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대화하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이를테면 어떤 물리적 입자들 같은 도시적 인간들의 삶에 형식과 리듬을 부여하고 있는 이 작품은 흘러가는 시간처럼, 노래처럼 더러는 자유롭게, 더러는 친근하고 정답게 읽힌다. 이 작품의 성공은 우리들의 이 시대의 도시적 현실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해학적 톤을 찾아냈다는 데 있다. 너무 노골적인 코미디로 전락하지 않고 무의미한 일상을 너무 애달파하지도 않고 그저 비릿한 삶의 구석과 층층을 사선으로 비추는 빛과 약간 처량하고 고지식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어조의 적절한 높낮이, 거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노래처럼, 음악처럼, 약간의 불협화음과 잡음도 되풀이와 정지와 적절한 침묵 속에 흡수되는 저 미묘한 세계. 그래서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안단테 칸타빌레, 행동이 빠르게 전개되는 듯한 알레그로 아사이, 그러나 결국 뚜렷한 결과도 대단원도 없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반복되는 다 카포, 이 기이한 음조와 목소리들 속에서 어쩌면 상당수의 새로운 독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오목거울, 혹은 약간 뒤틀린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김화영/문학평론가▶ 김종은의 『서울특별시』는 날렵한 전환과 위트가 매력적이다. 서울 정착에 운명을 건 부모 세대로부터 태어난 70년대 생의 ‘서울 이야기’다. …… 해석(인지) 불가능한 공룡 도시 서울을 소설의 질료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함정임/소설가
2003년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김종은의 『서울특별시』가 선정되었다. 1974년 서울 출생인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난 네 젊은이들의 서울 이야기, 삶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 내 신세대들의 풍속을 매력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생 동갑내기인 찰리, 호기, 유진, 중만은 서른 살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다. 서울 정착에 운명을 건 부모 세대로부터 태어난 이 70년대 생은 도시적 인간이다.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대화하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찰리의 아버지의 고향은 서울이다. 찰리 할아버지 역시 서울의 이문동을 엠원 소총 하나로 지켜 내었던 서울 본토박이다. 반면 찰리의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정착하지 못하고 지방으로 전전해야 했다. 이들의 서울 집은 ‘밝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 유치원 때 찰리는 ‘굴속에 들어 있는 식구들을 그린 그림’ 때문에 엄마를 울려야 했다. 오로지 20년간 찰리 식구들의 최대 목표는 집 장만이었고, 결국 전쟁도 앗아갈 수 없었던 그 집을 50여 년 만에 되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였고 어찌 된 영문인지 ‘종이 한 장의 증명서’ 때문에 찰리 아버지의 20년의 꿈은 사라져 버린다. 찰리의 ‘계획’은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유진의 아버지는 유진 어머니를 ‘서울에 직장을 잡았다’는 이유로 꼬셔서 상경하였다. 유진 아버지가 서울에 와서 익힌 기술은 ‘커피를 타는 것’. 유진 다방이 유진 카페가 되고, 다시 유진 호프가 되는 동안, 유진 아버지가 동거한 여자만도 네 명. 유진은 유진 다방을 거쳐간 ‘누나’들과 ‘동거’하면서 자연스레 여자를 알게 된다. 한편, 유진은 고교 시절부터 써 온 자살 노트를 갖고 있다. 무려 420여 가지가 되는 자살 방법, 전화번호부 분량의 유서, 여섯 벌의 수의를 갖고 있다. 왜 죽으려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것. 이미 끝나 버린 그 일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최소한 유진에게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머리가 굵어진 유진은 세상마저 자신을 자꾸만 속이려 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진은 수많은 자살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호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철없는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다. 호기의 어머니는 사생아를 낳고 재혼하는데, 남편에게 계속 폭행을 당한다. 호기는 지금의 아버지를 ‘잠깐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낳은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로 여기며 자란다. 어느 날 이 ‘잠깐 아버지’는 호기의 기도처럼 정말로 죽게 된다. 중만은 현숙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었다. 무려 16년간의 열애 끝에 중만은 차였다. 중만은 아버지와 새엄마와 함께 유통 기한이 지난 통조림의 기한 표시를 새로 써넣는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죽고 새엄마의 재산마저 큰아버지에게 빼앗긴 후, 중만은 빈털터리가 되고 현숙에게 차이게 된 것이다. 이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사귀게 된 친구 사이였다. 처음에는 찰리가 계획을 말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호기 그리고 유진과 중만이 그 계획에 참가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진다. ‘계획’을 위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세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찰리는 한 달 하고 10여 일간 계획을 세운다. 다시 한두 달의 사전 준비 끝에 이들은 강원도의 50번 도로 길 옆에 있는 ‘새서울 휴게소’를 털게 된다. 찰리의 철저한 계획과 친구들의 빈틈없는 일처리 끝에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이들은 50번 도로를 되짚어 모두의 고향인 서울로 향한다. 이들에게는 두 개의 결말이 남아 있다. 첫 번째 상황 : 이들의 ‘전복’, ‘일탈’ 나아가서는 ‘범행’이 드러나지 않고 순조롭게 서울의 시민 사회에 편입되는 것. 이들은 건물 하나를 구입하여 각각 카페, 게임팩 대여점, 에이브이 전문점, 편의점 들을 차렸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을 예찬한다.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오 즐거운 인생. 예! 그런 식의 가사를.두 번째 상황 : 그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경찰서 안에서. 그들은 왜 털었느냐는 질문에 각각 이렇게 답한다. “용돈이나 하려고”, “텔레비전 보고”, “영화 보고”, “만화 보고” 등등. 그래서 당신의 고향이 서울이라면, 관할 경찰서 피의자 대기실의 허술한 의자 위나 형사과에 마련된 간이 철장 너머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이들 친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예찬이거나 서울의 비가이다. 우리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한없는 상상의 꿈들로 그려 낸, 재미있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서울을 위한 축제의 노래다. 이대로만 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이러한 결말을 향해 치닫지는 않는다. ‘애초에 친구들이 부르던 노래’는 이들이 계획을 세우기 위해 처음 모였던 ‘버거 킹’을 터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라는 찰리의 말을 남긴 채.
*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서울특별시』의 작품집에는 단편 「다시 한번, 그 춤을」이 수록되어 있다. 수상작에서와 같이, 날렵하고 재치있는 어조를 간직하되,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옛 몸짓과 옛 가락을 끄집어낸 소재적인 흥미를 다룬 덕에 수상작 못지않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작가 김종은
1974년 서울 출생.2001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2003년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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