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드러내는 임영조의 다섯 번째 시집.
그의 시는 진솔하고 포근하다. 유종호 교수 말마따나 “청승맞은 먼산바라기나 무중력 공간에서의 실감 없는 유영을 도모하지도 않”고, “황당한 수수께끼를 내밀어 신입 독자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하지도 않는다.
[시]
그대에게 가는 길 5
가다 보면 길들은 자주 끊기네끊어진 길은 때로 아련한 기억 속메꽃빛 등불로 사운대거나벼랑 끝에 이르면 언어로 집을 짓네먼 마을 스치는 구름의 기척에도 마음벽 쩍쩍 금이 가는 집온채가 제 무게로 기우뚱거려도모든 길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네가파른 삶은 때로 길을 비뚤게 하고고행은 서역처럼 멀고도 쓸쓸하나더러는 가슴 아린 열락을 덤으로 얻네이녘은 조용한데 밤낮 치대는 파도그 소리 좀 엿듣다가 오던 길 놓고한결 순해진 귀로 그대에게 가는 길아직도 위험한 불씨를 감춘 그대 뜨거운 언어의 중심으로 들어가나 화려하게 자폭하리라, 그 후는바다에 떠 출렁이는 그리움 되리오래된 시집처럼 해어진, 그래서 눈길보다 추억이 먼저 닿는 섬 허나, 제부도는 늘물때를 알고 가야 길을 내주네.
[발문 중에서]
이소 임영조의 시는 청승맞은 먼산바라기나 무중력 공간에서의 실감 없는 유영을 도모하지 않는다. 짐짓 황당한 수수께끼를 내밀어 신입 독자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하고 거짓말을 한 아이처럼 혼자 쌩긋하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진솔하고 포근하다. 조용히 관조하고 골똘히 음미하고 열린 마음으로 체감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그의 시는 지혜와 원숙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무작위로 골라낸 다음 시행에서와 같이 어느새 탈속의 경지에 도달한다.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
—유종호(문학평론가)
임영조 시인은 의인화의 명수다. 우리나라에서 사물의 의인화를 이토록 절절하게 빈틈없이 구사하는 시인도 드물다. 지금까지 임영조 시인은 인간이 사물을 의인화하는 한 극점을 보여주었으나, 이제는 사물이 인간을 의물화하는 극점까지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임영조 시인의 시를 통하여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사물과 이야기할 수 있고, 사물의 목소리를 내는 인간과 속삭일 수 있다. 이 시집은 그가 한 인간으로서 내보인 틈의 진경이다. 그의 틈에는 노란 민들레가 핀다. 그리고 이 꽃잎 위에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진다. 그만큼 그는 외로움을 아는 시인이다.
—정호승(시인)
시인 임영조는
<현대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가연보>
1945년 충남 보령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1970년 《월간문학》 제6회 신인상에 시 「출항」 당선.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목수의 노래」 당선.1985년 첫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 출간.1988년 두번째 시집 『그림자를 지우며』 출간.1991년 제1회 <서라벌문학상> 수상.1992년 세번째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 출간.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1994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 수상.1996년 시선집 『흔들리는 보리밭』 출간.1997년 네번째 시집 『귀로 웃는 집』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