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스님 야카와 떠돌이 사내가 들려주는 별과 새, 나무와 씨앗의 이야기.스스로 길을 내면서 수재 현장으로 들어가는 굴삭기 같은 작가 – 이윤기(소설가)
김영래의 장편소설 『씨앗』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고교 3학년 때 “학교가 인간성을 말살하고 창의력을 말살시키려는 음모 집단으로 여겨져” 자퇴하고 1997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6년 전 시로 등단한 작가는 2000년 『숲의 왕』으로 제5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다시금 화려하게 데뷔식을 치렀다. 현단계에서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은 김영래는 최승호, 정현종 등의 시인과 최성각, 윤후명, 이윤기 등의 소설가와 함께 한국의 ‘녹색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김욱동, 『시인은 숲을 지킨다』, 범우사, 2001)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작품화하는 것으로 요약되는 90년대 한국 소설의 주류와는 달리 진중한 주제 의식과 빼어난 문체로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작가는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씨앗』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작가 김영래에게 있어 『씨앗』은 세 번째 결실이다. 첫 소설 『숲의 왕』이 현재의 시점에서 인류가 당면해 있는 생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신화에 관한 에세이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는 인간이 비롯되었던 발원지를 더듬어 우리의 무의식과 예술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고대의 우주관과 생명관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씨앗』의 시선은 미래로 향해 있다. 식물 약탈에서 시작하여 식물에 의한 약탈로 이어진 ‘녹색 혁명’의 실체를 파헤친 『씨앗』은 전작들이 담고 있는 주제를 포괄하되 그 문제를 지금으로부터 30년에서 50년 앞선 시공에 던져 풀어내었다. 저마다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존재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향해 열려 있는 마흔두 개의 짧은 장(章)들은 신화와 사실을 오가며 상상의 세계를 펼쳐놓는다.꼬마 스님 야카와 떠돌이 사내의 이야기
『씨앗』은 미래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우주와 생명의 문제를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야카라는 아명(兒名)으로 불리며 사원에 서 자라난 ‘나’는 말썽 피우기를 좋아하는 개구쟁이다. 기회만 생기면 친구 탕노와 노마와 함께 사원 밖으로 놀러 다니는 야카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황폐한 자연과 도시의 모습뿐이다. 물막이 공사 후 물새와 게 들의 시체만이 널려 있는 갯벌과 쓰레기더미를 뒤져 생계를 잇는 아이들,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이는 별 할아버지와 점쟁이 할아버지뿐이다. 별명 그대로 이제는 맑은 밤하늘에도 잘 보이지 않게 된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타로 카드를 이용해 미래를 점쳐 주는 할아버지는 지금 아이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무렵 야카가 있는 절에 씨앗이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를 짊어진 떠돌이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숲 속에 씨앗을 뿌린 뒤 그 주위에서 바이올린과 피리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자 식물들이 빠르게 자라나는 놀라운 광경을 아이들에게 선사한다. 2030년경,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음대로 씨앗을 심거나 식물을 기를 수 없게 되었다.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세계종자은행’이 모든 씨앗의 거래와 유통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도니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화분이 암시장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경찰은 범인 찾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씨앗을 지니는 것 자체가 불법인 시대에 씨앗이 가득 든 걸망을 지닌 떠돌이 사내는 자연스레 용의자로 주목을 받게 되는데…….떠돌이 사내는 야카에게 함께 씨앗을 심은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다짐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난다. 그가 남기고 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숲을 이루어가는 지금, 야카이자 지운 스님인 ‘나’는 깨닫는다. 태양은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는 태양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태양은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손꼽아 기다리는 식물의 갈증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의 수혜자는 사랑받는 이가 아닌 사랑하는 이라는 것을.김영래의 작품 세계, 그리고 『씨앗』
생태 소설, 혹은 에코 로망이라는 장르에 속하는 작품 『씨앗』은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고 있다. 낙원상가와 난지도를 배경으로 환경오염의 실태가 묘사되는가 하면, 씨앗박물관과 사원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피리 소리에 따라 ‘코브라에 홀린 듯’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는 싹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1960년대에 시작된 유전자 조작 식물 등의 ‘사실적’인 사건과 하마드뤼아데스의 신화, 도깨비와 왕자가 등장하는 ‘태양의 나라’ 동화들을 교차로 배치한 구성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김영래는 작품 『씨앗』으로 “자신의 작업의 한 시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숲의 왕』에서 『씨앗』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참 무던히도 한 테마에 매달려 있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집착이었을까? 아니면, 절망적인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우회적으로 답변한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들을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다. (……) 이제 우리의 희망은 좀 더 철저하게 절망적으로 되는 데 있다. 절망보다 먼저 우리가 절망을 보아야 한다.”라고.“우리를 움켜쥐고 있는 현실과 사실을 뛰어넘어 아름다움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의도이자 유일한 형식이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떠돌이 사내와 꼬마 스님 야카의 신비로운 이야기 『씨앗』에는 숲 속의 생명력 넘치는 향기가 가득하다.『씨앗』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연보호’라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구호가 아니다. 김영래는 작금의 화두라 할 수 있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우주적 관심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문체로 독자들을 신화와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깊이 있고 타당성을 지니며 사회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는 주제 의식은 작품 『씨앗』의 생명력을 아주 오래도록 연장시킬 것이다.
저자 김영래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동서문학》 신인상에 「소금쟁이」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숲의 왕』으로 제5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였으며,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등의 책을 냈다.
아름다운 길꽃가루의 길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내 이름은 야카바람의 제왕나는 별 할아버지별을 보여 주세요!땅 위의 별들낙원의 새달타로 카드역, 부두, 어시장노마의 아파트고로쇠나무 껍질 걸망 속에 든 씨앗제석천의 보배 그물유랑의 땅태초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생명을 주는 나무황금 정원의 주인하마드뤼아데스, 나무의 요정들씨앗들은 어디로 갔을까?태양의 나라도깨비와 다섯 무기를 가진 왕자엘도라도의 황금 성전신세계로부터유전자 특허청과 복제 인간아도니스의 정원아도니스는 누구인가?씨앗박물관씨앗을 위한 궁전사막의 새장풀잃어버린 정원약왕 보살귀룽나무 꽃 그늘 아래서우리 별을 보여드릴게요!제13부두 준공식아도니스와 낙원의 새들네 번째 카드그해 여름효석 동자이곳에서 살기 위하여사랑의 수혜자는 사랑하는 사람이다작가의 말 – 숲에서 올리는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