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여전히 폐허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많은 시인들이 소멸의 이미지 속에서 시를 살았다. 그리고 이제 여기 배용제를 읽고 있다. 죽음은 이제 진부한가? 세기말을 진동하는 너무나 많은 죽음의 풍문들 때문에 죽음의 표정이란 이제 심드렁할 뿐인가? 그러나 여전히 죽음은 낯설다. 그 숱한 죽음의 이미지들 속에서 어떤 죽음도 낡아지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 그것이 죽음의 보편성, 죽음의 재생력, 혹은 죽음의 현대성이다. 그래서 배용제의 시에서 당신이 만나는 것은 이미 진부해진 죽음의 풍경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 캄캄한 얼굴을 내미는 죽음의 장면들이다. 인상적인 시적 묘사력을 보여 주면서 죽음을 닮은 생에 대한 일관된 시적 성찰을 보여 주는 배용제의 시는,1990년대 후반 우리 시단의 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암시한다. 그의 시들은 현대 세계의 폐쇄된 실존적 상황에 관한 예리한 메타포를 통해 ‘죽음을 향한 존재’에 관한 반성적 성찰의 담론을 구성한다. 이것은 현대 세계에서 은폐되거나 억압된 ‘죽음을 향한 자아’를 부각시킴으로써, 미학적 현대성을 죽음의 현대성으로 구현하는 시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저 음험하고 집요한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대결하는 시의 현대성이란 이렇게 죽음의 현대성이라는 주제와 만날 수밖에 없다. 죽음의 현대성만이 자본의 신화가 건설한 세계의 뒷면을, 그 궁극적인 소멸의 자리를 미리 엿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이광호(문학평론가)
自序
저문 강/ 잠글 수 없는 무게/ 출입금지구역/ 항아리에 대하여/ 폐가(廢家)/ 묘지에서 묻다/ 어둠 속은 빠르다/ 묘지의 새들/ 낯선 길/ 옛 우물 옆,/ 일 번 국도, 흘러가는 것에 대하여/ 먼지의 세월/ 기억의 채널/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 JAZZ/ 불(火)/ 피아노/ 치매/ 박 씨의 주파수/ 그녀의 좁은 문/ 기차는 핸들이 없다/ 떡갈나무 숲으로 가다/ 몽유병자들의 천국/ 폐쇄 회로/ 몰락은 아름다운가/ 꿈은 또 하나의 쓰레기봉투이다/ 어느 삼류 극장 내부/ 폭주, 바람의 세포/ 폭주, 그 황홀한 파멸/ 산다는 것/ 달빛 걷다/ 외과의사/ 삼류 극장에서의 한때1/ 아름다운 세탁소/ 장미 축제/ 삼류 극장에서의 한때2/ 삼류 극장에서의 한때3/ 지하 생활자의 일기/ 식물, 혹은 인간에 대한 관찰/ 나는 미친 꿈을 꾼다1/ 나는 미친 꿈을 꾼다2/ 세상의 알약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그 다방, 세월의 기둥/ 늙은 여인의 저녁밥/ 새는/ 구부러진 길 저쪽/ 기념관/ 천변을 걷는 노인/ 어떤 중심 이동에 대하여/ 창밖의 여자/ 침묵에 관한 보고서/ 말들의 상점/ 소리의 집/ 엑스트라/ 거지의 잠/ 묘지 가는 길/ 휴일, 가리봉 5거리/ 옛 우물/ 외출/ 내 마음의 지도/ 공원의 노인들/ 그는 화물처럼/ 영안실
작품 해설/ 이광호 죽음을 닮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