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기 위해 기억의 한계를 넘고
기억의 한계를 넘기 위해 퇴고를 번복하는
신화적 상상과 문학적 환상의 아름다운 융합
최영건 연작소설 『연인을 위한 퇴고』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공기도미노』(2017)와 소설집 『수초수조』(2019)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최영건의 신작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궁금해할 것은 그의 이전 작품이 어떻게 연속되며 달라졌을지가 아닐 수 없다. 발표할 때마다 한 사람의 그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지는 과감한 도전과 앞선 작품에서 드러냈던 미학적 관심을 반드시 발전시키고마는 작가적 탐구는 최영건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공기도미노』는 70대 전후의 도시 자산가 계층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정과 일터에 구획된 미묘한 구분선을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공기’의 변화로 드러냈다. 그리고 그 공기를 지배하는 세계는 수려한 건축물 한 채로 형상화됐다. 소설집 『수초수조』에서는 앞선 소설의 건축물에서 드러냈던 미학이 그가 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소설적 미장센임을 보여 준다. 실용성 대신 심미성만을 따진 공간들이 자리하는 제비저택이라든가(「쥐」) 온갖 과실수가 자라는 넓은 정원에 분재와 난초 온실까지 딸린 이층집(「플라스틱들」)이라든가, 드라마 촬영 장소로 섭외될 만큼 인기 있는 번화가 카페와 주거 공간(「감과 비」) 등을 통해서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앞서 나타나는 미장센에 더해 시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극대화하며 정체성과 기억의 속성을 파고든다. 3편의 소설로 이뤄진 연작소설 『연인을 위한 퇴고』에서 각 작품은 다른 시절의 ‘나’들이 서로를 그리워하거나 서로의 뒤를 밟으며 ‘나’라는 미궁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나’에게 다가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변화다. 그것은 마치 존재자들이 생성하여 소멸하다 다른 존재자로 탈바꿈해 재탄생하는 한 채의 바깥 없는 광대한 집과도 같다. 집과 인간의 관계를 탈신비화하는 이야기로 시작한 최영건의 글쓰기는 『연인을 위한 퇴고』에 이르러 존재자와 그의 집으로서의 이야기를 신화화하는 방향으로 옮겨 간다.
이번 소설에서 최영건 작가는 물레로 실을 짜듯 이야기로 기억을 짠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억에서 ‘나’는 물결처럼 퍼져나가는가 하면 주름처럼 감춰진다. 원근법에도 소실점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소묘되는 최영건의 이야기는 퇴고의 퇴고를 거듭하며 ‘나’라는 기억을 재생한다. 이 소설은 자신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간직한 영혼의 자화상이자 영원의 초상화이다.
■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퇴고적 글쓰기
나는 왜 쓰는가.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발적 쓰기의 충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생겨났는지, 쓰기는 어찌하여 이처럼 은밀한 쾌락과 환희를 선사하며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지, 심지어 고통스럽게 비참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지속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지.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기억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온전히 회상할 수 없는 공백과 누락을 메꾸기 위해 상상이 발동한다. 글쓰기의 충동과 욕망이 생성한 기원의 자리에 되찾아 맞출 수 없는 사건들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소환된 인상, 정념, 감각의 모서리 어긋나는 단편들이 수집된다. 기원과 생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그것은 하나의 신화로 덩어리진다. 그리고 모든 신화가 그렇듯 언제든 번복되며 새로 쓰일 것이다. 무한히 퇴고될 것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무한한 퇴고의 감각으로 기원을 향해 간다.
■ 현실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환상적 서사
『연인을 위한 퇴고』에서 나무, 괴물, 늙은 여인, 젊은 여인, 소녀, 유령처럼 개별자로 한정할 수 없는 존재들은 아무런 현실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환상적 서사의 장에 출몰한다. 이들은 한 장소에 못 박혀 그곳의 역사적 부침과 자기의 생애를 동일시하기보다 꿈속의 우화 같은 공원, 묘지, 예배당, 성, 동굴을 헤매는 편을 택한다. 고유명과 특정성 없는 이들은 일인칭의 자리를 자유롭게 점유했다가 다른 존재에게 넘겨주면서, 결과적으로,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거듭되는 변신에 피아의 변별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융합의 상태를 지향한다. 분화 이전 태초의 생성을 더듬어 가는 작용이 궁극에 이르면 목소리의 연원은 말하는 나무든 괴물이든 아니면 어떤 연령의 여성이든 인격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완전히 떨쳐버린다. 오로지 이야기가 목소리의 주인으로 스스로 이야기하는 지점에 근접하는 것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이 이야기의 순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퇴고를 멈추지 않을 것처럼 나아간다.
■ 시간과 공간을 물크러지게 하는 아름다운 표현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변신, 현실의 법칙들에 구애받지 않는 서사는 읽는 이를 낯선 감각 속에 헤매도록 한다. 그 헤맴은 모험의 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혼란과 지체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영건 소설에서 독자들은 그 같은 방황에 붙들릴 염려가 없다. 미로 같은 소설이지만, 앞길을 막고 있는 곳에서 만나는 벽으로서의 문장이 하나하나 다 훌륭한 건축물처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뚫고 지나가기보다는 그 앞에 서서 잠자코 기다리게 되는 문장들. 독자들을 그 침묵의 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자신을 더 걸어갈 수 없게 하는 기억의 벽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할 수 있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나’의 기원을 만나기 위한 퇴고의 길이되 그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미래일 것이다.
■ 해설에서
“분화 이전 태초의 생성을 더듬어 가는 작용이 궁극에 이르면, 목소리의 연원은 말하는 나무든 괴물이든 아니면 어떤 연령의 여성이든 인격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완전히 떨쳐버릴 것이며, 오로지 이야기가 목소리의 주인으로 스스로 이야기하는 지점에 근접할 것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이 이야기의 순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퇴고를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이, 야, 기, 이 한 낱말로 응축될 때까지. 혹은 나, 더 짧은 이 낱말이자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윤경희(문학평론가)
■ 본문 중
“밤이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스푼처럼 오목한 밤에, 내가 거꾸로 비친다. 거꾸로 비친 내가 내게 인사를 건네며 앞날로 사라진다” (28쪽)
“저는 밤마다 미래를 봐요.” (35쪽)
“초여름 새벽이 옅푸른 빛에 사로잡혀 느리고 미지근하게 물크러진다. 어린 기쁨, 어린 슬픔, 어린 죄, 어린 애처로움이 뜰에 서 있다. 나는 돌연 스스로가 매일 좋은 일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이들을 휘감은 시간의 흐름이 날카롭도록 생생하다. 나는 잠기운을 떨치며 여름 가운데서 겨울을 본다. 계절들이 서로를 두드리는 모습을.”(38쪽)
“이 괴물은 나의 연인이야. 우리는 이따금 전혀 다른 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의 하나나 다름없지. 그는 거의 내 것이지. 나는 거의 괴물이 되어버린 실타래고, 그는 나를 위한 영원한 물레지. 그러니 너희는 우리를 들여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입구를 열어야만 해. 그것이 너희가 이곳에 있는 유일한 이유이니. 그들이 물러난 길을 따라 걸어 들어온 것은 물결처럼 나이든 여인이다.” (62~63쪽)
“웅성거리던 문지기들이 주눅 든 눈으로 증오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나는 그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시간의 엉킨 뭉텅이였다. 내가 걷는 곳에는 걸음이 없고 내가 달아나는 곳에는 나아갈 곳이 없다. 그들은 여자에게서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알아듣기 쉬운 몇 마디 변명을 더듬거렸다.” (63쪽)
“나는 이야기가 나의 껍질을 뜯어내고, 상처에 흙과 물과 거름을 붓는 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제는 보지 않고도 예언할 수 있다. 껍집을 찢고 자라난 싹은 기겁할 만큼 재빠르게 자라날 것이다. 성벽을 파고 들었던 가시투성이 줄기들과 다를 바 없다. 여기, 내가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시간에 틈입하는 영원이다.” (102~103쪽)
“나는 선과 선의 교차를 유심히 살피고, 손금을 읽고, 그가 내게 지나치게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의 진상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관점을 어떻게 정하든 일그러진 굴곡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왼쪽이 오른쪽이 되고, 아래가 위가 되어도 미완성은 생겨나지 않는다. 파고들 틈새는 없다. 선과 선들, 뼈 같은 돌이 비치는 사랑스러운 무료함. 나는 노파의 손에 볼을 기대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118쪽)
“이제 내게는 얼굴이 남아 있지 않고, 손도 발도 없으며, 오로지 희미한 목의 통증만이 떠돌고 있다. 나는 이 흐리고 간질간질한 통증으로 그를 사랑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위한 시간의 글씨다. 간절한 두 개의 점이 되어, 우리는 이야기의 긴긴 오후를 함께 보낸다.” (158쪽)“이야기의 틈을 벌리고 자라나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에서만 이따금 들춰지는 이름이 있죠. 나는 훼손되지 않고서는 말해질 수 없는 이름이죠. 내가 이따금 떠벌이와 뜨내기, 한밤중에 우는 어린 수탉처럼 구는 건 내가 나의 연인을 사랑하는 까닭이에요. 사랑만이 끝과 시작을 나누지 않는 한 쌍의 늙음과 젊음이죠.”(175쪽)
“허기진 나는 조심스럽게 나를 뜯어먹기 시작한다. 내게서 슬픔의 따스한 살이 찢겨 나간다. 호박색 물기가 입가를 물들인다. 나는 사람이 아니므로 스스로를 먹는 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내게 먹히는 나는 달고 부드러우며 향긋하다.”(180쪽)
“나는 내동댕이쳐지며 탄생하는 기억이죠. 당신의 잃어버린 유년, 잃기 위해 쓰이는 유년, 유년을 위해 사라지는 전생과 생애, 말이 되기 이전의 온갖 수런거림, 그런 것들의 비밀을 두고 가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운명이죠. 당신은 이야기의 유예된 침몰이고, 여기 나를 두고 가는 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예요. 여기, 한낮처럼 나를 두고 가세요. 그런데 정말로 이곳이었던가요? 정말로 지금이었을까요?”(190쪽)
두 개의 길이 이따금 겹치는 9쪽
연인을 위한 퇴고 41쪽
나무 왕의 방 205쪽
작가의 말 223쪽
작품해설/ 신화의 소실점으로(윤경희) 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