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넷플릭스 드라마로 방영 예정인 이탈리아 국민 소설!
원제 Il Gattopardo
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 옮김 이현경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11월 12일
ISBN: 978-89-374-6456-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76쪽
가격: 17,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56
분야 세계문학전집 456
알랭 들롱,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하고,
거장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에게 196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영화의 원작!
1장 7
2장 65
3장 117
4장 171
5장 237
6장 267
7장 301
8장 321
작품 해설 351
작가 연보 361
이탈리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근대 이탈리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몰락을 냉철하게 지켜보는 한 ‘르네상스맨’의 이야기
“우리는 표범이자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하여 올 자들은 자칼과 하이에나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표범, 자칼, 양 모두는 여전히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전해질 작가의 천재성과 떨림이 담긴 작품. 《뉴욕타임스》
▶ 걸작이다. 위대한 전통과 장엄한 양식으로 쓰인 걸작 소설. 《뉴스위크》
▶ 장엄하고 멜랑콜리하며 아름다운 소설. 《뉴요커》
이탈리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 소설’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탈리아의 서점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 소설의 배경인 시칠리아에서라면 어느 서점에서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이 책은, 2025년에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될 예정이기도 하다. 작가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그 기원이 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귀족인 람페두사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 이 소설 단 한 작품을 집필한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후 이 장편 소설은 이탈리아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현재까지도 이탈리아와 전 세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여전히 수많은 공국으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를 공화국으로 통일하고자 가리발디 혁명군이 전투를 일으킨 사건을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 하는데, 『표범』은 이 시기를 통과하는 각계 각층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소설은 시칠리아의 대 귀족 가문의 수장이자 영주인 돈 파브리초 살리나의 영지에서 시작된다. 그는 호화로운 살리나 궁에서 아내 스텔라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신사이자 지적인 천문학자인 동시에, 귀족치고는 세속적이고 감각적이며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던 그는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상황은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가리발디와 그의 군대가 이탈리아 남단의 섬 시칠리아에 상륙할 시기, 이제 이곳에서는 신(新) 계급, 즉 부르주아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살리나는 자신이 아끼는 진취적이고 젊은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가 가리발디군에 합류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탄크레디는 순수한 열정으로 혁명에 참가했으나, 그 이후론 부를 좇으며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탄크레디는 살리나의 딸 콘체타와 약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였으나, 전장에서 돌아온 후엔 교활하고 야심찬 부르주아이자 신흥 부호인 돈 세다라의 아름다운 딸 안젤리카에게 빠져든다. 살리나는 자신의 딸이 미모로든 재산으로든 탄크레디의 야심과 미래를 만족시켜줄 수 없음을 꿰뚫어보고, 가문의 미래인 탄크레디에게 자유를 주기로 한다. 그리고, 시칠리아를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하는 건을 두고 시칠리아인들이 투표할 때가 왔다. 이제, 이른바 ‘국민’이지만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세상이 찾아온다. 살리나는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의 도래를 품위 있게 맞이하며 죽음의 그늘로 물러선다.
■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예에게서 탄생한
근대 이탈리아 최초의 베스트셀러
1960년대, 람페두사 가문과 마찬가지로 그 기원이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탈리아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인 영화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버트 랭카스터, 알랭 들롱,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캐스팅하여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196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아직까지도 전 세계의 시네마테크에서 비스콘티의 작품들을 상영할 때 가장 사랑받는 걸작이다. 이탈리아 귀족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비스콘티는 시칠리아에서 이 작품을 촬영할 때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고루 신경을 썼고, 심지어 화면에 나오지 않을 서랍장 속 같은 곳까지도 레이스 손수건들을 빼곡히 채워 넣으며 그 시절의 아우라를 재현해 냈다.
이 소설의 이탈리아어 제목 ‘일 가토파르도(Il gattopardo)’는 원래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북단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맹수인 서벌(serval)을 뜻한다. 이 단어가 다소 낯선 탓에, 이탈리아 밖에서 이 책의 제목은 주로 생김새가 비슷하고 더 잘 알려진 ‘표범’으로 대체되었다. ‘가토파르도(서벌)’는 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람페두사 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인데, 이 섬을 근거지로 하는 람페두사 가문의 문장에 이것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선 이 문장이 살리나 가문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표범』은 람페두사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큼 작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20여 년 동안, 천문학자였던 증조부 줄리오 파브리초 디 람페두사를 모델로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의 집안 이야기들을 허구로 재구성한 『표범』을 완성한 것이다.
『표범』은 출간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5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 『표범』으로 람페두사는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되었으며, 이 책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인해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 소설 중 꼭 읽어야 할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람페두사는 소설의 성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1954년부터 1956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 원고를 중요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출간을 거절당했고 그가 사망하고 일 년 뒤에야 펠트리넬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속한 세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냉철하게 지켜보는 한 귀족이자 지성인에 관한 노스탤지어 가득한 대서사시
『표범』은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사적인 사건이 중첩되어 전개된다.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 사건의 배경이 되며,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이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소설은 1860년 5월 가리발디가 천인의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시칠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시기는 앞서 말한 ‘리소르지멘토’, 즉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던 시기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일곱 개의 공국과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대부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시칠리아는 양시칠리아 왕국에 속해 있으며,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가리발디의 시칠리아 상륙 이후, 부르봉 왕조는 곧 역사에서 사라지고 시칠리아는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돈 파브리초는 시칠리아의 귀족 가문 중에서도 국왕과 알현을 할 정도로 중요한 가문의 영주로, 일견 괴팍하고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사색하고 성찰하기를 좋아하는 돈 파브리초는 격변의 시대에 자신의 계급이 몰락을 냉정하게 예감하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부상하며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새로운 사회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세계의 죽음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구체제를 보존하거나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위해 투쟁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돈 파브리초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현재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조카 탄크레디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결국 세상의 변화는 형식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돈 파브리초는 형식적인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권력과 영광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옛 주인의 자리를 새 주인이 차지할 뿐이다. 하지만 항상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사람들, 주인과 하인이 있다. 하인은 언제나 하인일 뿐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망설임이 없고 도덕심이 결여된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시선에는 귀족에 대한 자부심과 체념과 회의가 담겨 있고 이것은 그를 우울로 이끈다.
■ 표범의 자리를 대체할 자칼과 하이에나의 시대
돈 파브리초가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탄크레디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는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가리발디가 상륙했을 때는 가리발디 의용군에 참가하지만, 곧 사르데냐 왕국의 군인이 된다. 그는 특히 정치적 야심을 위해 부유한 안젤리카 세다라와 결혼하면서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지의 결합과 연대를 상징한다. 안젤리카의 아버지 돈 칼로제로는 격변하는 시대에 편승해서, 무능력한 귀족들을 이용해 벼락부자가 된 재빠르고 유능한 인물이다. 그는 명실공히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돈 파브리초의 말에 따르면 귀족인 “표범”이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할 자칼이자 하이에나이다. 미래는 바로 이런 ‘세다라’들의 것이다. 돈 파브리초는 이 새로운 계급에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들 역시 탐욕스럽고 편협하고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파브리초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며 탄크레디와 안젤리카의 결혼을 적극 돕는다. 실제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사랑과 계산을 동시에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 불길과 불꽃은 일 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삼십 년은 그 재로 살아갈 뿐이다. 사랑은 관능적인 감각, 게으른 환상, 관습, 계산에 불과하며,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이어질 뿐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리소르지멘토’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담겨 있기도 하다. 돈 파브리초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합병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투표 결과를 조작함으로써 신생 왕국은 ‘신뢰’를 잃었고, 통일 이전부터 존재하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단절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현재에도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 특히 시칠리아 사람들이 게으르고 굴종적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5장에 등장하는 피로네 신부의 귀향은 통일 후 시칠리아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 준다.
『표범』은 문학이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며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성찰한다. 람페두사는 시칠리아라는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며 열정적인 공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 아름다움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무기력과 비애를 깊이 감추고 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제 사라져갈 귀족의 세계와 그 문화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역시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표범』은 빛과 그림자처럼 아름다움과 쇠락, 삶과 죽음, 전통과 변화, 위계질서와 계급 갈등이 교차하는 모습을 그렸다. 또한 시대를 가로질러 여전히 유효한 세상과 삶의 의미도 함께 읽어낼 수 있다. “모든 게 그대로 유지되길 원하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작품의 테마를 담은 이 역설적인 문장은 시간의 흐름, 변화, 죽음에서 덧없음을 느끼는 가운데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괴로움이 깔린 삶속에서 어떻게 진리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Giuseppe Tomasi di Lampedusa
1896년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의 작가이다. 기원이 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칠리아의 유서 깊은 귀족 토마시 디 람페두사 가문에서 태어났고, 가문의 마지막 직계 후손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헝가리군에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하여 이탈리아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평생 외국 문학을 연구하며 살았고, 그가 자신의 증조부를 모델로 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년에 완성한 유일한 소설 『표범』은 생전에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그의 사후 1년 뒤에 펠트리넬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라가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귀족 세계의 몰락을 다룬 『표범』은 1963년 작가와 흡사하게 유서 깊은 귀족 출신인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동명 영화로 영상화되면서 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표범』은 시칠리아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소설이자 이탈리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고전으로 남았다.
■ 옮긴이 소개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비교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 문학상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주는 국가 번역 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3부작과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외에 『침묵의 음악』, 『바우돌리노』, 『책의 자서전』, 『미의 역사』 등이 있다.
■ 본문에서
그사이 영주가 일어섰다. 거구의 움직임에 충격을 받아 바닥이 흔들렸다. 순간이나마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들의 군주는 바로 자신이라는 확신에 그의 파란 눈이 자부심으로 빛났다. (……) 그는 비만하지는 않았다. 키가 매우 크고 힘이 아주 셀 뿐이었다. 키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면) 샹들리에 아랫부분의 장미 장식에 머리가 닿을 정도였다. 그는 손가락만으로 두카토 금화를 휴지 조각처럼 구겨 버릴 수 있었다. 하인들은 포크와 숟가락을 가지고 살리나 저택과 은세공사의 가게를 바쁘게 오갔다. 주인이 식사 도중 치미는 화를 참느라 포크와 숟가락을 휘어 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12쪽)
“물론 외삼촌이죠. 아이롤디 저택 검문소에서 부사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삼촌 연세에, 대단하세요! 신부님까지 동행해서! 다 늙은 바람둥이시네요!”
건방지다, 도를 넘었다. 탄크레디는 자신에게는 무엇이든 허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눈웃음을 지으며 돈 파브리초를 똑바로 보았다. 눈까풀 사이로 짙푸른 눈동자, 그의 어머니와 같은 눈동자, 그러니까 돈 파브리초와 똑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영주는 기분이 상했다. 이 아이는 정말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몰랐지만 나무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맞는 말 아닌가. (38쪽)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가 지나고 있는 살롱의 창문들이 달그락거렸다. 집 안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평온했으며 눈부시게 빛났다. 무엇보다 이 집은 바로 그의 소유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탄크레디가 한 말을 이해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탄크레디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40쪽)
사실 아무도 탄크레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불안을 마음속 깊이 숨기고 있는 영주와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진 콘체타만 빼고 말이다. ‘저 아이가 그 녀석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둘이 좋은 짝이 될 거야. 하지만 탄크레디가 더 높은 자리를 원할까 봐 걱정이군. 더 낮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말이야.’ 돈 파브리초는 타고나기를 선량한 사람이지만 그런 품성은 대개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오늘은 정치적인 상황을 파악해서 기분이 상쾌했기 때문에 안개가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내재된 선량함이 겉으로 다시 드러났다.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왕의 군대가 가진 산탄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설명해 주었다. (57쪽)
“신부님, 빈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사의 아내가 된 콘체타가 상상이 되시오?” 불시에 이런 질문을 받은 피로네 신부는 깜짝 놀랐다.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입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돈 파브리초는 설명하지 않고 다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돈이라? 물론 콘체타에게도 지참금은 있다. 하지만 살리나 가문의 재산은 여덟 명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게다가 딸들의 몫은 아주 적다. 그러면 탄크레디는? 탄크레디에게는 그런 돈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마리아 산타 파우의 경우 이미 자신의 영지가 네 개나 있고 삼촌들은 전부 사제이고 검소한 사람들이다. 수테라 가문의 딸들도 있는데, 모두 못생기기는 했지만 아주 부자였다. 사랑,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1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30년은 그 재로 살아간다……. 어쨌든 탄크레디 앞에는 그런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93쪽)
오 분이 지나자 문이 열리고 안젤리카가 들어왔다.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는데, 그만큼 눈부셨다. 살리나 가문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탄크레디는 관자놀이가 불끈 솟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순간 안젤리카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나머지 남자들은 적지 않은 결함이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도 꼬투리를 잡지도 못했다. 거의 그 누구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녀를 평가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키가 크고 몸매가 좋았다. 크림색과 흡사한 피부에서는 신선한 크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린아이 같은 입술에서는 딸기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쳤고 새벽 별처럼 반짝이는 초록 눈은 석상의 눈처럼 움직임이 없었는데 약간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고 움직일 때마다 폭이 넓은 흰 드레스가 춤을 추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신하는 여자가 그렇듯이 침착했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그 집에 들어온 순간 긴장해서 기절할 뻔했다는 사실은 몇 달 뒤에야 알게 되었다. (100쪽)
안젤리카는 집에서 아주 거친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성적인 풍자의 대상이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리고 마지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참신한 농담이 좋았다. 웃음의 톤이 높아졌고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탄크레디는 안젤리카가 떨어뜨린 깃털 부채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다. 다시 일어섰을 때 빨갛게 달아오른 콘체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가에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탄크레디, 그런 추악한 이야기는 고해신부님께 하세요. 식탁에서 아가씨들에게 하지 말고. 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하지 마요.” 그러더니 등을 돌렸다. (108쪽)
투표소의 문이 닫히고 개표 작업이 시작됐다. 밤이 깊어지면서 시청의 중앙 발코니 문이 활짝 열리더니 허리에 삼색 띠를 맨 돈 칼로제로가 나타났다. 촛대를 든 소년 두 명이 양쪽에 서 있었는데 촛불은 바람이 불어 금방 꺼져 버렸다. 어둠 속의 보이지 않는 군중을 향해 그가 돈나푸가타의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등록 선거인 515명: 투표인 512명: ‘찬성’ 512명 ‘반대’ 0명 (142쪽)
“각하, 돈 칼로제로의 아내는 저를 빼고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집을 나서는 일이라고는 새벽 5시 첫 미사에 참석할 때뿐이랍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때지요.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는 시간인데 한번은 그녀를 보려고 일부러 일찍 일어났습니다. 돈나 바스티아나가 하녀와 함께 들어왔는데 저는 고해소 뒤에 숨어 있었던지라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사가 끝나자 그녀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검은 베일을 벗었습니다. 맹세컨대, 각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돈 칼로제로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겨 두려고 바깥출입을 못 하게 했다 해도 이해가 될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철통같이 비밀을 지키려는 집에서도 소문은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녀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지요. 아마도 돈나 바스티아나는 짐승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읽고 쓸 줄도 모르고 시계도 볼 줄 모르며 말도 제대로 못 한답니다.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거친 암말 같다고 할까요. 딸을 예뻐할 줄도 모른다고 해요. 잠자리에만 능한 여자인 겁니다.”(152쪽)
저를 상원의원으로 생각해 주신 정부에 크게 감사드리며, 책임자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부르봉 체제와 불가피하게 타협했고, 체면 때문에 애정 없이 거기에 묶여 있는 구계급의 대표자입니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더군다나 당신이 분명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환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일 능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미숙한 저를 상원이 어떻게 입법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230쪽)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물론 인간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의 ‘늘’이다. 100년, 200년……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