핍진성 있는 구성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는 뜻이다. -이기호(소설가․광주대 문창과 교수)
문장에 재능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나가는 사람도 있다. 감각적인 재주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것은 ‘인간’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 보여도 그 소설의 인물이 진짜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작품일 것이다. 『모나코』를 읽는 동안 나는 이 노인의 주름살을 본 기분이 들었다. 노인의 말투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윤성희(소설가)
『모나코』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통과해 가는 한 노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희망 없는 낙천주의자, 쾌락 없는 쾌락주의자, 절망 없는 비극주의자”를 자처하는 노인은, 욕망하지만 욕망을 이루는 데는 무심하고, 그보다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저 옛날의 스토익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유부남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 진과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노인에게 마음속 욕망은 대상을 소유하기 위한 출발점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알리바이처럼 느껴진다. 노인의 욕망이 이와 같았기에 진과의 관계도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정영훈(문학평론가․경상대 국문과 교수)
『모나코』의 주인공은 냉소적이며 부유한 노인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말’로 정서적 줄다리기를 하고, 아이러니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연민과 관리의 대상이었던, 타자로서의 노인이 아니라 스스로 발언권을 가진 노인이 등장한 것이다. 담담하지만 냉정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노인은 근래 소설에 보기 드믄 인물형이다. 신체의 노화와 함께 이제야 욕망을 정면으로 보게 된 이 인물은 최근 종종 등장하고 있는 ‘할배들’과는 다르다. ‘할배들’이 소비의 대상이라면 노인은 욕망과 사유의 주체이다. 그 다름을 발견하고 그려 냈다는 것만으로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강유정(문학평론가․강남대 국문과 교수)
■작가의 말에서
힘 빠진 수사자는 무리에서 쫓겨나 초원에서 홀로 죽는다.
사자에게는 어울리는 죽음이지만 나약한 인간에겐 더없이 슬픈 죽음이다.
나는 노인의 고독한 죽음을 통해 비정한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줄 수 있겠다고 여겼다.
아는 사람들은 너무 가깝고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멀다.
나는 이런 차별적 거리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긴장을 유지한 채 꾸준히 읽고 써서
첫 소설의 미숙함과 미흡함을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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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