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Kara Kitap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4년 2월 3일
ISBN: 978-89-374-9067-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332쪽
가격: 13,000원
시리즈: 모던클래식 67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우리가 사는 삶은 다른 누군가가 꾸는 꿈이다!
사라진 아내와 그녀의 의붓오빠를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는 남자,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유일한 위안인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이스탄불의 풍경, 소리, 냄새로 가득한 미로 같은 소설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은 작품.” ―오르한 파묵
제2부
제1장 유령의 집
제2장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제3장 누가 샴스 타브리즈를 죽였나?
제4장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5장 얼굴에 있는 수수께끼
제6장 사형집행인과 우는 얼굴
제7장 글자의 신비와 신비의 상실
제8장 긴 체스 게임
제9장 신비의 발견
제10장 내가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제11장 오, 나의 형제여
제12장 이야기가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제13장 난 정신병자가 아니라 충직한 독자일 뿐이오
제14장 신비스러운 그림들
제15장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
제16장 왕자 이야기
제17장 하지만 글을 쓴 사람은 나다
옮긴이의 말|이난아
■ 문화들 간의 충돌과 융합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검은 책(Kara Kitap)』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으로 재출간되었다. 1990년 처음 선보인 이 소설은 터키 국내에서만 7만부가 넘게 팔려나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오르한 파묵은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스웨덴 한림원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오르한 파묵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고 했는데, 이런 평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바로 『검은 책』이다. 오르한 파묵 역시 이 책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으며, “이 소설은 나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내 영혼의 혼합체”라고 밝힌 바 있다.
『검은 책』은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번역, 소개되었지만, 한국어판은 그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판본이다. 전 세계에서 오르한 파묵을 번역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어 번역가인 이난아 선생만이 오르한 파묵을 공부한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번역 과정에서 끊임없이 저자와 교감했던 번역가의 노력이 문장마다 오롯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 우리가 사는 삶은 다른 누군가가 꾸는 꿈이다
오르한 파묵은 그동안 사랑, 죽음, 행복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주제를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으로 응축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은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질투나 사랑 같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외로움을 그려 내고 있다.
이스탄불의 변호사 갈립의 아내 뤼야(터키어로 ‘꿈’이라는 뜻)가 짧은 메모만 남긴 채 사라진다. 유명한 칼럼 작가인 그녀의 의붓오빠 제랄 역시 종적을 감춘다. 갈립은 뤼야가 제랄과 함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사랑이자 친구인 그녀와, 질투와 숭배의 대상인 그를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이 둘을 추적하면서 찾아가는 모든 거리, 집, 식당에서 자신의 과거와 기억을 다시 발견한다. 또한 이스탄불 곳곳에 숨겨진 신화, 전설, 이야기뿐 아니라,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 새로이 유입된 서양 문화가 뒤섞인 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갈립은 제랄의 칼럼을 읽으면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가, 제랄의 삶을 산다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거라 믿게 되고, 결국은 자신이 제랄의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뤼야와 갈립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평생 제랄이 되기를 원했고, 제랄이 된다면 뤼야가 드디어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제랄과 뤼야와 함께하고자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솟구쳐 올라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고, 마치 몸의 반쪽이 찢겨져 멀고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고, 마치 이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 구해 줄 때까지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질러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차가운 겨울밤과 눈의 습기를 얼굴에 느끼며 바라볼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 『검은 책』은 나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내 영혼의 혼합체이다!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처럼 『검은 책』도 독특한 서술 구조를 보여 준다. 홀수 장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갈립의 추적 과정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짝수 장은 제랄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칼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끝부분에 가서야 드러나는 놀라운 결말은 독자에게 명확한 실마리를 던져주지 않은 채, 다만 제랄을 대신해서 갈립이 쓰는 칼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도록 유도해 놓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제랄의 칼럼으로, 이 칼럼에는 현재의 터키 상황과 미래에 닥쳐 올 문제에서부터 수천 년 전 이스탄불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신화, 전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다양한 역사의 층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과거의 일이 현재에 반영되어 있고, 오래전의 사건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칼럼이 실제 전개되는 사건, 즉 갈립이 아내와 제랄을 찾아다니는 과정에 겪고 만나는 일들과 사람들과도 아주 밀접한 연결 고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오래전에 쓰였던 제랄의 칼럼이 갈립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했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제랄이 미리 계획해 놓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오르한 파묵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도시는 텍스트로, 텍스트는 도시의 신호로 변하고, 이 신호를 통해 갈립은 뤼야와 제랄의 자취를 추적하지요. 소설은 사실주의 소설처럼 사건이 전개되는 동시에 칼럼이 등장하는데, 이 둘은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 인터뷰 중에서)
『검은 책』은 파묵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그가 미국에 머물면서 완성한 소설이다. 마치 이스탄불 곳곳을 직접 걷는 듯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주는 이 소설이 이스탄불 밖에서 쓰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자신의 문체를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파묵은 1985년부터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지냈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 문화의 다양성을 접하면서 ‘내가 나타내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기 반성을 통해 ‘이슬람 고전’으로 눈을 돌렸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서 자신만의 문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파묵은 보르헤스에게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이슬람 문학을 재조명했고 이들이 나타내는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맥락이 아닌 그 이야기 자체만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의 신기원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이때 쓰기 시작한 책이 『검은 책』입니다.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은 작품이죠.”라고 고백한 바 있다.
■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의 매혹, 그 안에 숨겨진 삶의 진실
오르한 파묵은 『검은 책』을 통해 이스탄불이 얼마나 흥미로운 도시인지, 얼마나 슬픈 도시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거대하고 풍부한 서사를 통해, 두 대륙 사이에 놓인 도시 이스탄불의 병적인 갈등을 포착하려 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스탄불은 남다른 사연을 지닌 도시이다. 우선 지형적으로, 일부는 아시아 대륙에, 일부는 유럽 대륙에 걸쳐져 있다. 당연히 문화적․종교적으로 두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왔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에게 점령당하여 여러 제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본문 중에 “비잔티움, 비잔트, 노바 로마, 안투사, 차르그라드, 미크라그라드, 콘스탄티노플, 코스폴리, 이스틴―폴린 바로 그 아래에는 이전 문명이 피난했던 지하 통로가 있다.”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지명은 모두 현재의 이스탄불을 일컫는다. 그만큼 역사적 부침(浮沈)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천 년의 역사를 넘나들면서 이 도시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오르한 파묵은 그려 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입된 다양한 문명 외에도, 근래에 새로이 들어온 서구 문명, 특히 미국 문화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절망의 이유가 되고 있음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이를 통해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나아가 원래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찰스 디킨스에게 런던이,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파리가, 제임스 조이스에게 더블린이 있었다면, 오르한 파묵에게는 이스탄불이 문학적 저력의 원천이자 자신의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독자들이 내 글을 통해 이 도시가 주는 공포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스탄불 시내를 걷는다고 떠올려 보세요. 할리치 만을 잇는 다리를 건넌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장면들이 떠오릅니까? 마주치는 슬픈 표정들, 극심한 도로 정체, 공장으로 변한 이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비잔틴 양식의 건물. 참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검은 책』에서 나는 이런 절망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 『검은 책』의 줄거리
변호사 갈립은 여느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사무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촌형 제랄의 신문 칼럼을 읽는다. 역시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 몇 번 집으로 전화를 걸지만 아내 뤼야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갈립과 뤼야는 사촌간이며, 제랄과 뤼야는 엄마가 다른 의붓남매이다. 따라서 갈립과 제랄도 사촌 사이이다.) 저녁을 먹으로 오라는 고모의 전화를 받은 갈립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25년 전 갈립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백부(제랄의 아버지)는 이십여 년간 타지에서 떠돌다가 새 부인과 딸 뤼야를 데리고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백부는 어린 제랄과 자신의 첫 아내, 즉 제랄의 어머니를 버리고 유럽으로 갔던 것이다. 갈립은 뤼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평생 그녀만을 사랑해 왔다. 둘은 같은 아파트 위아래 집에서 살았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것을 배웠으며, 칼럼 작가인 제랄에게서 똑같이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뤼야는 항상 다른 세계를, 다른 꿈을 그리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결국 뤼야는 지하 정치 운동을 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갈립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랄은 어린 자신과 어머니를 내팽개친 아버지뿐 아니라 자신을 내쫓은 가족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은 채 칼럼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갈립은 뤼야가 짧은 메모만 남긴 채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는 제랄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으나, 제랄도 행적을 감추었다. 갈립은 뤼야와 제랄이 함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사랑이자 친구인 그녀와, 오랜 질투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그를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한다. 갈립은 제랄의 집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자신이 제랄의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뤼야와 갈립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