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6년 4월 25일 | ISBN 978-89-374-0740-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16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우수문학도서 선정
이것은 아주 낯선 듯하면서도 친근한,/ 알 수 없는 그녀의 느낌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나의 느낌이기도 한,/ 부드러우면서도 아무 곳에나 스며들지는 않는,/ 견고한 듯하지만 빈 공간으로 가득한,/ 경쾌하고 또 불안한,/ 그런 이야기. ―이장욱(시인)

편집자 리뷰

2004년 《현대문학》에 「칸트의 동물원」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근화의 첫 시집이다. 등단작 5편을 포함한 시 57편을 3부로 나누어 실었다. 「칸트의 동물원」, 「왕의 항아리」, 「유리문 안에서」를 비롯한 그의 등단작들은 “뚜렷하고 신선한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문, 릴케ㆍ프랑시스 퐁주의 시 등 다양한 텍스트에서 전거를 차용하며, 일상에 대한 태연한 묘사에 신화적ㆍ동화적 모티프를 불쑥 난입시키는 그의 독특한 언어 구사는 단연 돋보이는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전위적이되, 그 전위성은 유리로 깎은 투명한 렌즈처럼 가볍고 절제된 언어로부터 온다. 그런 점에서 이근화의 시는 미래파로 불리는 황병승, 김근 등을 비롯한 젊은 시인들이 특유의 ‘장광설’로 구사하는 미학적 수사로부터 비껴나 있다. 이근화의 개성은 생경한 소재와 도착적 언어들을 구태여 불러들이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단단하며 전위적인 시세계를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그의 언어는 시인 이장욱의 발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아무 곳에나 스며들지는 않”으며 “견고한 듯하지만 빈 공간으로 가득한”, “경쾌하고 또 불안한”, 그리하여 “오븐에서 갓 꺼낸 빵처럼 유연하고 향기로운, 우울한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갸우뚱하게 살아나는” 이상하고 낯익은 일상을 차분히 소묘한다. 그러니까 그가 선보이는 시적 파격은 멀고 낯선 것을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에서 고개를 문득 돌리면 무수히 드러나는 구체적인 사물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데’ 있다. 그가 《현대문학》 ‘신인추천 소감’에서 밝히고 있듯, 주위에는 “아무 말도 없거나 너무 많은 말들”이 있다. 고요하고 심드렁하고 그래서 엉뚱한 그의 자서(自序) 또한 이러한 사물의 목소리와 ‘너무 많은 말들’, 그리고 그것들의 틈새가 빚어내는 구멍을 들여다볼 뿐이다. 이상하다. 고요한데, 전위적이다.
프라이데이 나이트, 개미 공장, 영덕 대게, 우물 속의 여자, 골목길, 구름의 배후, 냉장고, 뜨거운 감자, 세 번째 죽은 마을, 짱구네 분식, 과감한 나무, 벙어리 요리사 등이 시집에서 제외되었다. .―『칸트의 동물원』, 자서 전문

기중기, 칠레산 홍어, Dog Bakery, 사라지는 꼬리, 커다란 입. 요즘에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 말도 없거나 너무 많은 말들을 걸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것에 기대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표면을 부수어 내부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건축가와 같지만, 다시 그 안으로부터 서서히 빠져나온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가출증이기도 합니다.―2004 《현대문학》 ‘신인추천 소감’ 시 부문
■ 꼬리의 시학(詩學), 시학(視學)의 꼬리“꼬리는 너무 길고 가늘고 아름답다“ 이 사물들과 그 틈새라는 질료는 그것들의 퇴화된 흔적과도 같은 꼬리를 통해 언어적으로 구축된다. 200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심사평에서 이광호가 말했듯, 그의 시세계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은 ‘꼬리의 상상력’이다. 왜 꼬리일까. 무엇의 꼬리일까. 「칸트의 동물원」, 「이중 모션」을 비롯한 그녀의 시 곳곳에 “너무 길고 가늘고 아름다”운 꼬리의 흔적은 순간순간 출몰하고 사라지며, 또 다시 언제라도 시작된다. 서른을 갓 넘긴 신인의 등단작으로 믿기에는 매우 뚜렷하고 일관된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는 그에 대한 시평은 이러한 꼬리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사물의 사이, 일상의 틈과 균열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고집스러운 ‘바라봄’에 근거한다. ‘꼬리’는 시집 곳곳에서 “사이사이 사라지며”, 그 아슬한 부재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것을 꼬리의 시학(詩學)이라 부른다면, 무수한 우연들과 단속적인 사물들의 중첩으로 이루어져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학(視學)의 꼬리는 바로 그러한 세계의 우연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유물론적인 환유이다. 그러니까 꼬리는 나와 타자를 매개하는 것도, “조화를 가득 실은 수레”와 같은 삶의 고리를 순회하며 이어주는 영특한 매개물도 아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사라지는 가늘고 민첩한, 그래서 아름다운 꼬리이지만, 다음에 이어야 할 인과의 고리를 놓치고 엉뚱하게 생각에 잠기는 미련한 꾸물거림의 증거이자, 잠시 벗어놓은 누군가의 웃옷처럼 무연한 허물이다.
사이사이 사라지는 무한정 아름다운 꼬리와 단 하나의 꼬리 사이 ―「눈뜬 이야기 」 부분
꼬리를 밟지 않기에는/ 꼬리는 너무 길고 가늘고 아름답다// ……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면/ 그건 사라지는 놀이지만/ 사람들은 언제라도 중간부터 시작된다 ―「칸트의 동물원」 부분

함께 일을 도모하고 싶어요. 원하는 걸 갖지 않는 게 이 게임의 룰이죠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놓치는 거예요 벼랑 위의 오른손 왼손 ―「나나」 부분
■ 꼬리를 물고 도는 이상한 반복의 놀이“당신과는 하룻밤도 지내지 못했어” 그러므로 꼬리를 물고 도는 이 놀이는 “원하는 걸 갖지 않는 게” 규칙이고,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를 “놓치며” 반복되는 이상한 게임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코커스 경주(Caucus-Race)처럼 둥근 원에 여기저기 늘어서서 달리고 싶을 때 달리기 시작하여 쉬고 싶을 때 쉬는, 그러므로 출발도 끝도 알 수 없으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상한 반복의 놀이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거지?, 누구나 묻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놀이가 지닌 전복의 힘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는 게임은 ’사라지는 놀이지만‘, 그것은 (’언제나‘가 아니라) “’언제라도‘ 중간부터 시작”되는 기이한 생성의 놀이이다. ’사라지는 놀이지(만)‘ ’중간부터 시작된다‘ 사이의 기이한 역접의 접속사. 이 역접의 패러독스가 드러내는 부조리(absurdity)가 바로 꼬리가 도모하는 이중의 힘, 즉 매개 아닌 매개, 순간적이면서 지속하는 두 겹의 힘이 발원하는 구심점이다. 그렇다면 김언이 이근화의 시의 ’꼬리‘를 두고, ”매순간 움직이며 남겨놓은 흔적이면서 방금 전의 자신과 연결되는 고리가 되고, 가장 멀리 있는 타자와 자신을 매개하는 다리가 된다.”(김언, 「우리는 왜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가」, 《애지》 2006년 여름호)고 했을 때, 이것은 어쩌면 오해가 아니겠는가. 그가 구축한 시학의 꼬리는 오히려 아무런 다리도 어떠한 매개도 되지 못한다. 시학의 꼬리는 그러한 꼬리가 아무런 매개나 다리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시하는 손가락이다. 이 매개 불가능성이 바로 꼬리의 비극이며, 이근화의 시에서 무게가 없는 듯한 투명한 불안과 공포가 발생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떨어지는 하나의 별을 봤을 때 내가 기도했다고 생각해? 짧고 순간적인 꼬리가 힘겹지 않아? 그 꼬리가 담장 하나쯤을 무너뜨릴 때 ―「이중 모션」 부분

공이 마구 휘어져 돌아갔다/ 제 갈 길을 갔다//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것들이 수레에 실려 왔다. ―「수레의 영혼」 부분

세 개의 소원 중에 마지막의 것은/ 주인의 얼굴을 지우고 사라지는 것이다 ―「봄의 얼굴」 부분

일로나 치치올리나 스텔라의 에로 무비. 「치치올리나의 초콜릿 바나나」의 열대우림과 악어새의 두려움과 악어의 눈물과// 당신이 줍고 있는 현실적인 사과의 붉은 빛/ (……) 당신의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에요? 이건 비밀이지 당신과는 하룻밤도 지내지 못했어 ―「당신의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에요」 부분
■ \’서정의 블랙홀\’을 피해 가다 \”나는 미래의 이야기에 손끝을 베었네\” 이 꼬리는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휘어지는 공의 제 갈 길”을 단 한 치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세계 및 역사에 대한 패퇴를 나른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꼬리는 \”새로운 것들\”을 \”수레에 실어\” 오며, “담장 하나쯤을 무너뜨”리고, \”주인의 얼굴을 지우고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꼬리의 시학이 지닌 두 겹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겹의 힘은 어떠한 비극적인 수사나 통렬한 비애와 서정적 비감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가 구축한 시학, 바라봄의 꼬리는 이장욱의 표현대로 화자의 내면이나 생의 ‘비의’를 가리키고는 단일한 의미망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음으로써 “서정의 블랙홀“을 유유히 피해 간다. “모든 것을 제 느낌과 깨달음과 전언에 귀속시키는 서정의 권위가 여기에는 없다. 삶의 무게와 의미를 전하는 서정시의 소실점은 사라지고, (…) 이것은 서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이다. 서정은 서정의 내부로 내려가 서정 자체를 넘어선다. 그 바깥에 있는 것은 물론, ‘반(反)서정’이 아니라 ‘다른 서정’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다른 서정들」, 나의 우울한 모던보이, 창작과비평, 2005년, 33~35쪽) ‘서정을 넘어서는 서정‘의 저편에서 시인의 시 쓰기, 꼬리의 놀이는 다시 반복된다. 이 놀이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경쾌하지만, “당신과는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므로 불운하다. 경쾌하고도 불운한 이 놀이는 곧 ‘서사의 놀이’이며, 생의 “손끝을 베”는 “미래의 이야기“의 역학이다. 화자는 ”그다음은 모르네“라고 눙치지만, 이는 결국 우연히 떨어지는 ‘비의 언어’를 정교하게 ‘스크래치’하는 언어의 모험을 계속하리라는 시인의 의뭉하고도 엉큼한 선언이 아닐까.
나의 이야기를 사시오./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겠지만// 나는 미래의 이야기에 손끝을 베었네/ 그다음은 모르네 정말 모르네 ―「미래의 이야기」 부분

떨어지는 빗방울이 땅바닥에 쓰는 핏빛 연서, 나는 비의 언어를 스크래치하는 자 다만 연필 자루를 끝까지 쥐고 있을 뿐이다 ―「하이웨이 컬렉션」 부분

● 지은이 이근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2004년 《현대문학》에 「칸트의 동물원」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목차

제1부 피의 일요일/ 눈뜬 이야기/ 본 적 있는 영화/ 칸트의 동물원/ 왕의 항아리 멍든 자국/ 식사 시간/ 단지 금발인 여자/ 고베의 자진/ 지붕 위의 식사 수레의 영혼/ 꿈의 구장/ 아이스링크/ 이중 모션/ 따뜻한 비닐/ 검은 소설 크레커 데이즈/ 두 얼굴의 구름/ 박쥐처럼 제2부 아이 라이크 쇼팽/ 고등어/ 유리문 안에서/ 만원 버스 칠레라는 이름의 긴 나라/ 아이스크림/ 나나/ 이상한 각도 세계의 날씨/ 요술/ 공놀이/ 풀 스토리/ 기차를 타고 유럽의 얀에게 새벽 강가에서/ 무서운 옷장/ 당근 소동/ 사소하고 개인적인 슬픔 나를 생각하는 어둠/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제3부 봄의 얼굴/ 그해 여름/ 칠 일간/ 기중기/ 철의 장막/ 뮤직 박스 미래의 이야기/ 새들의 전쟁/ 부츠와의 대화/ 불타오르는 운동장 그리운 비둘기/ 지하로 달리는 사람들/ 멀리 애인의 마음을 나는 모르고 먼 나라에서 애리카가 편지를 쓸 때/ 당신의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예요 잃어버린 고양이의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하이웨이 컬렉션 나의 사랑 김철수/ 육교

작가 소개

이근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2004년 《현대문학》에 「칸트의 동물원」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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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물원
베스 201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