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상(2013), 독일 서적상(2002), 에른스트 톨러 상(2003) 수상 작가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작가로서의 이력이 이십 년도 되지 못하는, 곧 마흔 살이 되는 율리 체가 현재까지 수상한 상만 열일곱 개에 이른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일, 나아가 유럽 문단과 독자들이 이 젊은 작가에게 보이는 관심과 평가를 가늠할 수는 있다. 왕성한 저작 활동 중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율리 체는 작가로서의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언어, 법학도로서의 전문적 지식과 예리한 논리로 무장한 채 문학이라는 유토피아에 틀어박혀 있기를 거부하고, 현장을 누비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통일 이후 정치, 사회적 담론이 축소되어 많은 작가들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내면으로 관심을 돌리는 상황에서 율리 체는 과거에 존재했던 참여 작가의 부활을 보여 주는 작가이다.
▶ 세상의 끝과 같은 섬, 스페인의 라호라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미수 사건
— 아름다운 여배우 욜라와 성 불능, 창작 불능에 빠진 작가 테오, 그리고 욜라에게 빠져드는 잠수 강사 스벤의 심리 게임
스벤 피들러는 스페인의 어느 섬에서 잠수 강습을 하며 살아가는 독일인다. 어느 날 욜라와 테오라는 한 쌍의 커플이 두 주 동안 잠수를 배우러 온다. 그들은 다른 고객은 받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 점담하여 24시간 돌봐 주는 조건으로 1만 유로가 넘는 거액을 제시한다.
욜라는 귀족 가문 출신 여배우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모가 빼어나다. 그녀보다 열두 살 많은 동거남 테오는 지적이고 점잖아 보이는 작가다. 겉으로 볼 때 누구에게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한 이 커플의 실상은 정작 지옥 그 자체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욜라는 무심한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다. 소설 단 한 편만을 출간한 채 창작 위기에 빠진 테오는 욜라에게 빌붙어 살아간다. 황폐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허울 속에서 서로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휘두르며 지낸다. 욜라는 노골적으로 스벤을 유혹하고, 테오는 이를 관조하며 비웃는다. 스벤은 이 모든 것이 어딘지 꺼림직하면서도 욜라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섬사람 전체가 이들 세 명이 연출하는 희비극을 목격한다.
점점 이상하고 극단적으로 변해 가는 욜라, 점점 비틀려 가는 테오, 그리고 욜라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삶의, 일상의 기반을 모두 무너뜨려 버리는 스벤. 갑작스러운 살인 미수 사건. 그리고 각자의 증언이 어긋나면서 이유도, 끝도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된다.
▶ 평가와 비판과 증오로 전쟁 중인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이 작품의 제목은 상당히 독특하다. ‘잠수 한계 시간.’ 원제인 Nullzeit를 직역하면 ‘무감압 잠수 한계 시간’이 더욱 적합하다. 물론 주인공인 스벤이 잠수 강사이고 욜라와 테오가 잠수를 배우러 왔으며 사건들이 잠수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여기서 잠수가, 살인이라는 사건이 펼쳐지는 주요 장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벤은 독일에서 아버지가 의사인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할 때에도 스벤에게 법학은 열정이나 정의감에서 꼭 배우고 싶은 학문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뛰어남을 확인받고, 후에 사회로 진출하여 더 나은 지위를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로펌 면접관이 비열한 질문으로 자신을 길들이려고 하자 스벤은 독일(세상)의 평가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결심한다.
“서로에 관해 평가를 내리는 일이 나는 아주 싫었다. 그건 중독이다. 저주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서로에 관해 내린 평가로 이루어진 그 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독일을 떠났다. 평가를 내리는 자와 평가를 받는 자가 영원한 전쟁 상태에 있고, 각자가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 중 한 역할을 수행한다.” – 작품 속에서
독일이라는 전쟁터로부터 도피하여, 부모와도 친지와도 친구들과도 인연을 끊은 채 스벤은 스페인의 어느 섬에 정착하여 잠수 강사로 살아간다. 새로 정착한 섬에서도 그가 맺는 관계는 피상적이기만 하다. 평가를 혐오하는 스벤은 ‘개입하지 않다’라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간다. ‘개입하지 않다’는 단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벤이 이렇게 독일이라는 전쟁터에서 도피하여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끊은 채 혹은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한 채 작은 섬에서 철저하게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잠수’와도 비유될 수 있다. 개입하지도 않고, 개입당하지도 않으면서 혼자만의 낙원 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삶이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잠수’해서 살아가는 삶이다.
▶ 그러나 잠수에는 한계 시간이 있다.
그러나 ‘잠수’에는 ‘한계 시간’이 있다. 스벤은 욜라와 테오에게 잠수를 가르쳐 주면서 ‘무감압 잠수 한계 시간’을 두고 “수면 위로 바로 돌아가더라도 건강에 해를 입지 않으면서 특정한 수심에서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즉 감압 등의 별 다른 절차 없이 최대한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잠수 한계 시간’이다. 이러한 ‘잠수 한계 시간’은 작품 속에서 실제 잠수와 도피로서의 ‘잠수’라는 이중적 층위에서 모두 확인된다.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바닥에 앉아 내게서 아가미가 자라나게 하고 싶었다. 장비들을 내려놓고 선장실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중략) 내가 직접 발견한 행성 피들러 호. 아무도 나를 쫓아올 수 없는 나라. 장비를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아가미로 호흡하고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러나 장비를 내려놓는다고 아가미가 자라지는 않을 것임을, 그러한 일은 자살이나 마찬가지임을 스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아가미가 자라나야 영원한 잠수가 가능하다는 말은 결국 영원한 잠수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수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경과하자마자 스벤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안전하게 물 위로 올라오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독일로부터 도피해 간 ‘잠수’에도 한계 시간이 다가온다. 평가라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로부터 도피하여 섬으로 왔지만, 그 섬 역시 평가의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아니었다. 스벤이 아무리 ‘개입하지 않다’라는 원칙을 세우고,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어떤 일에든 얽혀 들어가게 되어 있다. “전쟁은 지리적 현상이 아니”며 “발생한 문제를 물속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스벤이 주장하는 전쟁을 해결하고 싶다면, 그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그 전쟁과 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전쟁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율리 체
– 잠수하지 말 것, 외면하지 말 것, 변화를 위해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말 것.
율리 체는 스벤의 도피와 잠수, 그리고 마지막 변화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살인 사건이나 스릴러적 재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개인주의라는 틀에 갇혀, 나 혼자만 괜찮으면 된다는 의식 아래 주변 일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 바깥, 현실 삶을 외면하고 물 아래, 주변 사람도 없고 분쟁도 없는, 귀찮을 일도 화날 일도 슬플 일도 없는 물 아래에서 잠수하려고 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작가 율리 체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율리 체는 197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다. 1996년 단편소설로 등단하였고, 2001년 첫 장편소설 「독수리와 천사」를 출간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2013년까지 소설, 드라마, 수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20여 편의 저서들이 출판되었다. 작가로서의 이력이 아직 이십 년도 되지 못하는, 곧 마흔 살이 되는 그녀가 현재까지 수상한 상만 열일곱 개에 이른다.
창작 활동 하나만으로도 꽉 채워질 듯한 율리 체의 삶에는 문학 외에 또 다른 중심 축들이 공존한다. 그녀는 법학을 전공하였고, 왕성한 저작 활동 중이던 2010년에 국제법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작가로서의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언어, 법학도로서의 전문적 지식과 예리한 논리로 무장한 채 율리 체는 문학이라는 유토피아에 틀어박혀 있기를 거부하고, 현장을 누비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발칸반도의 위기에 관해 알고 싶으면 보스니아로 달려갔고, 소르비아인들의 문제에 관해 알고 싶으면 바우젠으로 달려갔다. 잡지와 신문 그리고 방송을 통해 유로 위기, 유럽연합, 저작권법, 인권 문제 등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2013년에는 동료작가들과 함께 국가감시시스템과 관련하여 수상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문단에서는 전반적으로 정치・사회적 거대 담론은 점점 더 축소되어 왔다. 많은 작가들이 사적인 영역으로, 개인적 심리탐구로, 내면으로, 자아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율리 체가 보여 주는 궤적은 과거에 존재했던 참여 작가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긴장감. 마지막까지 시선을 뗄 수 없다. —《라이브러리 저널》
▷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충격적인 심리 스릴러. —《월 스트리트 저널》
▷ 현실을 지옥처럼 만들어 버리는 방문객들, 에로틱한 음모, 깊은 바다로의 다이빙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서스펜스. —《커커스 리뷰》
▷ 신분, 외모, 그리고 화려한 삶을 향한 집착에 관한 이야기. —《인디펜던트》
▷ 악몽 같고 격렬하면서도 차가운 스릴러. 율리 체는 침묵의 물 아래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경탄할 만하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존탁스자이퉁》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필적할 만하다. —《브리기테》
잠수 한계 시간……………..9
옮긴이의 말………………………………………,.295
“토마스 만 상(2013), 독일 서적상(2002), 에른스트 톨러 상(2003) 수상 작가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작가로서의 이력이 이십 년도 되지 못하는, 곧 마흔 살이 되는 율리 체가 현재까지 수상한 상만 열일곱 개에 이른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일, 나아가 유럽 문단과 독자들이 이 젊은 작가에게 보이는 관심과 평가를 가늠할 수는 있다. 왕성한 저작 활동 중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율리 체는 작가로서의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언어, 법학도로서의 전문적 지식과 예리한 논리로 무장한 채 문학이라는 유토피아에 틀어박혀 있기를 거부하고, 현장을 누비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통일 이후 정치, 사회적 담론이 축소되어 많은 작가들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내면으로 관심을 돌리는 상황에서 율리 체는 과거에 존재했던 참여 작가의 부활을 보여 주는 작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