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으로 제26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미경의 중, 단편을 묶은 작품집. 화려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완성도’와 ‘재미’를 탁월하게 엮어 낸 6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견고하고 단단한 생의 틈새로 얼핏 드러난 불고 무른 속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저자는 그 어떤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그 어떤 행동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잔혹성,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를 설명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 불륜인, 그리고 불륜이 아닌, 혹은 불륜일 수 없는 사랑.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혼자된 서른한 살의 여인, 유선. 소설가였던 남편은 “일생을 끌로 긁어도 닳지 않을 바위 같은 사랑”을 유선에게 주었고, 그녀는 “침묵조차도 점자처럼 더듬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투명하다고 믿었”다. 혼자 딸을 키우며 낮에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밤에는 과외를 하며 살아가게 된 그녀에게 떠나 버린 남편은 오직 그립기만 한 존재였다. 그러나 남편의 미발표 원고들을 묶어 유고집을 내자며 제의해 온 출판사 사장의 말에 유선은 남편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열어 보게 되고, 거기서 남편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 M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부터 유선은 지독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게 되고,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 이미 죽어 버려서 복수할 수도 없는 자에 대한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견고하고 단단한 생의 틈새로 얼핏 드러난 붉고 무른 속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그 어떤 행동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잔혹성,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를 설명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생의 모든 환멸과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자의 아픈 목소리를 들려 준다. 그래서 유선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그가 내 젖가슴에 겨눈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를 안고 싶다.”고 고백하며, 죽은 남편을 영원히 자신만의 것으로 남기기 위해 그의 유고집 출간을 포기한다.
나릿빛 사진의 추억 호텔 유로, 1203 나의 피투성이 연인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