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밝히는 거울, 처세 철학의 보고
완역 결정판 『명심보감』 출간
한문학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번역해 내놓는다. 3분의 1로 축소된 초략본(抄略本)이 아닌, 774조 전문이 실린 완역본이다. 여러 판본을 두루 살피고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定本)을 만들고, 각 글의 출전을 명확히 밝혔다. 또한 원저자의 의도를 살려 힘 있고 읽기 쉬운 문장으로 다듬었고, 명료한 평설을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누구나 믿고 읽을 만한 정역(定譯)으로서 동양 고전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는 독자에게는 길잡이가, 축약된 판본으로만 접한 독자에게는 재발견이 되어 줄 것이다.
왜 『명심보감』인가?
최고의 한문학자가 정본·정역으로 다시 세운 고전
『명심보감』은 제목 그대로 ‘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 같은 거울’이다. 160여 종에 달하는 문헌에서 정선한 잠언과 격언, 속담, 시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인생길에서 낙오하거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고 밝은 마음을 각성하게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효용이다.
1393년에 처음으로 간행된 『명심보감』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중국에서는 상층과 하층의 사람 모두가 읽었고, 황제마저도 심취해 만력제는 어명으로 『명심보감』을 편찬하게 했다. 16세기 말에는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본 선교사들이 스페인어와 라틴어로 번역해 소개하면서, 서양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중국책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명심보감』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대중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다. 조선 시대에는 『천자문』이나 『소학』 등과 묶여 서당 교육의 입문서로 활용되었다. 오늘날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이나 “증아다여식(憎兒多與食: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라)” 같은 문장들은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다.
그러나 서점에서 만나게 되는 『명심보감』의 대부분은 축약된 판본이다. 원본을 3분의 1 정도로 줄인 초략본이 광해군 때부터 유행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되어 자기 계발서로 개조된 ‘명심보감’들까지 난립해 있다. 독자로서는 어떤 책이 제대로 된 『명심보감』인지 알 수 없어 난감할 따름이다.
1393년에 나온 초간본이 일찍이 사라지고 나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명심보감』의 판본 중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은 ‘청주본(淸州本)’이다. 1454년에 조선의 충청도 청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역자 안대회는 이 청주본을 저본으로 삼되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흑구본(黑口本), 중간본(重刊本), 어제본(御製本), 화각본(和刻本) 등 다양한 판본을 교감해 상권 10장 373조, 하권 10장 401조로 『명심보감』을 다시 정립했다. 2022년에 선보인 『채근담』에 이은 두 번째 정본·정역 작업이다.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명심보감』의 원저자 문제
시중에 나와 있는 『명심보감』의 상당수는 저자를 제대로 표기하고 있지 않다. 아예 표기하지 않거나, 잘못 표기했다.
『명심보감』의 원저자는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의 학자인 범입본(범립본: 范立本)이다. 『명심보감』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냈는데도 무명이라는 이유로, 책이 통속적이라는 이유로 잊히고 말았다. 19세기 말에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인 추적(秋適)이 『명심보감』의 저자라는 주장이 한국에서 대두했고, 20세기에 들어 사실로 굳어졌다. 베트남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명심보감』을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지시를 내려 1959년에 『국역증보명심보감』이 전국에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 책에서 추적을 저자로 표기하고 이후에 나온 책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추적 원작설’이 대세가 되었다.
1970년대에 발견된 청주본에서 범입본의 서문이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연구 결과 범입본이 『명심보감』의 저자임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지금도 저자를 제대로 기재한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몇몇 책에서는 “범입본이 편찬한 책을 추적이 엮었다”는 식으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연대순부터 맞지 않는다. 역자는 추적 원작설이 퍼진 원인과 배경을 밝히고 그 주장을 논파해 범입본이 원저자임을 명확히 한다.
『명심보감』의 ‘태공’은 강태공인가?
올바른 번역을 제시하다
완역된 『명심보감』의 774개조 중 34개조는 “태공왈(太公曰)”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태공이 말했다”로 번역하는데, ‘태공’은 ‘강태공’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이곤 한다.
역자 안대회는 이 부분의 태공을 기원전 11세기 무렵의 인물인 강태공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 다음에 34개조의 출처가 당나라 중엽에 만들어진 아동교육서 『태공가교』라고 밝히고, 여기서 태공은 우리의 서당 훈장과 유사한, 당나라 때 향촌의 교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명심보감』의 저본에서 출전을 밝힌 것이 472개조, 밝히지 않은 것이 302개조다. 역자는 『논어』나 『법구경』, 『노자』 등 잘 알려진 유불도의 경전뿐 아니라 둔황 석굴에서 출토된 문헌을 비롯해 앞선 시대의 잠언집과 격언집들까지 검토했다. 그 결과 100여 개조의 출전을 새로 찾아내고 오류를 발견하는 대로 모두 바로잡아 정확한 번역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한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역자가 지난 수십 년간 고전 번역에 천착해 왔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가볍고 통속적인 책?
형식이 아닌 실질을 추구한 『명심보감』
『명심보감』의 많은 부분은 유학 문헌에서 나왔다. 공자의 어록은 90개조에 이른다. 저자 범입본이 유학자를 자처한 지식인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범입본은 박식하고 뛰어난 편집자의 안목으로 도교 문헌과 불교 문헌에서도 채록을 했고, 다양한 출처에서 나온 글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배치했다. 그중에는 오늘날 전해지는 『주역』이나 『서경』, 『장자』 등의 판본에는 보이지 않는 글들도 있다.
범입본은 진지하고 난해한 책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통속적인 책에서 어록을 뽑았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명심보감』을 여러 고전에서 이삭을 주워 짜깁기한 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범입본은 『명심보감』에 동양 사상의 정수와 경험적 사유를 담아내고자 했다. 게다가 어록을 원전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각 장을 구성하는 20개의 주제에 맞게 수정했다.
『명심보감』은 선행을 권하고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며 우정과 신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교훈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형식적 성찰이 아니라 실질적 처세의 철학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규범적 저술과 구분된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형제가 천 명이더니, 위급하고 어려울 때는 친구 한 명 없더라.”(19장 18조)라고 해서 불편한 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가 하면, “저마다 제집 앞 눈이나 쓸고 남의 집 지붕 위 서리는 상관하지 말라.”(7장 47조)라고 하며 이해타산적인 사고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역자는 『명심보감』의 탄생 배경과 출간 당시의 시대성을 고려해 번역을 하고 평설을 붙였다. 격언집이자 잠언집이라는 특징을 살려 힘 있고 읽기 쉬운 문장으로 번역했고, 평설에는 동양 고전뿐만 아니라 에우리피데스, 호라티우스, 세네카 등 서양 고전 작가들까지 인용해 깊이를 더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각 판본의 서문을 수록해 『명심보감』이라는 책의 시대별 의의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서문
해설
상권 上卷
1 계선편 繼善篇 _ 끊임없는 선행
2 천리편 天理篇 _ 하늘의 이치
3 순명편 順命篇 _ 운명과 순응
4 효행편 孝行篇 _ 효도의 실천
5 정기편 正己篇 _ 몸가짐 바로잡기
6 안분편 安分篇 _ 본분 지키기
7 존심편 存心篇 _ 본심의 보존
8 계성편 戒性篇 _ 성질 참기
9 근학편 勤學篇 _ 부지런히 배우기
10 훈자편 訓子篇 _ 자녀 교육
하권 下卷
11 성심편 省心篇 _ 마음의 성찰
12 입교편 立敎篇 _ 처세의 기본
13 치정편 治政篇 _ 관료의 몸가짐
14 치가편 治家篇 _ 가정의 운영
15 안의편 安義篇 _ 인륜의 기본
16 준례편 遵禮篇 _ 예절 생활
17 존신편 存信篇 _ 신의의 준수
18 언어편 言語篇 _ 말의 품격
19 교우편 交友篇 _ 친구 사귐
20 부행편 婦行篇 _ 부인의 행실
명심보감 서
명심보감 발
중간명심보감 서
어제중집명심보감 서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