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린 언어와 황홀한 비문으로 그리는
들끓는 지옥의 풍경
한국문학을 이끄는 ‘미적 전위의 최전선’
조연호 다섯 번째 시집 출간
▶“지금껏 한국 시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자적인 시 짓기”-서동욱(시인, 문학평론가)
▶“문체의 수준에 도달한 황홀한 비문”-김행숙(시인)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생소하지 않은, 묘하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강석(문학평론가)
▶“언어에 관해서라면 조연호는 한국의 어떤 시인보다도 사치스럽다. 그의 시에서는 신화의 언어가 자연과학의 언어와 만나고 종교의 언어가 음악의 언어와 충돌하며, 미술의 언어가 철학의 언어를 감싸기도 한다. 조연호는 오래전부터 언어의 습득과 활용이 남다른 언어의 귀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송종원(문학평론가)
한국 현대 시를 이끄는 미적 전위의 최전선이라 평가받는 조연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암흑향』이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2014년 민음의 시를 여는 첫 번째 시집이다.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연호 시인은 『죽음에 이르는 계절』을 시작으로 『저녁의 기원』, 『천문』, 『농경시』, 『암흑향』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해 왔다. 사라져 버린 한자어로 단어를 만들고 불가능한 호응으로 문장을 만드는 그는 낯설고 새로운 문법으로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문체를 만들어 낸다. 서사가 빠진 자리에서 난해함이 비롯되지만 아름다운 문체와 유려한 리듬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해보다 향유에 적합한 조연호의 시를 통해 독자들은 언어라는 시 본연의 재료를 날것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고대(古代)의 언어로 재현하는 현재의 디스토피아
디스토피아를 번역하면 암흑향이 된다. 지옥향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오웰의 『1984』에 나타난 비극적 종말 사회로, 조연호 역시 이 시집에서 지하 세계, 즉 지옥의 풍경을 그렸다.
지옥을 그리는 도구로는 이번에도 역시 한자와 한문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조연호의 시에는 단지 한자로 된 단어를 많이 구사하는 문제를 넘어서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한자 말들이 부지기수로 출현하고 있다. 이는 한자가 등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자와 더불어 사라진 세계, 널게 통칭해 ‘고대(古代)’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렇듯 조연호에게 한자는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로, 그것은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두드러지는 조연호의 시 세계가 필요로 하는 문자가 바로 한자이기 때문이다. 한자가 주는 간극, 즉 “매력적인 여백” 역시 조연호의 시에 한자가 압도적인 이유다. “예술에서 드러나는 긴장은 그 스스로의 질료에 의한 긴장이 가장 크고 중요한 사건일 텐데, 분명 우리 언어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정신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우리 언어 안에서의 한자, 한문의 간극과 허구성이 나를 매료시킨다.”는 그의 말은 한자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조연호 세계의 일면을 보여 준다.
시집은 총 40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한 편인 「고대시집」은 32쪽 분량의 장시(長詩) 형태를 띤다. 「고대시집」처럼 여러 개의 시가 한 개의 제목 아래 포함되는 것은 그가 두 번째 시집부터 해 오던 방식으로, 문학 내 장르 구분에 대한 시인의 회의적 물음에서 비롯한 작법이다. 특히 「고대시집」은 본문 내 다른 시들과 종이의 재질을 달리해 시를 읽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의 범위를 넓혔다. 시인의 말처럼 “감각기관 전체를 열”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조연호가 인식하는 오늘의 모습이 지옥의 온도로 경험될 것이다.
■조연호 미니 인터뷰
▶『농경시』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입니다. 지금까지 펴낸 작품들과 『암흑향』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세계관이나 기법적인 것은 이전 시집들(특히 『천문』, 『농경시』)에 비해 큰 변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암흑향』을 이루는 모든 질료들은 저의 이전 시집에 다 있던 것이지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을 해석하는 시각을 좀 더 육체적인 토대 위에서 해석하고자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외면적으로는 ‘풍경’의 드러남이 보다 본능적인 움직임에 맞춰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도식적인 해석일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천문』이 하늘을, 『농경시』가 땅을, 『암흑향』이 지하, 즉 지옥의 풍경이 되기를 바라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니 좀 더 들끓는 세계가 용인되어도 좋다는 스스로의 묵인 하에, 거친 것을 이성의 힘으로 미화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또 이지러진 것을 애써 언어의 힘으로 팽창시키려는 의도를 경계하며 시집을 엮었습니다. ‘암흑향’이라는 시집 제목이 디스토피아의 번역어인 점을 감안하면서 읽어 주신다면, 이전 시집들과의 이런 자잘한 편차들이 잘 감지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집에도 같은 제목의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고대시집’이란 시는 개별적 시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하나의 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시집 안에 제목이 같은 작품이 여러 개 있는 것은 첫 시집부터 계속해 온 방식이고, 여러 개의 시들이 한 제목 아래 포함되는 방식은 두 번째 시집부터 해 온 방식입니다. 전자는 한 시집 안에서 시들 간의 경계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고, 후자는 문학에서의 장르 구분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의 기법적 결과들입니다. 전자나 후자가 모두 ‘경계’에 대한 회의적 물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의 책이 반드시 어떤 장르의 어떤 형식으로 읽혀질 필요도, 그럴 만한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은 그 형식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럴 경우 그것은 학문이 됩니다.) 내용과 더불어 형식이 낳는 흐름에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꿈꾸는 가장 좋은 책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고 무엇으로도 구분될 수 없지만, 감각기관 전부를 열어 놓기를 요구하는 그런 책입니다.
▶조연호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또 사회에서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자면 ‘이성이 잃어버린 영역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를 쓴다는 것이고, 본성이 너무 많이 획득한 영역을 다시 인간에게 나눠 주는 행위가 시를 읽는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성이 인간이라는 본능적 유기체를 지배하는 한, 그것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의 존속은 문명의 지속 가능한 부피만큼의 부피를 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위로, 위안이고 그 위로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질료를 그 원인인 인간에게서 직접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극복자이자 극복되는 자이고, 병이자 치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가 자연의 견해에 토대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기체로서의 인간 전체에 토대를 두는 것이고 인간 전체 안에는 자연의 한 조각으로서의 인간도 존재하지만 당위의 조각들은 더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는 역할이나 목적으로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로 시도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쉬운 시와 어려운 시,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이처럼 거칠게 시를 구분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연호 시인에 시에 대해서도 ‘어렵다’는 편견이 많은데요, 우리 사회가 시를 인식하고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렵다, 쉽다라는 이해의 차원에서 아름답다, 추하다라는 가치의 차원으로 옮겨 가지 않는 한 예술은 무가치합니다. 이 말은 반대로, 개별의 가치들이 존중되는 사회야말로 예술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에 이해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조롱을 섞어 말하는 방식이 무례하지 않은 것이라면, ‘오늘날 시에 대한 인식은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피곤함을 차단함으로써 아주 간단히 복잡한 시들에 대한 공격에 성공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공격들 중 가장 전폭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시의 통증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원적 통증에 대해서까지 감행되는 무차별적 공격’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암흑향』을 더 즐겁게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글쎄요. 이해하지 말고 향유하시라고밖에는……. 살짝 덧붙인다면, 시집 전체가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도 그게 바로 그 시집의 목차가 된다는 기분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시집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려 주시면 더욱 고맙겠죠.
■ 추천의 말
조연호의 시에서 언어는 분열과 증폭을 거듭하는 세포처럼 작동한다. 그것은 경계와 구분을, 규칙과 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법’이 갈라놓은 모든 것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결합과 해체를 반복한다. 아무 곳에나 들러붙고 떨어지는 언어-기계. ‘암흑향’은 최후의 시간 이후에 다시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초현실적이란 ‘법’이 없다는 것. 조연호의 디스토피아는 피와 살이 난무하는 불지옥의 게헤나(Gehenna)가 아니라 이성과 상식이. 최후의 시간 이전을 지배하던 ‘법’이 작동하지 않는, ‘지도’ 바깥의 세계다.
-고봉준 (문학평론가)
■ 작품 해설 중에서
산문집, 독서와 공부, 시타르 연주, 시작 강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권의 시집. 간소화되고 가능한 한 범위가 축소되었으며, 오로지 창작이라는 생산물이 있고서야 빛을 발하는 조용한 세계. 이것이 연호다. 그는 오로지 그의 작품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 우리는 이 다섯 번째 시집을 펼쳐 두고 있다. 조연호에게 평소 문예지를 통해 발표하는 시들은 시집을 위한 재료 정도의 역할을 하는데, 그는 발표된 시들을 해체해 시집 한 권 단위의 한 작품으로 만든다. 그것은 개개의 시를 작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노동이며, 그 노역의 마지막 소산과 더불어 몇 년간의 집념은 비로소 멈추어 선다.
그 한 권의 시집이 의미의 통일체인지, 정서의 통일체인지, 작법의 통일체인지, 아니면 경험의 통일체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독서를 향해 열려 있는 문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한 권의 시집은 해체해서 다시 엮으면 훼손되는 유일무이한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동욱(시인 ․ 문학평론가)
적(聻)
시
무영등(無影燈) 아래
풍등처럼 날다
귀축(鬼畜)의 말이 우리를 의붓되게 하는 자로서
적(聻)
귀축(鬼畜)의 말
트로이인의 석양
산곡인(山谷人)의 기름 부음
아스테리아스 아무렌시스와
나는 장티푸스다
변종견은 미풍에 실려 오고
무롱(舞弄)의 아이들
사물이 필요로 한다
세 가지 말
잡종지(雜種地)에서
적(聻)
꿇어 엎드리는 자
어제 핀 천연두 아래
행려시(行旅屍)
꿇어 엎드리는 자
택방(澤邦)을 지나 벽한(僻寒)에 들며
벽한(僻寒)을 지나 택방(澤邦)에 들며
다섯 경(更)
닐웨
사육사의 완(梡)
오훼(烏喙)
적(聻)
표본가족
창녀들의 검진
명절의 소원
산뢰기(山籟記)
달의 수빙림(樹氷林)
성가퀴 너머
씨종자의 속월(俗月)
뢰(磊)여
속애(俗愛) 비옵는 자를
귀종불역방(鬼腫不易方)
파양동정향(罷養冬定向)
고대시집(古代詩集)
작품 해설/ 서동욱
고대(古代)의 화충(花蟲)
한국 현대 시를 이끄는 미적 전위의 최전선이라 평가받는 조연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암흑향』이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2014년 민음의 시를 여는 첫 번째 시집이다.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연호 시인은 『죽음에 이르는 계절』을 시작으로 『저녁의 기원』, 『천문』, 『농경시』, 『암흑향』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해 왔다. 사라져 버린 한자어로 단어를 만들고 불가능한 호응으로 문장을 만드는 그는 낯설고 새로운 문법으로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문체를 만들어 낸다. 서사가 빠진 자리에서 난해함이 비롯되지만 아름다운 문체와 유려한 리듬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해보다 향유에 적합한 조연호의 시를 통해 독자들은 언어라는 시 본연의 재료를 날것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