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우수문학도서 선정문학적 감성으로 대중문화의 코드를 작품 곳곳에 아름답게 녹여 낸 사랑과 우연, 운명, 그 기억의 노래―<오늘의 작가상>이 낳은 우리 시대 또 하나의 걸출한 이야기꾼 김종은의 첫 번째 연작소설집 『첫사랑』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아무도 이루지 못한다지만, 누구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그것. 첫사랑의 특별함에 대해 어떤 긴 말이 필요할까? 『서울특별시』로 2003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종은의 첫 번째 연작소설집이 나왔다. 바로 『첫사랑』. 영국 작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첫사랑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가 그것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김종은은 결코 끝나지 않을 ‘첫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에게 첫사랑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당신, 어쩌면 이 소설은 당신에게 이 계절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서울특별시』를 두고 “이 작품의 성공은, 작가가 이 시대의 도시적 현실을 표현해 내는 데 가장 적절한 해학적 톤을 찾아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첫사랑』으로 또 한 번의 성공을 이루며 진정한 ‘오늘의 작가’로 거듭난 탁월한 이야기꾼 김종은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따스한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첫사랑을 읽어내고, 그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때로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이기도 하고, 때로는 소년들 간의 수줍은 사랑이며, 때로는 목사님과 이웃집 처녀의 가슴 아픈 순애보로 다가온다. 『첫사랑』은 신선한 웃음과 유쾌한 감동을 자아내며 우리 시대의 첫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으로 우리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첫사랑에 관한 가장 순결한 도발 ―단 하나뿐인, 그 수많은 첫사랑의 기억들첫사랑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일생에 유일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수없이 많은 사랑을 경험해도 첫사랑만은 언제나 특별하다. 주인공 ‘정은’의 첫사랑도 그런 유일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운명적으로 그녀의 품에 포옥 안기고 만 것”이었으며,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정은의 유일한 첫사랑은 하나의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하나만 더,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모았던” 딱지와 구슬과 군인 프라모델도 정은의 첫사랑이고,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푸른 계곡에 발이라도 담근 것처럼, 아니 연애라도 하고 있는 듯 즐거웠던” 소설도 그의 첫사랑이다. 하나하나 특별하고 유일한 기억들. 그렇기에 정은의 첫사랑은 수없이 많기만 하다. 첫사랑은 하나뿐이라는 일반 상식(?)에 대한 조용한 도발. 유일해야 한다는 첫사랑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도 『첫사랑』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이끌어낸다. 첫사랑의 배타성을 제거하고 유일성만으로 첫사랑의 순수성을 지키는 주인공 ‘김정은’만의 첫사랑론.정은의 첫사랑은 모든 대상을 향해 열려 있다. 자신의 첫사랑뿐 아니라, 자신을 향한 첫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모든 첫사랑들을 바라보며 정은은 그 모든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담는다. 우연히 길거리 깡패들로부터 구해 주게 된 희진과 학교 ‘짱’인 민식과의 삼각관계에서도 정은은 그들의 사랑을 조용히 바라보며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그 둘로부터 연달아 입술을 뺏기고 정은이 내뱉는 말은 “민식의 입에선 초콜릿 냄새가 났다.”는 것과 “그 아이의 입에선 립스틱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묻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동창생 성진의 첫사랑, 연상의 여자 선배와 두 시간 동안 첫 키스를 나눈 후 이내 버림받은 후배 J군의 첫사랑 등. 정은은 모두의 첫사랑과 그 기억을 사랑한다. 정은은 “나한테 글쓰기란 첫사랑 같은 거”라고 말한다. 첫사랑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들 자체가 작가 김종은의 첫사랑이기도 한 것이다.김종은은 1974년생 주인공 정은을 내세워 그 세대의 대중문화 코드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임현정의 가요 「첫사랑」은 『첫사랑』에 흐르는 배경음악과도 같다. 1970년대생의 초등학교 시절을 대변하는 ‘쫀드기’나 “니 뿡뿡이다.”와 같은 말들 역시 추억을 강하게 떠올리도록 하는 강력한 장치들이다. 첫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이러한 장치들은 이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잊고 있던, 순수하고 충만한 즐거움을 되찾게 해준다. 그것은 “시간의 힘이고, 그 기억의 힘이고, 결국엔 그 추억의 힘”이다. 『첫사랑』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첫사랑, 바로 우리 모두의 첫사랑인 것이다. 김종은은 추억을 길어 올리는 작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모든 사물과 사람을 첫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첫사랑에 대한 타자와 나 자신의 기억을 넘나드는 특별한 시각으로 또 하나의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 작품 해설 중에서『첫사랑』에는 대중문화의 코드가 녹아 있다.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부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임현정의 「첫사랑」은 작품 곳곳에서 인용된다. 대중가요의 가사와 『첫사랑』의 감성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이전의 소설적 관습에 대한 일종의 배신 혹은 반란이다. 아니, 일탈 혹은 조롱일 수도 있다. 문학과 철학에서 오랫동안 ‘고상한’ 것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 ‘사랑’에서 슬쩍 비켜나, 대중적 감성에 몸을 기대기. 만약 무의식적으로 대중문화를 인용한 것이라면 ‘74년생’으로 묘사된 주인공의 세대 의식 및 규정이며, 의식적이라면 그 이전의 ‘엄숙한’ 혹은 ‘고귀한’ 사랑에 대한 조롱이다. 그러나 『첫사랑』의 ‘가벼움’ 뒤에는 ‘무거움’이 숨어 있다. 독자가 이 발랄하고도 아름다운 지난날의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기억되는 것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기억하는 것의 슬픔, 그것은 작가 김종은의 혹은 세계와 불화한 ‘74년생’의 슬픔이며 무거움이기도 하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느낄 수 없는 소통의 부재가 거기 있다. 『첫사랑』이 끊임없이 과거를 묻는 것, 과거의 기억을 꺼내어 자꾸 닦는 것, 그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은 만들어진 ‘은폐 기억’임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어쩌면 다른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작가의 필사적인 노력이며, 또한 이 작품이 ‘이야기’ 형식에 보다 의존한 이유일 것이다.-채호석(문학평론가·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김종은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오늘날 젊은이들의 삶을 간결하고 위트 있는 문체와 경쾌한 감수성으로 그려낸 젊은 목소리로 주목받아 왔다. 소설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가 있으며, 장편소설 『서울특별시』로 2003년 제2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 이 책의 차례내 사랑하는 책 ―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1자전거 빌려 타기 ― 그녀가 있던 뜨락 #1대관람차 ― 그녀가 있던 뜨락 #2바른생활 ― 그 어딘가, 구슬 뭉치가예술의 전당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1스트레스 걸과 구필 선생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2사랑한다면 삼촌처럼 ― 절 위해 죽을 수 있겠어요?일식 ― 펀치 레터 스캣(the punch-letter-scat) #1러브 레터 ― 펀치 레터 스캣(the punch-letter-scat) #2고백 ― 녀석에게도 바람이 불어왔다화평 슈퍼 골목의 비너스 ― 1986년 나와 프라이팬의 첫사랑에덴 파크 ― 1993년 누군가의 첫사랑칼에 찔리다 ― J군의 입맞춤 이야기받은 편지 보관함 ―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2epilogue 작품 해설|기억되는 것들의 아름다움 혹은 기억하기의 슬픔 ․ 채호석(문학평론가․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줄거리깡패들이 한 여학생(희진)을 괴롭히고 있건만, 무심히 또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나(정은). 그러나 희진이 등 뒤로 와 숨는 바람에 나는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리고야 만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온몸으로 무차별 구타를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하여 나를 구해 주는 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학교 ‘짱’ 민식이다. 민식은 언젠가 처음 마주친 내게 「일식」(내가 백일장에서 제출했던 글)을 자신에게 보여 달라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주먹을 날려 나의 충치를 빼준 일도 있다. 나는 신세만 지는 것이 미안해서 민식에게 선물로 루이 암스트롱의 테이프를 건넨다. 내게 입을 맞추는 민식. 민식의 입에서는 초콜릿 냄새가 났다. 그리고 얼마 후, 자기를 구해 주었으니 사귀어야 한다며 불쑥 찾아와선 입을 맞추는 희진. 그 아이의 입에선 립스틱 냄새가 났다. “언제나 이상한 일들이 친구처럼 따라다녔으니까” “그닥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일주일 새 입술을 두 번이나 빼앗긴 나는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화평 슈퍼 골목에는 ‘비너스’가 살고 있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토르소라 하는데” 텔레비전 속 ‘비너스’라는 이름의 속옷 광고와는 달리, 화평 슈퍼 골목의 ‘비너스’는 “팔도 있고 다리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짙고 검은 머리칼이 있어 더 어지럽고 그러니까 더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저녁 9시 뉴스 시그널만 울리면 옥상에 올라 ‘비너스’의 샤워 장면을 엿보기 위해 담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아뿔싸, 꼬리도 길면 잡힌다 했던가? 그만 ‘비너스’와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만 것. 그렇지만 이게 웬일인가? ‘비너스’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활짝 웃으며 창문을 열고는 제 앞섶을 풀기까지 하는 것이다. 다음 날 화평 슈퍼 골목에서 목사인 용태 아버지는 누가 저 여인의 몸을 훔쳐봤느냐고 다그치고, ‘비너스’는 기가 차다는 투로 용태 아버지에게 다가오지만 용태 아버지는 제 아들의 등을 밀어, 은근슬쩍 그녀가 용태를 지목하도록 한다. 그리고 용태네 식구는 동네를 영영 떠나버리고 만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그 골목은 용태 아버지와 ‘비너스’ 사이의 비밀스러운 길이었던 것. ‘비너스’가 내게 몸을 열어준 것이 아니었는데, 난 주책 맞게도 그것이 나 때문인 줄 알았지 뭔가. 하지만 여전히 이 모든 일이 어쩐지 내 탓인 것만 같은 이유는 내가 ‘비너스’의 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수많은 첫사랑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 많은 첫사랑을 되짚어 가슴에 담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의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게 더 서러운 것은 아닐까.” 내 첫사랑은 어머니다. 모두 다 어머니다. 날 자라게 해줬으니까. 그래서 내게는 다 어머니 같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그 많은 그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다 여자만은 아니었다. 내 첫사랑은 코스모스이기도 했고, 가지 끝에 매달린 선홍빛 감이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