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있지만 내 아버지가 아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니며
꿈이 있지만 꿈에 다가설 수 없다
루저들의 슬픈 자화상 ‘성재’의 그 치명적 사랑과 절망
“더 깊이, 나를 넣어 줘. 빠져나오지 못하게,
완전히 밀어 넣고 놓지 말아 줘…….”
■ ‘문제적 작가’ 김혜나의 ‘문제적 작품’ 『정크』
―‘정크족’의 존재론을 제시하다
‘루저 소설’의 등장은 2000년대 한국 소설의 한 경향이다. 그런데 작가 김혜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한다. 생활 속의 잡동사니나 망가진 기계 부품 따위를 이용하여 만드는 미술을 일컫는 ‘정크 아트’에 빗대어, 서평가 이현우는 김혜나의 작품들을 “정크 소설”이라 명명하고, 김혜나가 “자신만의 정크 소설을 적극적으로 발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정크』에 대해 또 이렇게 썼다. “작가는 ‘루저 중의 루저’가 겪는 생존과 자존을 문제 삼는다. 루저가 피해자라면, 루저 중의 루저는 자해자다. 다수에 저항하는 소수가 아니라, 소수로 오인되는 다수이기도 하다.” 사생아로 태어난 비정규직 동성애자인 까닭에 보잘것없거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취급당하는 주인공 ‘성재’의 삶은, 이 사회에서 그 자체로 정크 푸드나 정크 메일처럼 폐기 처분되어야 할 쓰레기로 취급당한다. 이 소설은 루저 중의 루저인 ‘정크족’들의 삶의 단면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그들의 존재 이유를 처절하리만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 루저 중의 루저, ‘정크 소설’의 탄생을 예고하다
“아버지가 있지만 내 아버지가 아니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니었”으며, 꿈이 있지만 꿈에 다가설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실 한가운데 놓인 성재가 자신의 결여를 채울 수 있는 방식은 화장을 통해 다른 존재로 변신하거나 마약을 통해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잊어야만 겨우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성재의 역설적 현실인 셈이다.
사회적 루저이면서 동시에 정기적으로 보건소에 들러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성적 소수자인 성재에게 과연 희망이란 가능한 것일까? 삶의 단 한 순간도 더는 견딜 수 없는 환멸과 고통, 그 절망의 끝에서 성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존재’란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무시, 그리고 자기 비하와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서만 간신히 얻어 낼 수 있는 자격인 것이다. 소설가 윤후명이 “젊음은 언제나 속속들이 아프다. 이 시대 젊음의 헝클어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며 가슴을 죈다. 여지없이 드러난 피폐한 얼굴은 더욱 처절하게 파헤쳐져서 앙상한 뼈만 남은 몰골이다. 한 줄 한 줄에 배어 있는 방황과 함께 젊음을 마주하면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작가 김혜나의 진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그것이 이 신인 작가의 목소리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며, 이 낯설고도 새로운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리라.
■ 작품 해설 중에서
『정크』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쓰레기 같은 새끼”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고투, 존재를 위한 고투를 그리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어떤 이들에게 존재는 자연스러운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무시, 그리고 자기 비하와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서만 간신히 얻어 낼 수 있는 자격이다. 김혜나의 ‘정크 소설’들은 이 시대 사회적 루저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크들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작가의 고투와 함께 한국 소설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되었다.
―로쟈 이현우(서평가)
『제리』로 한국문학에 전혀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대형 신인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제리』로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가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가 출간되었다. 등단작 『제리』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소설”이라 평하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표정을 제시한” 작가라 입을 모았다.
『정크』는 김혜나가 3년간 퇴고를 거듭하며 심혈을 기울여 온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정크』는 ‘상실의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포스트 루저’들의 서바이벌 게임이자 크라잉 게임이”라고 상찬했고, 서평가인 로쟈 이현우는 “이 시대 사회적 루저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크들의 존재론을 제시한” 작품이라 말하며 “작가의 고투와 함께 한국 소설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 평했다.
다음은 독자들의 차례다. 문제적 작가 김혜나의 문제적 작품 『정크』를 읽고 다시 한 번 충격과 감동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 준비가 되었는가? 이 작품에 깊이 공감할 눈 밝은 독자들로 인해 한국문학의 지형도는 이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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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소수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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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 | 2015.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