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저자의 신작 소설. 환상적인 사이버 스페이스와 어두운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음모와 사랑 그리고 영화적인 이미지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빌딩의 보일러 수리공으로 일하는 주인공 찰리는 가수가 되는 불가능한 꿈을 지니고 있다. 한편, 호접몽 회사의 사장이자 빌딩 지하 카페의 주인인 엘리사는 뒤레퓌스와 함께 ‘파란나라’라는 가상 공간을 세운다.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면 그를 대신할 생명체로 쥐를 꼽으며 ‘파란나라’의 대표적 캐릭터로 꼽기 시작하는데…
1998년에 장편소설 \’낯선 천국\’으로 제2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호경의 신작 장편소설 \’마우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세기말의 병적 증후를 예각적으로 파헤친 검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낯선 천국\’에 이어, 이번 장편소설에서도 김호경의 실험적인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가상의 사이버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현실 파괴적인 음모와 전복의 이야기를 영화적인 상상력과 이미지를 차용해 엮어 내고 있다. 어두운 현실로부터 도피를 꿈꾸는 인간 군상들 ― 가상공간 ‘파란나라’와 사이버 가수 ‘옹호자’를 둘러싼 현실 전복의 음모 이 작품에는 보일러공 찰리와 사이버 세계 ‘파란나라’를 건설해서 현실 전복을 꿈꾸는 엘리사, 그리고 그런 엘리사에 맞서는 줄리엣이 등장하여 현실과 가상공간을 오가며 음모와 사랑의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 찰리는 테크노 빌딩에서 근무하는 보일러 수리공이다. 그는 가수가 되는 꿈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가수가 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호접몽이라는 회사의 사장이자 테크노 빌딩 지하의 카페 24세기의 주인인 엘리사는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인 드레퓌스와 함께 ‘파란나라’라는 가상의 공간을 건설한다. 파란나라에서는 시민권만 획득하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살인, 섹스, 폭력 등이 난무하며 자유로이 무기를 거래할 수도 있다. 엘리사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지구를 지배할 후보 1순위로 쥐를 꼽으면서 파란나라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마우스(쥐)’를 내세운다. 테크노 빌딩의 X층에서 동물 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인 줄리엣은 여러 가지 동물들의 복제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테크노 빌딩의 쥐를 퇴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줄리엣 역시 파란나라에 접속한다. 엘리사는 보일러실 반장인 에이브러햄을 통해 가수가 꿈인 찰리를 가수로 만들어 주기로 약속하고, 비자비스라는 이름의 무명가수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준다. 평소 줄리엣을 연모하던 찰리는 비자비스라는 가수로 위장하고 줄리엣과 데이트를 즐긴다. 한편 엘리사와 드레퓌스는 청소년들을 선동할 만한 위대한 우상을 창조하기로 하고, ‘옹호자’라는 이름의 사이버 가수를 만들어 낸다. 옹호자는 다름 아닌 현실의 찰리를 본떠서 만든 사이버 가수였다. 그러나 수만 명의 네티즌이 열광하는 가수 옹호자의 영향력과 파괴력을 두려워한 줄리엣은 맥과이어와 힘을 모아 파란나라와 옹호자를 물리칠 방법을 생각한다. 비자비스는 옹호자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엘리사에게 줄리엣과 사랑을 나눌 기회를 달라고 요구한다. 가상공간에서 줄리엣과 사랑을 나눈 비자비스는 현실에서 줄리엣과 맥과이어의 정사 장면을 엿본 후, 카페에서 옹호자의 노래를 부른다. 줄리엣과 맥과이어는 옹호자를 죽일 킬러로 보일러공 찰리를 지목하고, 파란나라에 쥐 떼를 풀어서 온 도시를 혼란에 빠뜨린다. 찰리로 하여금 옹호자 행세를 해서 다시금 파라나라의 건설을 꿈꾸는 엘리사와 드레퓌스에 맞서 싸우던 찰리가 도망을 가고, 그 뒤로 엘리사와 드레퓌스, 줄리엣이 뒤쫓아 온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 찰리는 유리창을 깨고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 이 작품에서 보일러공 찰리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을 사이버 가수 옹호자라는 이름으로 실현한다. ‘마우스’ 하나로 접속하는 사이버 세계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꿈꾸고 실현하는 공간이지만,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만큼 수많은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게 마련이었다. 그런 사이버 세계의 폐해를 깨닫고 파란나라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는 줄리엣과, 파란나라를 건설한 엘리사는 서로 친자매 사이임이 밝혀진다.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면서 영화적인 이미지와 기법을 차용한 이 소설은 빠른 장면 전환과 짧은 대화체 문장들로 구성되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혹은 게임의 세계에 빠져든 듯한 느낌을 준다. 사이버 문화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 문제를 색다른 형식으로 소설화한 젊은 상상력 이 작품에서 \’마우스\’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도입부에 나오는 \’영화에 대한 명상\’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영화를 보듯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마치 영화관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 의해 발생하는 ‘시뮬라크르’를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나 원본 없는 이미지나 그 자체가 현실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파란나라’와 사이버 가수 ‘옹호자’는 바로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재현, 즉 시뮬라크르인 셈이다. 영화의 몽타주 기법 등을 차용해 빠르게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파란나라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사이버 가수 옹호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찰리의 꿈을 완성해 주는 재현물들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온통 그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언적이고 묵시론적인 작품이다. 인터넷과 사이버 문화의 범람으로 보이지 않는, 혹은 눈에 띄는 사회적인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에 김호경의 장편소설 ?마우스?는 색다른 형식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현대 사회를 반영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 작가의 말 쓸쓸하고 어두운 우주를 떠돌다가 하필 내가 떨어진 곳이 지구별이다. 아무래도 잘못 착륙했다. 좀 더 멀리 날아 안드로메다 성운이나 카시오페이아 같은,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별에 떨어져 하나의 의미 없는 돌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사무치게 해 본다. 설령 지구별이 나의 본향이라 할지라도 한 그루의 나무, 하나의 바위가 되었더라면 나는 만족했을 것이다. 한 마리의 개미나 한 마리의 나방이 되어 짧은 삶을 살았을지라도 나는 족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