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뒤 98년 타계한 저자의 시집. 별이 꽃이 되거나 사랑이 나비가 되는 것은 너에 게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노래한 그리움의 싹 외 위험한 측근 인간만 자라지 않는다 등 60여 편의 시를 묶었다. 월월붕붕이라는 집 달 월자 여섯 개만 쓰면 집 이름이 된다고 낄낄거리던….. 월롱산 아래 달이 뜨면 달이 여덟 개나 된다고…… 문학 청년의 객기와 열정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영원히 유지되는 특별한 정서를 가진 이가 원희석이었다 그가 벌써 <스스로 잊혀지는 길>로 건너갔다 그가 사는 것이 월롱이었나 싶다 명복이라, 적멸이라, 모든 언표가 월롱이다 어찌 지워지지 않아서 담아둘 것인가 모두 사라지자.
어떻게 잊는가? 하는 것은 풍찬노숙 삶의 지뢰밭을 어떻게 지나가 버릴 수 있는가?와 마찬가지로 난해하다. 아예 잊어버릴 거리조차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일 터이지만 맺히는 것이 인연인데 그 결정의 밭을 피해갈 수는 없다. 피해 가기는커녕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기어이 사람을 찾아간다. 사연을 만들고 드디어는 도저히 피해 나갈 수 없는 인연의 갈고리를 만들고야 만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매일 만나는 것이 사람이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들은 모두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어떻게 잊을 것인가? 그 법원리 길가의 아가씨집들과 금촌 읍내의 지하 술집들과 탁구장, 인사동의 밤거리를, 월월붕붕의 난장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월월붕붕이라는 집. 달 월(月)자 여섯 개만 쓰면 집 이름이 된다고 낄낄거리던…… 월롱산 아래 달이 뜨면 달이 여덟 개나 된다고…… 원희석 시인이 금촌 월롱산 아래 폐허가 된 자그마한 집을 얻어 손수 고친 집이다. 집 앞에 제법 너른 과수원을 끼고 있고, 오래된 모과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서 집 아래까지 다가가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의 시선에서 잘 가려져 있는 집니다. 금촌으로 건너오라는 (우리집에서 금촌까지는 정말 건너갈 만한 거리다) 전갈을 받자옵고, 그 폐허의 집으로 갔었다. 척 보기에도 산자락 한가운데 자리잡은 풍광 좋은 한처였다. 그 겨울 내내 그는 우물을 판다, 지붕을 고친다, 보일러를 놓는다며 수선을 떨더니 다음해 그리로 이사해 들어갔다. 월롱산 아래 그 <요사채>는 일당들의 파난처요, 양산박의 득음처, 최소한 70년대적 정서가 주류를 이루는 <복고의 모임처>가 되었다. 특별히 달이라도 뜬다면 그 풍월은 주인장의 풍류와 함께 가히 <임자의 뜻에 따르는 처소>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곳을 만들어놓고 <월월붕붕>일대를 <외롭고 힘든 문인들을 위한 피난처>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발표했다. 우하하하…… 원희석…… 어찌 됐건 그의 이런 풍은 그곳이 <월롱>이어서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그는 최소한 내가 확신키로는 정말 그 일을 벌이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것뿐이랴, 그의 계획은 어디까지 뻗치는지…… 문학 청년의 객기와 열정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영원히 유지되는 특별한 정서를 가진 이가 원희석 시인이었다.
그리움의 싹 | 위험한 측근 | 하늘 편지 | 서울 묘지 | 화살나무는 왜 새가 되려 하는가? | 임진강 | 인간만 자라지 않는다 | 대나무는 단풍이 들지 않는다 | 인도로 가는 길 | 산머루꽃 | 24명의 도적 | 쇠기러기는 울며서 그쪽으로 날아간다 | 바늘구멍 앞의 타조 | 진흙의 집 | 원숭이는 자꾸 기어오른다 |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 하얀 땀, 검은 타르의 길 | 오전 10시에 배달되는 햇살 | 낡은 구두 | 한 짝 | 검은 악보 | 나무 전봇대야, 울지 마 | 놀이터 그늘에서 그네를 타는 어른들 | 널빤지들은 톱질을 기다린다 | 가을 섬 | 늙은 자전거도 체인을 감고 산다 | 비둘기 발목은 빨갛다 | 콩 | 들꽃들은 즐겁게 꽃을 피운다 | 신기료장수 | 바다는 너무 넓지만 돌멍게들의 체온으로 데울 수 있다 | 달빛 어둠에 앉아 | 금촌 아구탕집 | 주머니 | 수박씨와 파리 | 소방차가 없는 유리 도시 | 닭은 쉴새없이 머리 흔든다 | 한 근의 무게 | 모두 죽었다 | 숲은 청년의 가슴에 있다 | 길 | 별 | 다리 | 지렁이와 등뼈동물 | 들어라 정치인들아 | 메 | 우리 집 굴뚝 | 가을 여자 | 상지석리로 가는 길 | 느낌의 살(肉) | 부적 | 껌정뿐인 나라 | 구멍 속의 나라 | 장의사와 복덕방 | 아파치 요새의 추장을 어항 속에 가두면 죽는다 | 명사수의 비껴 쏘기 | 무혈점령 | 나무못 ▧ 발문 ▧ 잊는 법 / 배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