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어를 그리워하는 것이, 단어가 이미 품고 있는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일보다 좋다. 단어의 바깥에서 영원히 그리워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단어와 단어를 쌓아서 벽을 만들고, 그 벽이 다르게 보이게 만들 현실을 무차별적으로, 환상적으로, 내내 그리워하고 싶다.”
단어를 들고 블록처럼 쌓거나 단어를 쫓아 술래처럼 달려가는
가지런한 순방향의 책 읽기를 전복시키는 양방향의 책 읽기
단어를 사랑해서 할 수 있는 멋진 딴짓, 김유림의 놀이 방식
2016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김유림의 에세이 『단어 극장』이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김유림은 ‘양방향’의 작가다. 이 단어는 시인의 첫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만, 작가 김유림의 활동 전반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시집 『양방향』, 『세 개 이상의 모형』, 『별세계』를 낸 시인이자, 소설집 『갱들의 어머니』를 낸 소설가다. 작가의 개성을 고스란히 지닌 채 서로 다른 장르로 뻗어 가는 그의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단어 ‘양방향’이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이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김유림은 에세이 『단어 극장』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첫 시집을 소환한다. 시집 『양방향』에서 단어를 고르고, 그 단어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쓰인 책 『단어 극장』은 김유림이 그동안 즐기고 고민해 온 읽기 방식, 세상을 바라보고 소화하는 방식, 그 모든 것들을 해체하거나 뒤섞어 글을 쓰는 방식을 정리한 ‘김유림 설명서’인 동시에 시집 『양방향』 속 단어들을 시 속에 쓰인 맥락과 또 다르게, 시와는 상관없이, 혹은 시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다시 쓰고 발견해 내는 ‘김유림의 실험서’다. 글을 꼭 한 방향으로 읽어야 해? 결론을 알아야 해? 라는 물음에 사로잡힌 이들, 나는 그저 문장 속에 있고 싶을 뿐인데, 여기서 꼭 나와야 해? 라고 외치고 싶던 이들에게 『단어 극장』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그곳으로 기꺼이 입장하면 된다. 김유림이 보여 주는, 단어로 만들어 낸 멋진 장면 안으로.
●단어를 오리고 붙이는 시인의 즐거운 공작 시간
김유림은 고백한다.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냐면……” 그가 들려주는 경험은 무척 생생해서 곧장 떠올릴 수 있다. 마치 그가 우리의 내면에 스크린을 세워 두고 자신의 필름을 상영한 것처럼. 김유림은 어릴 적 자신이 ‘쌓기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특히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말은 그가 비디오를 즐겨 봤다는 뜻이 아니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작동시켜 비디오가 품은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힌 비디오테이프의 무게와 형태,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놀이의 가능성을 좋아했다는 뜻이다. 그는 비디오테이프를 손에 들고 그것을 쌓거나 눕혀 구조물을 만든다. 성벽이나 도로, 작은 집과 그 집의 주방.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감각은 김유림이 글을 쓰는 방식이 된다. 이것이 『단어 극장』에서 상영되는 김유림의 서사다. 여전히 김유림은 무언가를 손에 들고 구조물을 만든다. 비디오테이프 대신 단어와 문장을 들고, 작은 집이나 높은 성처럼 생긴 글을 완성하려고 한다. 그런 김유림의 태도는 공작 시간을 즐기는 아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어떤 목소리가 말할 것이다. “자, 이제 집을 지어 보세요.” 아이는 무아지경으로 주변의 재료들을 들고 여러 각도로 살필 것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자르거나 붙이고, 그것들을 세우거나 서로 기대어 보기도 할 것이다. 그 아이의 얼굴에 만면한 원초적 즐거움, 호기심, 상상력과 열의. 김유림의 단어 공작 시간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장면과 단어 들이다.
■목적지를 다시 설정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 방향으로 글을 읽는다. 발췌독을 한다고 해도 시작으로 점찍은 부분에서 마지막 부분까지 문장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며, 어느 정도 글의 목적이 이해되면 멈춘다. 그러나 『단어 극장』에서 김유림은 한 방향의 읽기만이 읽기의 즐거움이 아님을, 문장을 따라가는 도중 멈춰서고 주저앉으며 딴짓을 하는 시간도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임을 보여 준다. 그는 제안한다. 눈길이 붙들린 곳에 한번 머물러 보세요. 글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 이르러 멈춰 서기, 시간 끌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기. 목적지로 가는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바로 그곳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혹은 몇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가, 곧 되돌아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다가, 또다시 뒤를 돌아본다. 시선을 붙들린 곳에 놓인 단어와 문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 김유림은 끝없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워하다 보면 그에게는 결말이 아닌 목적지로 가는 길에 놓인 그 단어가, 그 문장이 새로운 목적지가 된다. 주인공이 된다. 김유림은 새로운 목적지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한다. 흐르는 글 사이 어디쯤, 시선을 붙드는 단어와 문장이 있다. 그곳에 정지한 채로 머물다 보면 단어가 확장되고 문장이 커지면 묘사와 장면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김유림의 즐거운 딴짓, 김유림식 쓰기의 탄생이다. 김유림은 『단어 극장』에 온 관객들에게 개발할 수 있는 다른 감각을 보여 준다. 정지한 채로 진동하는, 중단한 채로 확장되는 읽기와 쓰기의 감각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본문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혼란을 좋아하는 것 같다. 혼란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혼란밖에 모르는 것 같다. 혼란 속에서 가느다란 이해가 균열처럼 솟아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글쎄, 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직조하고, 세계를 포기한다. 포기라는 게 단순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포기를 첩첩이 쌓아나가는 일은 일종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당연히 혼란을 가지고 노는 작업 중 하나이다. 혼란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다가 혼란에게 잡아먹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에서 성공과 실패는 큰 의미가 없다. 실낱같은 웃음과 시시한 이해만 가끔씩 배어 나온다면 말이다.
-17~18쪽
나는 나를 총알처럼 쏘아 버리기 위해서 푸른 하늘과 푸른 숲, 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고 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약이 필요하다고. 없다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 이것이 시 짓기, 그러니까 글쓰기의 기본 원칙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무한에 가까운 백지의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을 좁혀 들어가기, 제한하고 구속하기, 그러나 그러한 제한과 구속이 작동하는 방식을 기꺼이 즐겁게 혹은 다소 끈질기게 파고들어 감으로써 가능해지는 무한을 항상 의식하고 있기.
-50쪽
세 번째 시집 『별세계』에서 같은 곳을 훑고 또 훑는 듯한 시를 많이 쓴 것도 근시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여서 하나같지 않은 무수히 많은 것. 하나지만 무수히 많은 단어, 단어들. 그것들을 세우고 세워서 내가 꼭 맞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두기. 고정은 시켜 두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한번 단어를 빼내서 어디 다른 곳에 두어도 그건 그대로 완벽하고 좋게끔. 그렇게 쓰고 싶다. 언제든 무한히 단어를 들어내고, 집어넣고, 다시, 그리고 다시, 들어내고 옮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젠가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느낌도 어쩌면 내가 심한 근시인 것과 연관성이 없지 않을지도.
-109~110쪽
나를 멈춰세우는 그것은 시간에 박히는 발톱이다. 날카로운 발톱. 시간을 멈추게 만든 뒤, 시간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것.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어머니의 드레스 색 같은 것. 시선을 앗아가는 것, 돌아보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지나치기엔, 잊어버리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 미운 것. 결국 오랜 시간을 머물게 하고, 머무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예외 없이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 그것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모든 것에 반항하는 생생한 얼굴이고, 솜털이다. 땀, 도마뱀 시체, 젖은 머리칼, 사랑이다.
-118쪽
■작가의 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넘기며, 음, 겹쳐지네, 겹쳐지네,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가네, 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거기서 미묘한 슬픔과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어제 본 하늘과 오늘 본 하늘이 조금 다른 건 분명한 것처럼.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1부 연재
검은 초콜릿 11
허허한 공원 21
목적지 29
바캉스라는 것 36
난간에 기대어 44
그의 이름은 친구 54
커다란 건물 65
돌을 들어 75
결말 82
말 음악 90
2부 연재 이후
모습은 보이지 않고 99
발톱 105
말 —말하기는 말하는 사람에게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113
기도 —데이비드 린치, 홍상수, 시몬 베유 121
아득한 사람? 얼굴? 131
쉬는 방법 138
내가 말하는 조금이란 정말 조금이다 145
그림 149
시간 —Virtual Reality라는 이름의 블랙홀 155
소리 —이옥경의 「소리 나누기」, 그 이후 172
말 185
쓰는 방법 —다시 쓰기에 대하여 192
후프 —기괴한 글쓰기 195
말 202
집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집 206
집 214
재활용 219
풍경, 언덕 너머로 어서 사라졌으면 225
작가의 말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