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만식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5년 6월 10일
ISBN: 978-89-374-0733-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32쪽
가격: 7,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27
분야 민음의 시 127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시인만의 개똥철학 이만식 시인은 세상의 어떤 시인과도 정말 아주 다르다. 세상의 작은 것을 보는 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들은 종종 거대한 담론과 대중의 편견에 치우쳐 소외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굳게 믿는 이가 있다. 바로 이만식 시인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 사유하기 시작하는 이만식은 자신의 시(「뒤똥뒤똥」)의 한 구절처럼 개똥철학이라고 불리어도 상관없다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시 세계를 펼쳐나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우리에게 쉽고 즐겁고 기쁘게 다가온다. 이만식의 시 속에서 우리는 절대 고상한 척하지 않기, 비탄에 젖어 있지 않기, 혼잣말하지 않기, 힘들게 애쓰지 않기 등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시는 오랜만에 만나는 휴식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1부 개의 논리 폐가 개의 논리 호적 등본 피겨스케이팅의 재미 물구나무서기 즉사 아내의 철학 나는 걷는다 마운틴고릴라의 유토피아? 잉꼬의 발악 젊은 그들 산책 2부 철쭉과 물고기의 아침 인사 눈빛도 강간이다 철쭉과 물고기의 아침 인사 완벽한 사랑 백지 사랑의 아침 인사 맑고 청아한 소리 내가 사랑하는지 내가 모르고 암 참새의 주검 호안 미로는 누구인가 변신술 그 고요하게 멍멍한 3부 나의 죽음을 보라 「절망의 시대」 자연보호 반대 임금, 님 없다 고산 윤선도를 노래함 나의 죽음을 보라 위반 철조망 형 나는 소크라테스를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용서할 수 없다 민들레 나라 조국 근대화 걸어다니는 미라 친구-용산고 23회 졸업 30주년 기념 행사에 부쳐 나는 정말 아주 다르다 혁명과 사랑의 구호 수간 4부 똥 문제 똥 문제 뒤똥뒤똥 나의 자존심 아들 사랑 백화점 중년의 아내와 나는 만나기 힘들다 She has ever been in the park. 경식아 울지 않았다 광인 일기 천국의 손짓을 거부했다 망명 신청서 나의 사회생활 작별의 인사 다행한 일이다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이야기 -즐겁게, 재미있게, 기쁘게 시를 읽기 위하여
▶ 추천사
이만식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본질),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작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시인이다. 그는 아이러니, 위트, 알레고리 등을 시 속에서 종횡무진 구사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갖가지 의문에 해답을 구한다. 그가 행한 사물의 희화화 작업은 김수영이나 김지하가 보여준 사회 풍자나 현실 풍자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김삿갓과 김시습에서부터 내려오는 해학의 정신에 충실한 풍자시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의 해학은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이 땅의 완고한 독자들과 도깨비처럼 장난을 즐기려 드는 방식을 구사함으로써 새로운 풍자의 기법을 선보인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1. 일상의 언어로 정의한 삶에 대한 개똥철학(중략)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집에서 똥 누고 나왔다 어제 하루 종일 어려운 평론 부담스러운 평론 욕하는 평론 하나 끝내고 짧은 밤이지만 편하게 자서 그런지 그래서 긴장이 풀렸는지 오늘은 오래간만에 화장실에서 점잖게 일을 보았다는 즐거움을 보고할 수 있는데 (중략)어찌 하나 어떻게 하나 어떻게 이 똥의 현상학 이 똥의 철학 이 개똥철학 아니 이 사람똥철학을 전하나 어떻게 전하나 걱정이다 정말 걱정이다 걱정걱정 뒤뚱뒤뚱 뒤똥뒤똥 -「뒤똥뒤똥」 중에서(중략) 딸은, 지금 기말고사 시험공부에 시달리는 딸은 배가 아파서 괴로워합니다. 나는 딸의 똥 문제를 너무 잘 이해합니다. 내가 모든 똥 문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똥은 염소똥이거나 아니면 설사입니다. 너무 고단한 삶, 너무 긴장된 삶, 나는 딸이 열심히 살기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딸이 나 같은 똥을 갖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똥 문제」중에서어느 시인이 ‘똥’을 노래하려고나 생각했을까? 어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똥이 힘겨운 염소똥이거나 곯은 설사임을 한탄하며 사랑스러운 자식의 똥은 그렇지 않기를, 자신처럼 삶이 고달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유쾌한 방식으로 읊는 시인을 만나기란 독자들에게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똥 문제」는 우리 생활의 실제적인 얘기이고 매일같이 벌어지지만 더럽고 은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나의 금기되어온 터부를 이렇게 과감하고 재밌게, 그리고 또한 쉽게 풀어놓으면서 재미와 감동까지 주는 게 이만식의 유쾌한 시 세계이며, 그가 말하는 개똥철학의 단면이다. 이만식은 시가 독자들에게 어렵고 난해하게 다가가길 원하지 않는다. 시는 즐겁고, 재미있으며, 기쁘게 읽어야 좋다고 한다. 가슴에 와 닿기보다는 그저 졸립고 하품 나게 만들던 시들은 우리를 시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게 그의 근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식 시인의 말을 빌려보자. “한 편의 시는 한 장의 그림처럼 혹은 하나의 인간처럼 하나의 세계요 우주다. 따라서 그 속으로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출입구도 하나가 아니다. (중략) 그저 편안하게, 글자 그대로 마음을 열고 우연히 내게 찾아온 시 한 편부터 만나, 야 재미있구나, 그것 참 즐겁구나,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라고 감탄하는 것이 시집의 세계를 오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출입구일 것이다.”
2. 풍자로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운 시(중략) 나도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를 뿌리로 한 그루 참나무가 되겠구나. 그런데, 어제, 물구나무를 섰다. 어쩐 일인지 두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엉덩이를 밀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무가 아니었다. 머리도 흔들리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손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고, 두 다리도 흔들리고, 엉덩이도 비틀거리고, 몸의 어느 부분도 나무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나는 갈대일 따름이었다. 드디어, 물구나무를 서니, 참나무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뿌리가 흔들리는 갈대였다. – 「물구나무서기」중에서일찍이 파스칼은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이다.”라고 사유한 바 있다. 이만식은 거친 풍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 즉 자연 앞에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개인 내부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인간의 약한 일면을 ‘물구나무서기’에 비유하여 다시 한번 성찰한다. ‘물구나무서기’를 통해 바라본 그의 성찰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유에 못지않다. 물구나무를 선 두 손이 체중을 견디지 못해 흔들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정말 “머리도 흔들리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손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고, 두 다리도 흔들리고,”이다. 그래서 인간은 갈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인 우리는 튼튼한 뿌리가 있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쯤은 흔들리는 갈대여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듯하다.
3. 언어에 대한 성찰과 잔인한 깨달음나의 삶이 탄생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저 계속 살아 있다면 안전하게 죽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중략) 고난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자궁이 문제다 어머니가 다시 자궁을 열어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미 폐경기가 지난 어머니의 자궁이 열릴 것인지도 문제다 아니, 더 큰 문제는 이제는 사이가 나빠진 어머니가 아주 고통스러울 나의 접근을 증오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나의 삶이 탄생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리 큰 문제가 없으니까 그저 살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탄생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인지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탄생으로 가는 길은 너무 어렵다 너무 끔찍하다 -「다행한 일이다」중에서물론 이만식의 시는 그저 재미있기만 한 농담과는 다르다. “폐경기가 지나 어머니의 자궁이 닫혀 있으므로” 그 자궁을 열어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죽음 그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행한 일이다」는 시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삶에 대한 ‘잔인한’ 깨우침을 시적 성찰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누가 들어가거나 나가려 해도 비켜주지 않으면 ‘문’이 될 수 있다는 「변신술」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눈빛도 강간이다」 등 그의 시 중심에는 언제나 언어에 대한 성찰이 자리 잡는다. 그러한 언어관은 눈에 잘 들어오는, 바라보려고 하지 않아도 바라보게 되는 거대한 구조물에 있는 게 아니라 보려고 노력해야만 시선에 들어오는 것들,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들을 아주 소중하게 간수하며 취급하는 데에 있다.
▶저자 소개: 이만식 1953년 서울 출생. 1992년에 《작가세계》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시론』,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이 있으며, 저서로 『T. S. 엘리엇과 자크 데리다』, 역서로 『해체비평』등이 있다. 현재 경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