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철훈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2년 6월 15일
ISBN: 978-89-374-0704-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00쪽
가격: 5,5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10
분야 민음의 시 110
정철훈의 시는 異邦과 교신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이산의 가족사적 배경과 시인 자신의 러시아 유학 체험에 뿌리박고 있을 터인데, 그리하여 그의 시적 觸手는 ‘홀로 국경을 지키는 오랑캐꽃’이 핀 변경을 지향한다. 광막한 겨울이 지배하는 변경, 투쟁 속에 연대가 빛나는 인간적 삶의 始原의 장소로서 북방을 사유하면서 시인은 건너갈 대륙을 상실한 ‘지금 이곳’, 남한 사회를 침통히 응시한다. 저주 받은 매혹 속에 도시에 포획된 시들이 횡행하는 최근 시단에서 庸岳과 白石의 황홀한 부활을 꿈꾸는 그는 정녕 이방인, 도시를 배회하는 한 마리 푸른 이리가 아닐까?-최원식(문학평론가)
정철훈의 시 세계에는 북방의 무채색 빛깔과 서늘한 바람결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이색적인 낯선 풍광과 정서로 다가온다. (……) 화자의 주관을 배제시킨 채 시적 내용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며 긴장력과 생동감을 자아내는 시적 표현은 문득 해방 이전 백석의 시 세계를 연상시킨다.-홍용희(문학평론가)
자서1부봄날 | 화신 | 알 수 없다 | 마당 | 속풀이 | 아홉 아침 | 정전 | 빗소리 | 만월 | 무덤 속 살림슬픈 몬순 | 화분이 과분하다 2부북방 | 야식 | 햇볕 한 줌의 집 | 멀리 보인다는 것 | 겨울밤 | 처가 삼간 | 북어를 찢으며남남북녀 | 평양의 하루 | 눈보라 치던 날 | 백석을 찾아서 | 구슬비 | 아야진 서더리 | 삼팔교 너머늙는 법 | 모스끄바의 밤 | 성 뻬쩨르부르그행 | 야시장 | 보이지 않는 역사3부창동역에서 | 절반 | 날궂이 | 메리 성탄 전야 | 시민 K | 나주곰탕 | 운구를 기다리며 | 오월의 소리오월 여관 | 마라톤주의자 | 아메리칸 푸토피아 | 어금니를 뽑고서4부때거우 | 땡삐 | 꺼꾸리 | 망령 | 외가 | 귀향 | 꽃샘 추위 | 첫눈도 내리건만 | 마포 바지라기대인시장에서 | 고향길 | 애간장 | 마당을 쓸며작품해설 : 북방, 그 낯선 그리움 – 홍용희
정철훈 시집『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는『살고 싶은 아침』(2000) 이후 시인이 틈틈이 써 모아온 50여 편의 시들을 모았다. 시인은 전형적인 80년대의 감수성을 지녀 왔으며, 첫 시집에서부터 그는 분단, 혁명, 모스크바, 광주 등의 역사적인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해 왔다. 이번 시집의 자서에서 시인은 \”그것이 詩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묻는데, 보다 완숙한 시적 경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시인의 자세가 엿보인다.
\”오래전 국경 마을에서였을 것이다. 火酒가 놓인 선술집 식탁으로 싸락눈은 들이치고 십오촉 전구의 벌건 필라멘트가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것이 詩의 자리는 아니었을까. 머나먼 발전소에서 오는 전압을 온몸으로 견디는.\”
민중적 서정시의 한 전형이라 할 그의 작품들은, 첫 시집에서보다 더 견고해졌다. 북방의 낯섦, 역사의 순례, 광주의 상흔들을 다룬 시편들 앞에는,「봄날」,「花信」,「아홉 아침」과 같은 일상의 서정을 담은 시편들이 있다. \”봄날 녹슨 함석지붕이 운다/ 봄바람에 어깻죽지를 들썩이며 운다\”(「봄날」), \”내 사는 타향까지/ 풋내 나는 꽃은/ 왜 북상하는 게오/ 꽃이 올라오오\”(「花信」), \”오느냐 새벽아/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알 수 없다」)에서 보듯, 시인의 정서를 버티는 관조적 시선은 슬픔의 정서와 그리움, 무색무취의 침묵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목소리는 2부, 3부의 시편들에서는 \”우리 사회의 지층\”에 자리잡은 \”북방에 대한 간곡하고 애틋한 기억들\”을 내밀하게도 구현해 낸다. 앞에서 밝혔듯이, 시인의 가족사적인 토대는 북방과 연관되어 있다. 시인은 많은 경우, 북한 지역은 물론 러시아, 중국 등지의 곡진한 정취와 풍광을 그려 보여 주는데, 이것은 \”북방의 정서를 표면으로 끌어올려 현현시킨 의미를 지닌다.\”(홍용희). 우리가 갖고 있는 북방의 정서는 잠재의식 속에 면면히 내재하는 원형 심상에 해당한다. 과거 역사의 무대였던 곳, 저편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해방의 출구로 존재하는 광활한 상상의 대륙\”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러한 북방의 정서를 견고하게, 그리고 화자의 주관을 적절히 조절해 간다.
두만으로 압록으로 말을 몰던 유격대의 자손도 늙어 등 굽은 서너 명모스끄바의 낡은 아파트에 둘러앉아 아버지가 먹었다는 산국을 끓이던 날망명지의 밤으로 눈은 내리고돌아갈 조국은 어디런가내 부모는 형제는 피붙이는 그리움은모두 설국에 묻혀 눈보라가 치고 술을 마신다-「눈보라 치던 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