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51호 (2024.12.~2025.1.)
분야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 커버스토리: 회복하는 문학
* 제4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발표
* 화제의 소설 『급류』의 정대건 작가 인터뷰
* 첫 책 『내일의 엔딩』의 김유나 작가 인터뷰
* 배우 정은채의 책 인터뷰
* 박솔뫼, 이아토, 이준아 단편소설 발표
■ 에디터스 노트 / 고통과 상처, 그리고 회복과 문학
어려운 시절은 고통만 남기고 가는 게 아니다. 다 가져도 못 가지는, 오히려 다 가져서 못 가지는 선물도 주고 간다. 이를테면 인간 관계의 리셋 같은 것들. 좋은 시절에는 드러나지 않던 ‘내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어려운 시절은 인생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할 필수 위기이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인생에 관한 한 위기론자가 맞다. 그런데 왜 어려운 시절에 이르러서야 ‘내 사람’이 드러나는 걸까. 고통이야말로 내 것과 네 것이 철저하게 구분되는 ‘유물론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겪는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당연히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는 고통이 타인에게도 고통스럽기를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욕심이거나 사실상 망상에 가깝다. 우리가 진심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고통의 반경은 자기 자신이 최대치이고, 자신의 고통마저 외면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드물지 않다.
2022년에 출간된 김혜진의 소설 『경청』 은 타인의 고통을 평가하던 주인공이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평가받는 위치로 전락하는 얘기다. 소설의 주요 플롯은 고통의 시점(時點) 변화를 동반한다. 모두의 타인인 어느 유명인의 불행은 3인칭 고통이다. 다들 그 남자의 인생을 두고 다 안다는 듯 떠들어 댄다. 그러다 남자가 자살하자 그의 죽음에 도의적 책임을 느낄 법한 주인공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다. 주인공은 걷잡을 수 없는 1인칭 고통에 빠져든다. 그러던 주인공이 한 마리 길고양이를 구조하며 타자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이 뒤섞인 ‘주인 없는 고통’ 상태를 경험한다. 그 경험은 1인칭 고통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3인칭 고통이라는 벽을 뚫고 나가는 계기가 된다. 요컨대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 변화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2인칭 고통의 탄생’이다. ‘너’의 의미는 부르는 ‘나’와 불려지는 ‘너’가 공존한다는 데에 있다. ‘경청’은 2인칭 고통에 다다르기 위한 심화된 듣기이자 우리가 서로의 형식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세에 관한 은유다.
스웨덴 아카데미(Svenska Akadedmien)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호명했다. 한강의 문학은 1인칭 고통과 3인칭 고통으로 양분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2인칭 고통이라는 공감의 시점(時點)을 제공함으로써 주체적으로 상처받는 태도의 미학적, 윤리적 가치를 호소력 있게 그린다. 1인칭 고통은 개인 고유의 체험이다. 3인칭 고통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고통이다. 그 사이에는 단절만이 아니라 연결도 있다.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고유한 고통으로 만드는 사람은 쉽게 상처받는 사람일 것이다. 상처받기 쉬움 (vulnerability)은 인간적 취약성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인간적 강점임에도 분명하다. 한강의 문학에서 ‘인간’은 고통받는 인간(homo patiens)이고, 세계가 한강에게 표한 경외감은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자처하는 상처받는 존재를 향한 경외감과 다르지 않다.
《릿터》 51호 커버스토리는 ‘회복하는 문학’이다.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한국문학의 저력이 ‘회복’되고 있음을 상기하는 면도 있고 이 시대 문학의 핵심에 회복이 있다는 의미도 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고통이 어떻게 나의 고유한 고통이 될 수 있을까.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여하는 구경꾼, 그 모순과 한계를 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 2인칭 고통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룬 한강, 김숨, 조해진의 문학 세계를 근작 중심으로 살펴본다. 안세진 평론가는 한강 소설을 다시 읽으며 죽음이 삶으로 전환되는 회복의 순간에 피어나는 생의 열기를 마주한다. 최가은 평론가는 『오키나와 스파이』 를 중심으로 김숨 소설을 돌아보며 빈틈에 충실함으로써 역사적 가능성을 소설화하는 김숨의 ‘열려 있음’을 호평한다. 전청림 평론가는 『빛과 멜로디』를 바탕으로 타인의 삶과 접촉하는 조해진식 점등의 순간을 해석한다. 이른바 문학의 자리란 ‘곁’이자 ‘정류’이며 그로써 배열되는 잔해들의 빛이야말로 예술이자 ‘앎’이라는 ‘문학적 정의’가 이소 평론가의 글을 통해 갈음된다.
소설가 최유안, 민병훈, 함윤이는 자신과 타인의 헤맴을 어떻게 소설화할까. 상처와 회복이라는 주제에 대한 작가노트도 저마다 흥미롭다. 노벨문학상 발표를 기점으로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문학에 대한 위상도 달라졌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프랑스어 번역자 최경란은 세계의 독자들에게 지금 한국문학이 어떤 존재감으로 커지고 있는지를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 보메이의 글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닌 한국문학이 10년 후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한다. 미국에서 비교문학과 번역을 공부하고자 하는 스무 살 신입생 이나혜는 한강의 수상 소식에 힘입어 자신이 설계해 나갈 전공의 길을 도전적으로 꿈꾼다. ‘한강 키즈’는 언제든지 한국문학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움으로 등장할 수 있다.
한 원로 미술사학자와 대화를 나누다 인상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종교가 있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름다움이 자신의 신앙이라고 답했다. 그의 확신이 존경스러운 한편 그의 고독은 좀 쓸쓸해 보였다. 유독 이번 호에는 문학을 ‘믿는’ 사람들의 고백과 체험이 많이 보인다. 소수의 믿음과 취향으로 ‘지역화’되는 것 같던 한국문학에 한 줄기 보편적 빛이 들었다. 어둠이 깊어서 그런지 이 빛이 더 눈부시다. 문학이 세상을 이끌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몰라도, 문학이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부활시켜 주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릿터》 51호는 부쩍 희망적이다. 어려운 시절이 고통만 남기고 가는 건 아니다.
■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발표
올해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은 윤지양의 「소설」 외 57편이다. 시적 공간이 자아의 내면으로 좁혀 들어가는 최근의 경향과 달리 윤지양의 시는 독특한 착상과 정형화되지 않은 감각으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독창성을 보여 준다. 《릿터》에서 심사평과 수상소감을 비롯해 수상작 가운데 대표작 4편을 먼저 만나 볼 수 있다.
■ 박솔뫼, 이아토, 이준아 단편소설
박솔뫼의 「아오모리에서」는 일본 소도시 아오모리를 여행하는 주인공이 앞으로 만날 법한 사람들을 한 명씩 써나가는 소설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한편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또 다른 관점을 만날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두 명의 신인 소설가를 소개한다. 민음사와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라이터스쿨’ 2기 수강생 이아토의 「숨구멍」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고립된 두 십 대가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버디무비식 소설이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영케어러 문제 등 돌봄과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두 사람이 상처의 구멍을 숨구멍으로 바꾸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이준아의 「박력 있게 스파이크」는 본업 외에도 대부업 알바를 하며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직장인 ‘산드라’와 산드라의 실적을 올려주는 ‘외롭고 궁지에 몰린 이웃들’이 또 다른 직장인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절박함이 궁핍한 명랑 속에서 애잔하게 전달된다.
2 — 3 Editor’s Note
9 Cover Story: 회복하는 문학
10 — 15 안세진 간신히 옮겨 가는 삶-한강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
16 — 19 최경란 프랑스에서 본 한국문학
20 — 23 보메이 탈-비주류, 한국문학
24 — 25 이나혜 미래 비슷한 걸 봤던 날
28 — 32 이소 문학이 있는 자리-곁, 정류, 앎
33 — 37 전청림 투과하는 영원-조해진 소설 속 빛의 감각
38 — 41 최가은 구멍 난 해골-김숨의 역사 쓰기
43 — 46 최유안 낱낱의 죽음이 삶에 끌어올려져
47 — 50 민병훈 아주 약간의 자유
51 — 53 함윤이 뼈 이야기
57 Essay
58 — 63 황희승 나만 귀여워? 갯가재 2회
64 — 68 서이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6회
69 — 74 정은귀 나의 에밀리 14회
77 Interview
78 — 88 정대건 X 강보원 긴 시간을 통과하는 사랑
90 — 100 정은채 X 이은선 때맞춰 내리는 좋은 비
102 — 111 김유나 X 이수희 구겨진 덕분에 왠지 더 맛있는
115 Short Story
116 — 129 박솔뫼 아오모리에서
130 — 167 이아토 숨구멍
168 — 193 이준아 박력 있게 스파이크
197 Poem
198 — 199 정끝별 소설
200 — 201 김성대 한밤의 그네
202 — 205 한연희 톡톡 두드리기 연습
206 — 207 정우신 팔마도(八馬圖)
213 Review
214 — 217 조예은 조예은『필로우맨』
214 — 217 최원호 『메마른 삶』
214 — 226 심진경 『이중 하나는 거짓말』
227 — 230 정기현 『맨투맨』
231 — 234 김지현 『백합의 지옥』
235 — 238 강소희 『비눗방울 퐁』
240 Awards 김수영 문학상
240 — 253 윤지양 『기대 없는 토요일』
254 — 255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