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가 권하는 동화 같은 만화, 만화 같은 동화
오나리 유코는 천재일 뿐만 아니라 천사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지닌 그녀는 지구상에서 고요히 숨쉬면서 사랑을 간직한 신비로운 목소리로 줄곧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하기에 자칫 흘려듣기 쉽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한 번 다다르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울릴 것입니다. – 요시모토 바나나
여름 바다, 저녁놀, 빨간 열매, 울보 원숭이의 눈물 같은 이야기
오나리 유코의 『손바닥 동화』(전3권)가 (주)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잡지《월간 가도카와》에 연재하던 만화를 책으로 묶은 것으로, 총 74편이 수록된 3권이 완성되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오나리 유코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에 특유의 감수성을 입혀 독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작가다. 독특한 감수성으로 전 세계에 독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외에도, 일본의 국민 만화 작가라 불리는 사쿠라 모모코 역시 “왠지 눈물이 나와요. 오나리 씨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온 그림과 말들은 우리의 마음 깊숙이까지, 따뜻하고도 절실하게, 상냥하면서도 가슴 저리게 새로운 감동의 체험을 전해 줍니다.”라고 말하며 『손바닥 동화』를 극찬하였다. 또한 오나리 유코의 팬을 자처하는 일본의 인기 가수 유사 미모리는 『손바닥 동화』의 연재가 끝날 무렵 오나리 유코의 인터뷰를 자청하기도 했다. (이는 『손바닥 동화』 3권에 『유사 미모리가 만난 오나리 유코 50문 50답』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손바닥 동화』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가 하면, 아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볼 때처럼 한없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가슴 깊은 곳의 기억을 건드리는 찡한 대목에서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형식 또한 독특해서, 인물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말풍선 내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한편, 말풍선 밖에서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처럼 문학적인 텍스트를 이룬다.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은 오나리 유코만의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채로 표현된다. 오나리 유코는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을 지닌 소녀와 언뜻 보기엔 징그럽지만 알고 보면 착한 벌레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와 우리의 일상을 함께하는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묘사하기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나 파도치는 바닷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비어 있는 공간을 자주 등장시켜 독특한 균형감을 이룬다. 이러한 오나리 유코의 조형 감각은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에서도 이어진다. 주로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각각의 단편들은 일정한 쪽수를 간격으로 붉은색과 녹색, 노란색으로 바통을 이어 가며 색깔이 바뀌는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작품들이 지닌 서로 다른 개성을 충실히 표현해 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액자와 같은 만화의 틀의 안과 밖에서 적절하게 같은 색을 쓰며 그 경계를 희미하게 한 것 역시 『손바닥 동화』 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손바닥 위에서 펼쳐지는 종이 인형극 같은 깜찍한 이야기
오랫동안 쓰지 않고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둔 물건을 보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인형을 보면서 혹시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말을 걸어 본 경험이 있는지. 『손바닥 동화』에는 이러한 물건들이 펜 끝에서 살아 숨쉬는 주인공이 되어 나온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자신이 연필인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지만 주인에게 자신을 책상에 처박아 두고 잊지 말아 달라고 애교 있게 부탁하는 HB 연필의 이야기(2권, 「HB」), 본래 물고기로 태어나야 할 것을 고양이로 태어나 오후마다 강바닥에서 낮잠을 자고 오는 고양이(1권, 「물고양이」), 다툼을 벌이는 연인들이나 엄마에게 꾸지람 듣는 아이가 있으면 등에 찰싹 달라붙어 배를 고프게 만들어 분위기를 바꿔 주는 가을 귀신의 이야기(3권, 「가을 귀신」), 목욕할 때면 쪼글쪼글해지는 손을 보고 조금만 더 오래 있으면 나무가 될 거라 믿으며 욕조에서 나오지 않는 꼬마 아이의 이야기(2권, 「목욕 나무」)들을 읽다 보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첫사랑의 열병부터 실연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울리는 사랑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사춘기 무렵 첫사랑의 열병부터 실연에 이르기까지, 오나리 유코가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하다.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으로 러브레터를 쓰던 소녀는 처음에는 단순히 창피한 마음에 얼굴을 붉히며 몇 번씩이나 편지를 구겨 버리다가 마지막에는 비록 거절당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 하며 용기를 낸다.(2권, 「러브레터1~3』) 어느 날 애인의 눈 속에서 물고기를 보았지만 애인에게는 비밀로 하고 멍하니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이별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는, 연인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품어 온 이상형이든 아니면 옛사랑의 그림자이든 간에 그 뒤의 환영을 쫓다가 헤어지고 마는 수많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연을 당하면 으레 강원도로 떠나는 우리처럼, 오나리 유코의 작품에서도 애인과 헤어지고 난 뒤 바닷가를 찾은 여자는 파도에 지난 추억을 비추어보며 후회와 미련 모두 바다에 묻고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3권, 「실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이야기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손바닥 동화』에는 현대의 일본, 더 나아가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반영한 이야기 들도 눈에 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고 아무도 없는 집에 문을 따고 들어오는 아이의 이야기(2권, 「푸딩」), 언제나 소심한 친구를 위로해 주는 어른스러운 면을 지닌, 원조교제를 하던 소녀가 자살하는 이야기(3권, 「보이지 않는 별」), 한때 교수였으나 지금은 노숙자가 된 남자와 부모님이 이혼한 뒤 가끔씩만 만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녀가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이야기(2권, 「천사 이야기」) 등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 낸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사실적인 묘사로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느낌을 주는 말썽꾸러기들의 이야기(3권, 「쓰치나가」)는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안겨 준다.
옮긴이 이지연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를 졸업한 후 출판 기획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만화로 읽는 과학 위인전』, 『어스시의 마법사』, 『아투안의 무덤』 등이 있다.
.이른 봄, 봄 – 북녘의 물고기 – 들판 – 안아줘 천사 – 봄이 오는 중 – 시냇물 소리 – 노래하는 개 – 여자아이 – 치마
.여름 – 털벌레 – 짝사랑 – 초여름 – 할머니 – 반짝이는 것 – 여름의 손 – 물고양이
.가을 – 편지 – 무당벌레 – 나뭇잎 – 비밀
.겨울 – 눈 오는 날 – 겨울 손님 – 우유벌레 – 저녁놀 – 사라락 꽃 – 우는 별
.맺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