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해 세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 정철훈의 첫 번째 장편소설. 6.25전쟁 당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난 한 남자와 남과 북에 남겨진 가족의 40여 년간의 삶을 통해, 역사 속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이념이 빚어내는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카자흐스탄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나’의 집에 도착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채 생사 여부도 알지 못했던 큰아버지(한추민)가 쓴 편지다. ‘나’의 할머니는 일찍이 세 아들을 북으로 떠나보내고 평생을 애태우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연좌제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재외동포 고향방문 행사 차 5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큰아버지는 어쩐지 서먹한 모습이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소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데…. 이 책은 분단과 이산(離散)이라는 주제를 정통 리얼리즘 기법으로 다룬 장편소설로, 탄탄한 문장과 치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한추민이라는 남자의 노마드적 삶의 궤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저자는 한추민의 생애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동시에 그의 내면을 정교하게 부조해낸다. 또한 한추민의 생애를 축으로 삼으면서도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나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주제의 형상화로 밀어붙이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삶이란 국가와 민족의 것이 아니라 바람의 몫이다. 삶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지상의 어딘가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그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는 달리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무국적자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 한추민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인간의 삶을 대지와 자연으로 환원함으로써 이념과 체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다.한추민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사막에 흩어짐으로써 비로소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놓여나게 될 것이다. 자가는 작중 인물을 통해서 이것이 한추민의 자유이고 해방인 것처럼 썼지만 기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자유와 해방의 방법이고 참된 자아 발견의 길일지도 모른다. – 방민호 (문학평론가)
1부 알마티에서 온 편지 귀향 검은 눈물 2부 붉은 화살 모스크바의 봄 쉬지샤트니키 3부 동향회 농노의 집 적색 공민증 4부 봉인된 기억 텐산 아래 고장 난 시간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품 해설- 북한판 이명준의 이념적 디아스포라와 그 의미/ 방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