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시인의 시는 검박(儉朴)하고 깊다. 아마 이 시에서 극도로 미세하고 고요한 ‘모래알 속으로 숨듯이’라는 밀집된 이미지가 빠졌다면 시인이 의도하고자 했던 ‘갇힌 산사’의 평온하리만큼 고요한 대적감(大寂感)이 상실되었을 것이다. (…) 형태는 선시처럼 언어의 극소화를 지향하지만 의미는 시의 수면 밑에서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조정권(시인)달마가 동쪽으로 왔듯이 최동호 또한 동쪽으로 갔다.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 한산(寒山)을 낳고 멈춘 후 14세기 후에 오늘 그 한산(寒山)으로부터 바쇼까지 최동호가 걸어간 길이며 그 길이 바로 선(禪)의 자취이다. 달마의 뜻이 한산(寒山)을 거쳐 바쇼에 이르러 사리처럼 응결된 꽃으로 피어난 것, 그리고 이 꽃을 향한 등정이 최동호의 시이다.-이성선(시인)
책머리에1달빛선원의 황금사자둥근 달에게 달마를 묻다눈 그친 날 달마의 차 한 잔겨울 밤 조사들의 말뼉다귀돌사람이 춤을 춘다백담사 나뭇잎 법당빗자루의 등신 그림자풍경이 하늘을 끌어안다산들바람해골바가지 두드리면 세상이 화창하다아버님 말씀바람의 친구가 등뒤에가을 내장사원숭이 잔등에서 물기가 번쩍일 때한 고독한 스승에게 수염없는 달마의수염벌레2세속의 길벙어리 사복 원효를 가르치다어미와 극락 간 사복애비 없는 사복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거미줄반딧불은자의 꽃어깨 움츠리는 소나무모래알보다 작은 산들가을 하늘 움켜쥔 물방울생선 굽는 가을노루꼬리 지팡이모래산의 먼지천년의 사막에서 사랑이 날아간다너는 누구인가중년의 푸른 신호등속살 붉은 일기장조신의 꿈3밤기차를 타고 유랑하는 별들포도빛 입술바람의 도리깨질사랑의 목소리는 실금처럼 메아리친다호도 속 마음의 우주쓸쓸한 사랑을 위한노래대속의 피막은빛 빙어가 프라이팬을 후려칠 때사랑의 앞마당세월의 산 그림자등불 그림자아름다운 식사코뿔소의 사랑녹차 한 잔의 미소나타샤의 손수건바쇼암의 물살 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