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삶의 안타까움과 남겨진 삶의 욕망에 관한 노시인의 솔직한 고백
“칠순이 되고 보니 그의 시에서도 잡스러운 것이 다 빠졌다. 그래서 시가 싱거워질 법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회한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몸에는 아직도 젊은 날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잡스럽지 않은 그 흉터는 이제 더 이상 흉하지가 않다. 은백양 또는 자작나무처럼 가을 들판에서 허연 흉터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저녁 노을을 향해 서 있는 그의 시들은 서러울 만큼 아름답다. 칠순이 되어서야 시의 참맛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신경림(시인)
공자는 일찍이 나이 칠십을 일컬어 종심(從心) 이라고 했다. ‘종심’은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황명걸의 이번 시들은 물 흐르듯 쉽게 읽힌다. 지나친 수식이나 상징 같은 난해한 문장보다는 서술체의 솔직한 내면 고백의 문장들은 가르치려 들지 않으나 저절로 깨우치게 하는 노인의 지혜처럼 너무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1970~1980년대에 쓰인 시인의 전작에서 보인 사회에 대한 직접적이며 힘찬 저항의식 대신 인생의 큰 산을 넘은 자로서의 혜안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인의 가족들, 이웃들, 그리고 동료 시인들 등을 포함한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화단에 핀 작은 꽃 한 떨기, 정원의 강아지들, 시골길에 피어난 갖가지 화초들 등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시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먼저 연륜과 기품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노인이 되고자 한다. 벽오동이나 은백양 또는 자작나무를 닮은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기에 「歲寒圖」와 「高士濯足圖」를 바라보며 소나무의 의연한 기개에 탄복하고 고사의 고담한 기품과 무위자연의 정신을 부러워한다. 그리하여 시인 스스로 바위이끼가 되어 “이끼 낀 천근 바위에게 / 미풍이든 광풍이든 바람은 노래일 뿐”이라며 관조의 여유를 보여주고 종내는 “맑은 하늘 보이는 날 가려 / 조랑말 몰고 휘파람 불면서 / 웃음이 앳된 난쟁이가 찾아오면 / 나 기꺼이 그를 따르리”(「閒日」중에서)라고 자신 또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고 기꺼이 순응코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인은 세상과 삶에 대한 애착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육신의 나이는 이미 이르렀으되 정신의 나이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며, ‘이제야 삶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시란 무엇인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시인은 「歸路辭說」에서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 모르겠다”고 한 친구 신경림의 절규에 동감하며, ‘아, 이게 시구나!’ 통절한다. 그리고 이런 솔직함이, 솔직해 질 수 있는 용기가 이 시집의 미덕이다. 시인은 육신의 욕망을 드러냄에 있어도 솔직하다. 「아침 스케치」에서 오전 6시 풋풋한 아침에 우유를 걷으러 나온 새댁의 흐트러진 머리, 지워진 화장을 보고 간밤의 사랑을 떠올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대밭의 요란함에서 성애의 모습을(“살을 비비며 / 몸을 섞으며 / 찰진 생음악을 연주하는 / 대숲의 사랑 / 이이상 싱그러울 수 없다 / 더 이상의 화합이 없다 「대숲의 사랑」중에서) 연상해 낸다. 「新生」에서는 우연히 섞여 들어온 이웃집 빨래를 통해 사그라진 줄 알았던 육신의 에너지를 다시금 발견하고 환희의 목소리를 내뱉는다. 이러한 생에의 의지와 육신의 욕망에 대한 솔직함은 「과메기」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톡 쏘는 쐬주 한 잔에감칠맛 나는 과메기 한 점을생미역에 둘둘 말아 안주 삼는이 한때의 살맛
―「과메기」전문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는 총 80편의 시들이 생산 시기와 경향성을 고려하여 모두 5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앞 부분의 것이 최신작이고 그 뒤의 것이 근작이며 다음의 것은 두 번째 시집 이후에 씌어진 것들이다.
황명걸1935년 평남 평양에서 태어나 해방 후 어릴 적에 월남, 서울에서 죽 자랐다. 서울대 문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학업보다는 시작에 빠져 공부를 팽개치고 중퇴, 늦게야 1962년 <<자유문학>>지에 「이 봄의 미아」가 당선되며 시단에 들어섰다. 1975년 자유언론 운동으로 동아일보에서 집단 해직, 1976년 첫 시집 『한국의 아이』를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했다. 먹고살기 위해 새로 몸담은 기업 LG에서 정년 퇴직하곤 탈 서울, 양수리 위 북한강변에서 갤러리 카페 ‘무너미’를 운영하면서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을 냈다. 지금은 완전 은퇴, 산중에 살면서 세 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제1부아름다운 노인먹의 신비\’歲寒圖\’를 보며망치질高士濯足圖閒日老醜노인장대를 보며참회歸路辭設복수초바위이끼오리가족돌아가는 날내 집 뜨락의 \’花鳥狗子圖\’손누비옷의 마음낮은 굴뚝제2부노인장대를 보러하늘보기無望개울 따라농투성이비오는 날에두 노인속초행이청운의 개장사익의 소리판蘭谷 산동네이발소그림 앞에서낙원시장께과메기아낙의 힘아름다운 얼굴제3부명창의 목어리연 꽃잔치북4동 보건진료소斷章대숲의 사랑밤 손님무서운 사진꽃나무 그늘盛夏不歸性愛의 아내동백꽃 닮은 여자寂滅고통과 바다아침 스케치제4부흰 저고리 검정 치마두물머리에서망향의 편지열차는 다시 오지 않으려나뜨거운 마당박노해의 金剛松노방에서點燈師廣山 이 사람서글픈 봄날억새내 안의 사라예보슬픈 지뢰밭존엄과 모멸세기말식청바지와 노랑머리제5부新生걸작요셉 보이스 씨레드 카드고래위대한 사막책읽기하이에나의 힘개개비황혼의 한때함박눈문패와 관지폐非詩練習명명백백한 노래손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