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이후 6년 만에 성미정의 두 번째 신작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대머리와의 사랑』(1997)에서 산문시의 형식과 동화, 야구 등의 소재를 통해 파편화된 서술로 아름다운 동화를 환기시키며 불모(不毛)의 세계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었는데, 이번 시집에서도 그녀 특유의 진부하지 않은 비유로 동화적 상상력이 한껏 발휘되었다
기묘함으로 풀어낸 일상의 소재
성미정 시인의 부부를 헤어지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가방’, 똥을 싸는 것처럼 태어난 ‘아이’, 그녀가 즐기는 ‘콩나물’과 ‘띠포리’ 다듬기, ‘실용적인 마술’, ‘아줌마’, ‘꽃’ 등이 시의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동화적인 상상력과 실험적인 창의력으로 묘사하여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이러한 평가, 즉 ‘패셔너블’하고 ‘아방가르드’한 ‘모자’를 거부하지만, 시 속에는 재치 있고, 독특한 실험성이 군데군데 배어 있는 게 사실이다. 시에 등장하는 이러한 기묘한 비유 말고도, 그녀가 즐겨 구사하는 산문시 혹은 한문 투의 형식도 이 시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이다.
지난 몇 년간의 삶의 편린이 모여서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라든지 먼 바다의 고래 울음 같은 걸 시로 쓰고 싶었지만 고지식하고 소심한 손으로 쓴 시집에는 그런 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시적이고 환상적인 주술의 언어를 쓰고 싶은 콤플렉스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이 삶이 더 기괴하고 환상적인 걸 어쩌랴. 남편은 보랏빛 콧수염을 떼어내고 날마다 어디론가 나가고, 갑자기 나타난 아이는 콩나물처럼 무섭게 커가고 있으니……. -성미정
시적이고 환상적인 주술의 언어
시인 자신은 ‘시적이고 환상적인 주술의 언어’가 단지 한때의 콤플렉스였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그녀가 현재 더 기괴하고 환상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일상을 가지고 ‘무지갯빛 토마토’, ‘샴 토끼’, ‘매직 부츠’, ‘한 조각 독한 비누’, ‘비린내 같기도 하고 귤냄새 같기도 한 향기가 나는 꽃’, ‘c\’est la vie’, ‘보선을 신은’, ‘비밀한 발’ 등으로 비유해 냄으로써, 그녀도 모르게 ‘시적이고 환상적인 주술의 언어’를 이 시집에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조각 독한 비누를 발견하고 그것을 삼켜 버리거나,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나의 살을 먹고 나서도 질긴 내장까지 먹어치우고, 또 사냥꾼을 먹어치우곤 싱싱한 피로 가득 차서 눈이 빨갛게 충혈된 토끼 등, 그녀의 시에는 첫 번째 시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삶의 끔찍성에 대한 동화들이 그려지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소재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기괴한 방식으로 단순화하거나 과장하여 탈코드화된 흐름으로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 성미정1967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대머리와의 사랑』(1997)이 있다.
어느 푸른 밤엔 이 모든 풍경을 오래된 나무 찬합에 담아 원족을 나가면 더욱 좋겠소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빠쪽한 보랏빛 콧수염을 꺼낼까 말까 갈등하는 당신의 안해가나는 공원에서 앵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느니라나는 드디어 한 조각 독한 비누를 발견하고비밀한 밭은 늘 보선 신고아직은 안해의 거울을 부술 때가 아닙니다쓰레기통에 버려진 법랑 그릇에 이런 시가 쓰여 있었소언젠가 한번은 찾아온다는 모자를 벗기는 바람사랑은 야채 같은 것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장래 희망은 인어실용적인 마술식성-남의 살식성-나의 살불멸의 털 1불멸의 털 2사냥의 즐거움다소 엽기적인샴토끼 혹은 삶, 토끼보테로 식으로 토끼를 그리는 토끼네모난 토끼털갈이의 계절하얀 병원어린 병원쌍생아첼로 케이스 안에는 첼로가 있어야 할 것너어스 김수영김종삼은 귀가 크다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매직 부츠 신은 아줌마계란 계단과 아줌마구두 먹는 곰구두 만드는 사람의 시간그들은 그렇게 간결한 시를 구웠죠나의 콩나물 다듬기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스누피란 놈성미정 베이커리똥을 싸는 게 미안하다매우 드라이한 출산기엄마 털 같은 거사실은 제가 영자 아빠를 죽였죠꽃의 이름은 C\’est la vie무지갯빛 토마토 서른 살거북, 나를 먹으러 오다다락다락방이 소녀를 엄마라고 불렀죠너무 길고 슬픈 다락방 이야기를 싫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나, 이상한 파란색누가 그녀에게 검은색을 입히려 할까희고 얇고 가비야운 죽은 나무에게경력, 시인의 꼬리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느 시인의 고백시인은 자고로 예민해야시인 아버지 노릇의 어려움글을 쓰기 시작하다내 글은 아직 비싸지 않다좋은 생각에서 원고 청탁이 왔을 때실험적이고 모더니티한 시를 쓴다는 성미정 씨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