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성문학사연구모임, 김양선, 김은하, 이선옥, 이명호, 이희원, 이경수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7월 5일
ISBN: 978-89-374-5681-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5x215 · 324쪽
가격: 15,000원
시리즈: 한국 여성문학 선집 1
분야 한국 문학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
■ 1권 여성문학의 탄생 1898년 ~1920년대 중반
공론장에 올라선 배운 여자들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
근대 지식과 문화의 유입은 조선 여성들의 삶과 지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학교를 비롯한 근대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자각한 여성 주체들의 움직임,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 개화 계몽의 열기로 꽉 찬 공론장의 부상은 여성의 읽기와 쓰기를 이끈 요인들이다. 이 시기 공적 담론은 신문・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고, 이와 같은 공론장에 글 쓰는 여자가 출현한 것은 여성문학사의 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이다. 특히 《여자계》(1917), 《신여자》(1920), 《신여성》(1923) 등 여성 매체는 논설, 독자 투고뿐 아니라 수필, 소설, 시 등 문학적인 글쓰기를 훈련하는 장을 마련했다. 여성의 권리와 각성,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시기의 작품들은 민족이나 가부장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개인의 목소리를 근대적 문학 양식에 담은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다.
■ 차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여성문학의 탄생, 조선의 배운 여자들과 개인의 등장 14
김 소사, 이 소사 28
부인회 애국가 30
여학교설시통문 34
신소당 38
평안도 안주 여노인 신소당은 39
진주 부용 형 전 사례서 43
김명순 47
유언 49
저주 51
도라다볼 때 55
두 애인 125
김일엽 192
서시 194
자각 196
창간사 225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229
나혜석 235
인형의 가 237
경희 242
김월선 314
창간에 제하야 316
엮은이 소개 320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322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한 모임으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성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우리에게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전복적인 여성문학사, 『노튼 여성문학 앤솔러지』 같은 여성문학 선집이 없는가?”라는 한 가지 명확한 의문과 강렬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문학사 서술은 여성주의 운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탈구축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사 탈구축 작업은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문학사에 깃든 국민·국가, 남성·엘리트, 문학중심주의 등을 걷어내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을 문학사에 반영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문학사 탈구축 작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문학사 서술은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서술이 굳건하게 형성되어 오는 동안, 여성문학사는 서술을 시작할 텍스트 선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문학은 그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 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은 의심받았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오늘 등장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한국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에 없던 여성의 기준과 관점으로 근현대 한국 여성문학의 계보를 집대성하고, 제도 문학 중심의 구분에서 벗어나 장르 제한 없이 여성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업이다.
‘최초’는 ‘다음’을 약속한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 이후 본격문학과 국민문학을 넘어 대중문학과 퀴어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을 포괄하고 해외 학회와 협업한 다양한 선집을 후속 과제로 남겨 두었음을 밝히며, 시대마다 문학 공동체마다 다시, 그리고 새롭게 쓰일 새로운 문학사의 탄생을 예고한다.
■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문학사는 가장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고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문학 교육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문학사 교육’이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 이유로 과거 국가 권력은 문학사를 ‘민족’과 ‘시민’을 양성하는 첫 번째 도구로 삼았으며, 또한 같은 이유로 문학사는 민주화 이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로부터 시작해 2000년대 한국 사회에도 민족과 이념 중심의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새로 쓰는 ‘문학사 탈구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미약했다. 새로운 문학사 서술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문학사는 문학 연구와 교육 모두에서 ‘죽은 지식’으로 외면당해 왔다. 그 역사 끝에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등장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를 떠받친 문학, 역사, 학문을 둘러싼 오랜 기준들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의심하고 새로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시작이다.
■ 시대가 만들고, 시대를 만든 작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최초’라는 단어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한 책이다. ‘여성문학의 진일보를 이룬 작품을 집대성한다.’는 목적과 학술적·역사적 근거와 의미를 가진 작품을 장르 구분 없이 발굴하고 소개한다는 대원칙 아래, 책에 대한 다른 원칙들이 세워졌다. 작품뿐 아니라 ‘학술’과 ‘역사’까지도 여성적 관점으로 다시 보고,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공기까지도 충실히 담을 것이라는 규칙들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 한국 여성해방 100년의 기록
기존 문학사에서는 나혜석의 「경희」가 《여자계》에 발표된 1918년을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다면,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본다. 이 글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신문에 투고해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이 글을 “근대 매체인 신문을 통해 공적 담론인 ‘선언문’의 형식으로 페미니스트 집합 의식을 발표한 최초의 글”(1권, 시대 개관)이라 평가하며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짚는다. 「여학교설시통문」을 발표한 이듬해 이 글의 저자들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인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한국 여성문학이 만들어 온 여성해방의 방향성과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여성의 글쓰기와 삶은 앞선 여성의 글을 읽고 다음 여성의 삶을 상상하는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공명하고 움직이며 이루어졌다. 시대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그에 따라 순응하고 저항하며 만들어간 여성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고민하고 열망한 ‘자유’, 여성해방의 과정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통해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백과사전식 구성과 글로 만들어졌다. ‘시대 개관’은 각 권을 여는 글로, 다루는 작품과 시대 전반을 설명하며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다. ‘작가 소개’ 글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문학사적 성취와 의미를 보여 주는 글로, 해당 작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엄정한 사실 검증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우선해 수록했다. 이 선집이 지닌 ‘최초’의 의미와 자료적·교육적 가치를 고려해 세운 기준이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수록했다.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까지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본문에서
전일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위력으로 여편네를 압제하려고 한갓 옛글을 빙자하여 말하되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을 말하지 말며 술과 밥을 지음이 마땅하다 하는지라. 어찌하여 사지육체가 사나이와 일반이거늘 이 같은 압제를 받아 세상 형편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 (…) 여학교를 창설하오니 (…) 각각 분발지심을 내어 귀한 여아들을 우리 여학교에 들여보내리라 하시거든 곧 착명하시기를 바라나이다.
― 김 소사, 이 소사, 「여학교설시통문」에서
소련은 힘써서 자기의 마음을 누르고 무엇을 그리는 그 비밀을 속으로 속으로 감추어서 드디어 모든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또 여자의 살림살이들 중에서도 조선 여자의 살아온 일과 살아갈 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었다.
― 김명순, 소설 「돌아다볼 때」에서
나는 자식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 전 생활을 희생할 수는 절대로 없나이다. 자식의 생활과 나의 생활을 한데 섞어 놓고 헤매일 수는 없나이다.
(…)
이왕 사람이 아닌 노예의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한 개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값있고 뜻있는 생활을 하여야겠나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알아주는 사람을 찾으려나이다.
― 김일엽, 소설 「자각」에서
때는 왔습니다. 온갖 것을 바로잡을 때가 왔습니다. 지리한 전쟁의 몽몽한 포연은 그치어 지구의 암야는 밝았고 평화의 서광이 새로 비치어 새로운 희망 아래 새 무대가 전개되었습니다.
개조! 개조! 이 부르짖음은 전 세계의 끝으로부터 끝까지 높으게 크게 외쳐 납니다.
(…) 우리도 남같이 살려면 남에게 지지 아니하려면 남답게 살려면 전부를 개조하려면 여자 먼저 해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김일엽, 《신여자》 창간사에서
경희도 여자다. 더구나 조선 사회에서 살아온 여자다. 조선 가정의 인습에 파묻힌 여자다. 여자란 온량 유순해야만 쓴다는 사회의 면목이고 여자의 생명은 삼종지도라는 가정의 교육이다. 일어서려면 압박하려는 주위요, 움직이면 사방에서 들어오는 욕이다. 다정하게, 손 붙잡고 충고 주는 동무의 말은 열 사람 한입같이 “편하게 전과 같이 살다가 죽읍시다.” 함이다. (…) 아아 경희는 어느 길을 택하여야 당연한가? 어떻게 살아야만 좋은가?
― 나혜석, 소설 「경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