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방

송종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6년 6월 12일 | ISBN 978-89-374-0745-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6쪽 | 가격 7,000원

책소개

1989년 「심상」으로 등단한 시인 송종규의 네 번째 시집. 과격하게 상충되는 이미지의 나열, 이미지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생경하면서도 강렬하다. 시인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거칠지만 다른 비유의 관념을 거치지 않고 도착한 날것의 솔직함과 생생함으로 다가온다.현재의 이미지와 분절된 기억의 조합은 비약적인 시간을 따라 흐르며 새로운 시간성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세상을 향해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는 이 방에서 시인은 자신과 세상 사이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만들어 낸다.

편집자 리뷰

이 방은, 세계에 대한 오독으로부글거릴 것이다.너는 가고나만 남는다, 세월이여.-자서(自序) 전문세계에 대한 오독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투쟁 ―그녀, 송종규1989년 《심상》으로 등단한 시인 송종규의 네 번째 시집 『녹슨 방』이 출간되었다. 송종규의 시는 언어와의 치열한 싸움으로부터 시작한다. 세상은 시인의 의식과 언어만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미지로 가득 차 있고, 시인의 유일한 도구인 말은 “계단을 무례하게 뛰어다니”며 대상과의 올곧은 소통에서 비껴 나가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는 차라리 “한입 베어 먹힌 말처럼 불안하고 삐딱한 이미지들”로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해 본다. 그럼으로써 “간교한 말들이 삭제된 아주 순수한 간통을” 꿈꾸는 것이다.과격하게 상충되는 이미지들의 나열은 그녀의 시를 혼란과 함께 오히려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이미지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생경하면서도 강렬하다. 문학평론가 신재기가 지적한 것처럼 “의미의 역할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호나 언어를 거부하고 사물성 그 자체를 지향하”는 그녀의 말하기 방식은 때로는 직설적이고 거칠게 와 닿지만, 다른 비유의 관념을 거치지 않고 도착한 그녀의 언어는 날것의 솔직함과 생생함으로 다가온다.“생의 암호 같은 말들만 손가락이 아프도록 쓰고 또 지우”고 “식후 30분마다” “찢어진 말들을, 분노하는 말들을, 미친 말들을, 흩날리는 말들을 꾸역꾸역 받아 삼키”는 그녀는 무섭도록 아프게 언어와 마주하며 시를 써낸다. 이 방이 “세계에 대한 오독으로 부글거릴”망정 그녀는 외로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글거림”은 끊임없는 말하기이며, 설령 그것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는 그녀만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존재와 실재의 증명들. “살아서 펄럭이는 말들의 입에 쾅쾅 못을, 박는다, 나는 설득당하지 않는다”라고 그녀는 다짐한다. 너는 스페인 풍의 술집과 낡은 유성기, 그리고네가 아는 모든 세상을 씀바귀 즙처럼 뽀얀 은유로 이야기했고 나는내 뜰에 침입한 새 떼들을 너의 바다 속으로 풀어놨다네 바다는 지금 얼마나 고요하고 흉흉하냐상추가 잎을 피우는 동안, 한 세기가 흘러갔다너는 아직도 은유를 믿느냐- <새 떼들> 부분모든 修辭들이 어둠을 꽉 채운다 밤 한 시가 정밀하고, 자욱해진다나는 무덤처럼 잠겨져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꽝! 문 닫힌다-<정밀한 修辭> 부분그녀의 닫힌, 혹은 범람하는 방그녀의 부글거리는 방은 “허구로 꽉 차” 있으며 “시간은 고여 있”다. 그녀 스스로 걸어 들어가 “천천히 열쇠를 비틀어 나를 잠근” 닫힌 방이다. 문학평론가 김양헌은 이를 “자폐의 시공간”이라고 일컫는다. 그리하여 그녀의 방은 “언어의 상징체계가 흐려지고, 상상계의 특징처럼 무수한 이미지들이 부유하며 시간 또한 흐르지 않는다.” 현재의 이미지와 분절된 기억의 조합은 비약적인 시간을 따라 흐르며 새로운 시간성을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그 방은 시인만의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팽창”하고 “범람”한다. 방의 한쪽 벽면은 결국 세상과 맞닿아 있다. “아무리 두드려도 나는, 세상 밖으로 전송되지 않는다”는 시인의 좌절은 어쩌면 욕망을 전제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따라서 시인의 방은 세상과 동떨어진 완전한 자폐의 공간이 아니다. 분명 다른 시간성을 띠고 있지만, 세상의 시간을 재료로 한 탓에 방은 미묘한 위치에 서 있다. \”터질 듯 팽창”하나 “너무 휑하”게 텅 빈, 모순. 세상을 향해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는 이 방에서 시인은 자신과 세상 사이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만들어낸다.그 방은 침묵 속에 쌓여 있고 그 방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그 방은 너무 휑하고 그 방에는 너무 가벼운 내가 있을 뿐인데 그 방은, 꽉 차 있다그 방은 혼돈으로 꽉 차 있고 그 방은, 가혹하거나 간절한 말들이 터질 듯 팽창해 있다그 방에는 수많은 말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고, 우울하거나 신경질적으로 걸려 있고그 방의 혼돈 속에 있을 때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 방에 있는 동안 나는안전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지독한 사랑> 부분그의 방에는 밤 열두 시가, 지친 얼굴로 밤 열두 시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에, 튀밥처럼 가벼운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그의 방을 세웠다 아주 명쾌하게, 미래는 죽었다,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때때로 물방울처럼 쉽게 마르거나 수초처럼 젖는다소반이나 첨탑 위 또는 허구로 꽉 찬 그의 방에, 시간은 고여 있다 그는 어디로든 흐르지 않는다 그 방의 정물들은 가끔씩 호수처럼 깊어진다- <그 방은 가끔씩 호수처럼 깊어진다> 부분“어둠과 밝음, 신생과 소멸의 비릿한 비늘들” ―삶에 대한 애정 어린 혐오와 포용의 시선그녀의 “안전한” 방 너머의 세상은 물씬 풍겨오는 아련한 슬픔과 함께 “갖가지 무늬의 꽃과 모래톱들 그리고, 빽빽한 분홍빛 루머들”이 삶의 비극적 환희로 떠오른다.“울컥, 치밀어 오르는 삶의 비린내”를 풍기는 “저 컴컴한 것들이 삶이”며, 또한 “비린 생선 대가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에 흥건하”게 펼쳐진 것, 그것이 바로 삶인 까닭에 “죽음의 일부를 데리고 다니”며 “천 번쯤 목이 메이고 나서 마흔을 넘”긴 그녀는 “더러움 또한 삶의 일부라면” “못 먹을 게 뭐가 있”느냐 노래한다. 시인은 이제 비릿한 삶과 함께 생의 처절한 비극까지도 끌어안을 준비가 된 것이다.“연민도 없이, 열쇠 구멍 속으로 질주하는 시퍼런 시간”을 거쳐 그녀가 도달한 곳은 “격렬함이나 분노가 스쳐 지나간 듯” 분명하게 “내 몸에서도 녹이 스”는 세상 속의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죽음의 일부”와 함께 녹이 슬어버린 시인은 기꺼이 삶의 비린내를 껴안는다. “찰나가 삶을 지탱”하고 “오르고 내려오려는 안간힘이 한 생애를 떠메고 간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하나의 모순으로서 존재하는 그녀의 방처럼, 삶에 대한 혐오와 애정이란 모순을 반복함으로써 시인은 삶의 비극성을 미화하기 보다는 그것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채 겸허하게 끌어안는 방식을 택한다. 문학평론가 김양헌의 말처럼 “방을 나와 비릿한 삶의 계단에 새긴 선명한 시간의 지문들”, 그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시간이 이룬 겹겹의 구릉들구릉 아래는 다시 벼랑, 짐승의 아가리,모래로 꽉 찬 시계시계를 중심으로 초승달 같은 호수가 숨어 있고수면을 경계로 대칭을 이룬 갖가지 무늬의 꽃과 모래톱들그리고, 빽빽한 분홍빛 루머들[…]다만, 한 생애를 끌고 가는 갖가지 얼룩과 냄새들모래로 꽉 찬, 시계가 걸려 있는텅 빈, 뜰- <맨드라미가 있는 뜰> 부분목숨의 냄새란 이렇게 비릿한 것일까 비누로 손을 씻으며내가 말했다 아니,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들은 듯하다- <껍데기들> 부분허방 같은 삶도몸을 거치지 않고 완성될 수 없다면이 비린, 시린, 몇 고비비켜갈 수 없지광주리에 담긴 저 환하고둥근 말들- <호박잎 속에> 부분검은 비닐봉지에서 튕겨 나온 삶이비린 생선 대가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에 흥건하다- <비릿한 저녁> 부분더러움 또한 삶의 일부라면모래와 티끌, 먹다 남은 김치 국물, 썩은 고등어 대가리그 여자의 무례한 혓바닥, 죽은 남자의 머리털못 먹을 게 뭐가 있어난 아마 낙타를 낳을 거야난 아마 절룩거리는 거위를 낳을 거야난 아마 이글거리는 해처럼 붉은 꽃을 낳을 거야- <우리들의 聖殿> 부분

목차

자서
1. 휘어진 호수글씨들떡집 여자빵다시, 범람하는 방단층나는 햇살 속으로 솟구쳤다말, 무례한옷걸이들휘어진 호수상수리나무에 관한 기록자전거종이 울리는 연못날개모래지치 꽃두께새 떼들접시 위에 생선 비늘 하나관절들개 같은 한낮물 속의 장례일요일
2. 투덜거리는 계단가시연꽃경전선정밀한 수사(修辭)절정얼룩힘녹슨 방흰 개, 동백, 그리고 돌멩이껍질수북한 허공지독한 사랑원추리 꽃이 어느 날 성장호르몬을 맞는다면?맨드라미가 있는 뜰맨발투덜거리는 계단석류껍데기들호박잎 속에무거운, 그녀낙동강 역3. 낡은 의자가 있는 방비릿한 저녁넙치글씨들, 달빛과 바람 곁에서행성들폭설풍경과 상처눈사람일출절개지정오의 사이렌 소리그 방은 가끔씩 호수처럼 깊어진다바퀴가 있는 풍경시인낡은 의자가 있는 방막창 굽는 집내당 4동 미장원우리들의 성전젖은 남자감쪽같이,
작품 해설 : 비릿한 삶의 계단에 찍힌 시간의 지문들

작가 소개

송종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효성여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5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고요한 입술>,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 <녹슨 방>이 있다.

독자 리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