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정/체/불/명 형/용/불/가
현대 언어 표현의 최전선, 일본 문학계를 뒤흔든 최대의 문제작
엔조 도는 일본의 SF 전문 출판사 하야카와에서 『Self-Reference ENGINE』으로 데뷔한 이래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논란과 독자들의 충격을 부르며 일본 문학계를 뒤흔들어 온 문제 작가이다. 문학계 신인상, 노마 문예상, 와세다대 쓰보우치 쇼요 대상 장려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던 그는 『어릿광대의 나비』로 2012년 제146회 아쿠타가와을 수상하면서 또 한 번 문단을 흥분시켰다. 심사 당시 보수 성향의 심사위원으로부터 심사를 거부당한 색다른 에피소드를 남긴 이 작품은 언어를 둘러싼 극한의 유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파격과 전율로 가득하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어릿광대의 나비』는 누구보다 많은 언어로 소설을 쓴 ‘다언어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와 막대한 부를 쌓은 재산가 A. A. 에이브럼스의 기묘한 만남에서부터 시작하여 도쿄와 시애틀을 잇는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 모로코의 고도 페즈의 뒷골목,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카페, 가공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묘한 숲 속까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언어와 세계에 대한 사유를 펼치는 표제작 「어릿광대의 나비」와 함께, 원작의 번역자가 내놓은 번역본을 다시 원작자가 번역을 하면서 벌어진 문학적인 문제에서 시작하여 언어의 발생과 인류의 집단 원형까지 포괄하는 강렬한 사고 실험이 돋보이는 「마쓰노에의 기록」까지 두 편의 중편소설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형형색색 시시각각 변화하는 찬란한 언어의 만화경.
SF, 코미디, 엔터테인먼트, 전위 문학…… 모든 요소를 담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문학적 변수 엔조 도의 이번 작품집을 펼치는 순간 소설의 미래를 담은 ‘문학 회로’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 ‘수리(數理) 소설’이라는 장르의 탄생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여행하는 중에만 읽을 수 있는 책을 꿈꾼다. 여행 중에는 유독 책이 잘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나’와 비행기에서 조우한 A. A. 에이브럼스라는 사업가는 나와의 대화에서 착안하여 ‘~에서만 읽을 것’ 시리즈를 출판하고 부를 쌓는다.
한편 바로 다음 순간, 앞선 모든 이야기가 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글을 쓴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의 소설 『고양이 아래에서만 읽을 것』의 번역 원고였음이 밝혀진다. 이후 진행되는 소설에 대한 소설 이야기와 그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한 추적, 그리고 추적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상이 복잡하게 겹치면서 진행되는 「어릿광대의 나비」는 ‘이야기의 생성’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끝을 향한다.
한편 또 다른 수록작 「마쓰노에의 기록」은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잘 모르면서 서로의 작품을 계속해서 번역하는 기묘한 작가 두 명에게서 출발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저 거대한 장난에 불과한 두 사람의 상호 번역 작업은 곧 한계에 부딪치고, 결국 고심 끝에 소설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의 번역이 이루어진다.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인생인지 알 수 없는 극단적인 형식의 실험이 계속된 끝에 작품은 인류의 기억과 문자의 문제를 포괄하는 거대한 사유를 형성한다.
엔조 도의 소설에서는 공통적으로 ‘언어’와 ‘구조’에 대한 꾸준한 탐색이 엿보인다. 언어와 구조에서 형성되는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기발하고 자유로운 연상과 소재를 통해 밝혀내는 그의 작업은 단순한 집필이라기보다는 고도로 집중된 연구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리학도였던 작가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수리 소설’이라고 밝혔을 만큼, 수학적인 구성미까지 느껴지는 완벽하게 논리적인 구성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읽는 쾌감’을 선사하는 작품집. 이 강렬한 문학적 체험의 순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 아름다운 어휘의 변주와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
이것이 바로 미래의 소설
엔조 도는 분명 지금 일본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가 중 하나이다. 도후쿠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문화 연구의 메카인 도쿄대 종합 문화 연구과에서 수학한 이후, 첫 작품을 SF라는 서브 컬처 장르로 시작한 다소 이색적인 그의 이력은 이후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젊은 문학도라면 누구나 주목할 만한 엔터테인먼트와 순문학의 장르적 이종 교배와 SF 소설에서 빌려 온 형식적 실험을 시도해 왔다. 일례로 그에게 아쿠타가와 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어릿광대의 나비」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행하는 동안밖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읽을 수 있는 책 같은 건 재미없다. 어떤 일에나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을 것이며,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것 따위는 결국 어중간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물구나무선 채로 2분 동안에 다 읽는 책』 같은 제목일 것이며, 정말 물구나무를 서서 읽는 용도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물구나무서 있는 동안이 아니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평소에도 펼쳐서 글자를 훑을 수는 있지만, 실제 물구나무선 채로 다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머리에 오르는 혈류를 한껏 이용한 이야기다. 이것을 응용해서 『분노 속에서 깨우치는 계시』 같은 책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다.
—9~10쪽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상황에 특화된 이야기’라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팔이 셋 달린 사람에게 털어놓는 이야기』, 『고양이 아래에서만 읽을 것』 등 흔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의 제목들을 상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의 존재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킨다. 이야기의 가능성을 믿는 작가만이 떠올릴 수 있는 파격적인 발상이다.또 한 가지, 엔조 도의 작품에서 보이는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언어에 대한 천착이다. 언어에 담긴 의미가 다른 언어로 옮겨지면서 새롭게 변하는 방식에 주목한 작가는 어휘의 선택에 결벽적일 만큼 매우 신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장면, 나열되는 어휘는 지극히 감각적이고 문학적이어서 다소 이과적인 작품의 톤과 함께 독특한 화학 반응을 이끌어 낸다.
부엌과 사전은 닮은 구석이 있다.
하루의 요리를 마친 뒤 그날 한 요리를 돌이켜 보고, 뭐가 남았는지 생각하면서 사다 놓아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는 점이 그렇다. 늘 뭔가가 모자라서 손에 닿는 것을 대신 쓰게 되는 점도 닮았다. 조합에 정답이 없는 점이나 손질을 좀 하기만 하면 어떻게 당장은 넘길 수 있다는 점도.
코리앤더, 쿠민, 카다몬, 민트, 건포도, 파프리카, 토마토, 양파, 올리브, 아몬드, 피스타치오, 양고기, 요구르트, 쿠스쿠스. 오늘의 부엌은 그 정도다. 코리앤더를 너무 많이 산 탓에 냉장고는 한동안 그 향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 쓰지 못한 재료가 부패라는 시간 제한을 두고 내일의 메뉴를 좌우한다. 결국은 뾰족 모자를 쓴 타진 냄비가 편리하게 쓰이게 되겠지만.
머릿속에 허브의 이름이 빙빙 돈다.
코리앤더와 실란트로와 팍치와 샹차이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것을 가리킨다.
정식 아라비아어로는, 프랑스어로는, 스페인어로는, 타셸히트어로는, 타스싯어로는, 타알리히트어는, 아라비아어 모로코 방언으로는, 하고 차례차례 단어가 떠올라 목까지 오는데, 머리까지는 결국 오지 않는다. 오기는 하는데 그건 이미 다른 언어로 치환된 뒤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렀다 하더라도, 그 이름으로 부른 사과는 외국의 느낌이 드는 그 땅의 사과이다.
—43~44쪽에서
아름다운 어휘들이 펼쳐 보이는 때로는 이국적이고 때로는 쓸쓸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거의 항상 새로움과 충격을 주는 이 풍경과 함께, 이 책을 펼친 독자들 역시 ‘문학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믿게 될 것이다.
• 아쿠타가와 상에 선정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힘든 소설. —아쿠타가와 상 심사평
•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그림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생각을 했는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마존 저팬 독자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