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를 지키려는 노력

황성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9월 16일 | ISBN 978-89-374-0817-5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8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못 말리는 이 나라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최신 공법으로 추출해 낸 시적 언어의 정수”-김기택(시인)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 삶을 통쾌하게 버무리는

천박한 능청과 유머러스한 수다 

 

2008년 『앨리스네 집』을 발표하며 “존재와 시간을 구체적, 일상적, 시적”(김혜순 시인)으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은 황성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4를 지키려는 노력』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황성희 시인은 안도현, 문태준, 이병률 등 서정을 기반으로 한 국내 최장수 시 동인 ‘시힘’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황병승, 함성호, 김소연, 강정 등과 함께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시를 써 왔다. “가족사, 주부로서의 일상, 육아 등의 ‘속(俗)’스러운 것들을 구체적이면서도 기괴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심보선 시인) 놓았던 『앨리스네 집』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는 표제시 「4를 지키려는 노력」을 비롯해 모두 60편의 시를 담았다. 『앨리스네 집』이 작법으로서의 판타지를 통해 뒤틀리고 왜곡된 현실을 표현했다면 『4를 지키려는 노력』에서는 일상의 디테일이 시와 마술적으로 결합하는 순간을 특유의 모순어법과 유머러스한 수다로 포착해 낸다. ‘나’의 형태로 발화되어 누락되고 소외당하기 쉬운 무수히 많음 사적 존재들의 목소리를 한 냄비에 넣어 휘젓고 끓여 내는 황성희 시에서 “지구 한 바퀴의 판타지”와 “동네 한 바퀴의 리얼리즘”이 결합된 ‘4의 세계’를 만나 보자.

편집자 리뷰

■사(私)를 지키려는 노력-시와 ‘나’

황성희 시인은 역사, 그중에서도 민중사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추구해 왔다. 일상의 개인과 역사적 자아 사이의 단절에 주목하며 사적(私敵) 자아가 사적(史的) 자아로 도약하는 순간들에 주목했던 첫 시집은 “동양적, 여성적 시간 의식의 구체적, 일상적, 시적 구현을 목표로 삼는 듯” “끈질기게 ‘존재와 시간’을 탐구한다.”(김혜순 시인)라는 평가를 받았다.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구체와 개인이라는 영역 위에 쌓아 올려진 시집 『4를 지키려는 노력』이 가장 먼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개인으로서의 사(私). 「미시사 연습」은 개인이 존재와 사건의 최소 단위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설탕은 벌써 녹아 사라졌네요

녹기는 아까 녹았는데 지금 말할 수 있지요

아직 녹지 않았는데 녹았다고 할 수 있지요

넣지도 않았으면서 넣은 척했을 수 있지요

모든 것이 욕실 안 누군가의 상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여전히 설탕이 녹아 있는 컵입니다

나는 지금 치킨을 기다리고 있고요

쿠폰 여섯 장은 냉장고 문에 붙어 있습니다

냉동실 문인지 냉장실 문인지 물어 온다면

또 다른 시즌은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미시사 연습」에서

 

 

■사(査)를 지키려는 노력-시와 사실

“의미 말고 사실이 되시오!”(「리얼 버라이어티 유감」)  개인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의도적으로 맥락화, 의미화되기 이전의 ‘사실’ 자체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진다.  2부 제목이기도 한 ‘판타지 안녕’은 존재를 구성하는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시인이 지향하는 문학적 인식 방법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세계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비겁한 짓이야”.(「판타지 안녕」)「개 한 마리의 밀항법」에 드러나는 다음의 시구들은 비유와 상징에 몰입된 나머지 모든 사람이 인식하는 보편적 사실을 도외시하는 문학적 경향을 겨냥한 화살 같은 시다.

 

나는 오늘 아침의 사실을 말합니다

멸치 볶음에 간장 넣지 않았습니다

통깨는 마지막에 뿌렸고 원산지는 모릅니다

설탕 봉지는 노란 고무줄로 입구를 봉했고

지름이 서로 다른 팬 두 개를 사용했습니다

아니요, 나는 방사 유정란만 씁니다

두 개를 사용했지만 깨뜨린 것은 세 개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됐을까요

시간 속으로 모락모락 피가 증발하는 동안

골몰할 유정란 하나는 사치가 아닙니다

(중략)

 

가끔 가족사진 꺼내 보는 것만 잊지 마시길

멀미가 걱정된다면

-「개 한 마리의 밀항법」에서

 

■사(史)를 지키려는 노력-시와 역사

황성희의 역사에서 “남북정상”과 “나”는 동등하다. 미시사에 집중하는 황성희식 역사는 첫 번째 시집 『앨리스네 집』에 수록된 「숨은그림찾기」를 통해 잘 드러난 바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새것으로 바꾸기만 해도/ 역사는 진보한다./ 그것이 남북 정상회담보다/ 못한 역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일기장 속에서는/ 나도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정상.” 개인에서 출발하고 개인에서 완성되는 역사 인식은 『4를 지키는 노력』에서 한층 강화된다. 시인에게 의미 있는 주체는 개별화된 자아뿐이고 자아의 개별성은 오직 상처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시인은 급기야 자발적으로 부스럼을 만들어 상처 입은 존재가 된다.

 

부스럼이 생겼다

어제와는 다른 자리다

밤새 긁은 보람이 있다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 불안해진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리여야 하는데

다행히 다시 긁기 시작한다

피가 맺히는 일쯤이야 견뎌야지

나는 꼭 하나뿐인 내가 되고 말 테니까

하지만 울긋불긋한 상처의 내막을 들키는 날엔

하긴 그렇게 걱정스런 일만은 아닐지도

일부러 부스럼을 만든 사람이 아직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성공한 셈

-「부스럼 전문가」에서

 

황성희식 역사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자신이 주는 상처만 허락하므로 객체로 전락하는 사람도 없다.  ‘4’를 지키려는 황성희의 노력은 보편이 실존을 압도하는 폭력적 역사에 대한 전복이자 불가해한 환상이 가시적 실재를 억합하는 문학의 한 흐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몸짓

유리창에 비친 어떤 시간의 눈알

4를 지키려는 노력

한 손에는 지우개를 꼭 쥐고

애처로운 기교, 기만을 닮은 성실

한때 고래 지키는 사람을 꿈꾸었지만

바닷속을 염탐하지 않겠다는 약속

나무를 따라 흘러가는 바람을 두고

벽에 비친 내 그림자, 놀라는 게 이상할까

멀리 있는 별이 흐릿한 건 당연한 일

보이지 않는 것을 궁금해하지 마

심장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닦고 또 닦아라

4를 지키려는 노력, 그것만이

태양 아래 산책을 즐기는 비법

-「4를 지키려는 노력」

 

■ 추천의 말

황성희의 시를 읽고 놀라 보자. 겹겹이 촘촘하게 저장된 기억의 파일에서 꺼낸 일상의 디테일은 얼마나 마술적으로 결합되는가. 짜증과 권태와 답답증과 불감증과 두통도 그의 모순어법이 들쑤시기만 하면 얼마나 경쾌하고 발랄한 탄력이 되는가. 그 모순어법의 수다에는 항문과 내장으로 웃게 만드는 에너지가 얼마나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가. 자질구레하고 구질구질하고 뒤죽박죽이고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그놈이 그놈 같은 색깔과 모양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 삶을, 뻔뻔스럽고 천박한 능청과 유머러스한 수다로 버무리는 솜씨는 얼마나 통쾌한가. ‘나’를 거쳐 간 수많은 목소리들과 지금도 무수한 구멍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세상의 목소리들을 한 냄비의 육체 안에 넣어 휘젓고 끓이는 방법은 얼마나 유쾌한가. 못 말리는 이 나라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시적 언어의 정수를 최신 공법으로 추출해 내는 “지구 한 바퀴의 판타지”와 “동네 한 바퀴의 리얼리즘”은 얼마나 싱싱한가.

-김기택 (시인)

 

 

■ 작품 해설 중에서

지나온 모든 작품들을 복제한 복사본을 만들어 내는 이 키치적인 시 쓰기야말로 황성희만이 가능한 고유성이다. 심지어 이 시들은 진리의 허위를 비난하는 아방가르디스트들의 태도마저도 복제한다. 그러나 아방가르디스트들이 원본 없는 원본성을 지향했다면, 그는 원본 없는 복제본 그 자체, 오직 원본을 향한 끝없는 환유적 노정 그 자체인 복제본만을 만들어 낸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여백 속에서 아무도 오리지널이 될 수 없고, 자신 또한 결코 오리지널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되면 된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믿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순간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자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믿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해야만 믿음에 도달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믿지 않을 것인지/ 입을 가지고 말해 보라.” (「입으로 말하는 사람」)    -작품 해설에서|박슬기(문학평론가․한림대 국문과 교수)

목차

자서

 

1부  4를 지키려는 노력

 

4를 지키려는 노력

뜨거운 것이 좋아

후일담 사칭의 新유형

대합실

부스럼 전문가

이해의 선물

스승의 나무

갈릴레이 암살단

리얼 버라이어티 유감

불감증

패셔니스타의 한 가지 고뇌

새우깡 닭다리 그리고 하마

우리는 똑같은 티라노를 가지고 있다

알레고리 체험

 

 

2부  판타지 안녕

 

판타지 안녕

웅진코디와 다이아 반지

할로윈 무도회

미시사 연습

책상의 자기소개

부끄러워야 사는 여자

모빌의 용기

김의 사과 작법

내 책상 위의 인형

다문화 가정의 로맨스

프레파라트 소년

개 한 마리의 밀항법

우유 대신에 왜 생리대

콜롬부스 등단기

 

 

3부  A양 일과

 

A양 일과

행복한 콩팥

귤 세 개의 풍경

서랍의 역사

서랍 꾸미기

버즈의 한 가지 얼굴

사이클-사실을 이야기하는 클럽

오줌 사건의 내막

고체 수박

나무가 있는 세계

쇠사슬 토끼 수법

장래 희망의 소년

경희 언니의 수 세기

가이는은 일상

다락방의 후시딘

고아를 향해 달리다

기의 결시

손의 사용법

 

 

4부 사과의 추리

 

사과의 추리

내가 되는 기술

사적 연설의 기초

애드벌룬 TV

안녕하세요의 비밀

피터팬의 소원

휴게소 직전

똑똑한 옷걸이

풍선의 개인사

미궁이 자라나는 티타임

입으로 말하는 사람

용감한 녀석

허공이 있는 풍경

구름의 생각

 

 

작품 해설/ 박슬기(문학평론가․한림대 국문과 교수)

원본 없는 시대의 시 쓰기

작가 소개

황성희

197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앨리스네 집』, 『4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다.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황성희"의 다른 책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11일

ISBN 978-89-374-5794-4 | 가격 5,600원

날카롭고 리듬감 넘치는 언어로 노래하는
원본 없는 시대의 시 쓰기

지나온 모든 문학 작품들을 복제한 복사본들을 만들어 내는 이 키치적인 시 쓰기야말로 황성희만이 가능한 고유성이다. 심지어 이 시들은 진리의 허위를 비난하는 아방가르디스트들의 태도마저도 복제한다. 그러나 아방가르스트들이 원본 없는 원본성을 지향했다면, 그는 원본 없는 복제본 그 자체, 오직 원본을 향한 끝없는 환유적 노정 그 자체인 복제본만을 만들어 낸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여백 속에서 아무도 오리지널이 될 수 없고, 자신 또한 결코 오리지널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되면 된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믿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순간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자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믿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해야만 믿음에 도달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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