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도서목록 | 보도자료 게시판 프린트 | 읽기도구 닫기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첨부파일


서지 정보

임지은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6월 14일

ISBN: 978-89-374-0942-4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84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322

분야 민음의 시 322


책소개

태연한 표정으로
태연하지 않은 세계를 말하는 담대한 시인
누워 있는 시가 일으키는 당연한 것들의 특별한 힘


목차

자서(自序)

1부
사물들 13
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15
경계 문지르기 17
발바닥 공원 20
팀워크 22
기본값 24
크리스마스로 시 쓰기 27
눕기의 왕 30
미스치프와 시쓰기 32
토끼잠 34
산 책 37
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 2 41
코로나 시대의 낭독회 44
입장들 46
결말들 48

2부
반려돌 53
가장 좋은 저녁 식사 54
혼코노 56
비 오는 날의 다중 우주 59
구조주의 60
반납 63
정리하지 않은 게 정리 66
프랑스 댄서 69
숨바꼭질 74
상한 두부 한 모 76
비상구 78
유기농 엄마 79
수중생활 82
네모 없는 미래 85

3부
무한리필 89
자는 동안 92
들고 가는 사람 94
과대포장 96
덕수궁에 왔다가 들어가지는 않고 98
심은 꽃 100
파꽃 102
모조 꽃 105
병원에 갔어요 106
똑똑 108
조건 가정 111
발 빠짐 주의 114
유턴하는 생활 116
뺑뺑이 맑음 119
남은 부분 122

4부
죽은 나무 심기 127
새로움과 거리에 관한 하나의 견해 129
신인과 대가 132
과일 교도소 134
탈의실 136
앨리스 나라의 이상함 138
밀봉된 캔의 역사 142
침묵에 가까운 일 미터 144
세탁기 연구 145
책상 연구 148
독자 연구 150
악몽은 사적인 동물 152
모자(속에 사는 사)람 154
팔자 주름 157
초능력이 니체 159

작품 해설–최선교(문학평론가) 16


편집자 리뷰

시인 임지은의 세 번째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가 민음의 시 322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세계를 받아들이는 임지은의 방식은 그의 자서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세 번째 시집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는다. 그러니까 임지은은 상상에서 시작해 현실로 내려앉는 사람. 내려앉은 현실에서 문득 보이는 당연한 것들의 특별함을 콕 찌를 줄 아는 사람이다. ‘교양 있는 사람 되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 측정이 불가하며 달성이 모호한 목표처럼 보이는 반면, ‘세 번째 시집 있는 사람 되기’는 언뜻 달성할 수 있고 결과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목표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세 번째 시집 있는 사람 되기’라는 목표 역시 종이에 납작하게 적힌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얼마나 많은 시가, 얼마나 많은 지난함과 고단함이 담겨 있는지 측정하기 어렵다. 임지은의 시들은 이렇듯 한번에 편안하게 읽힌 뒤, 그대로 지나쳐 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챈다. 지나쳐 가려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 한번 더, 곰곰 문장을 읽다 보면 임지은이 말을 비트는 듯 보이면서도 새삼 당연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도 특별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거꾸로 받아적는다는 뜻이 아닐까? 임지은의 시를 읽고 나면 당연한 것이 작동하는 세상의 당연함이 슬쩍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당연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 그것이 임지은이 불러일으키는, 종이에 가만히 누워 있는 시의 힘이다.


 

■우리도 왕이 될 수 있어
시집의 제목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는 수록 시 「눕기의 왕」의 한 구절(“이 시는 지금 누워 있고/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로부터 왔다. 이 시는 ‘누워 있을 것’의 의지를 당당하고 뻔뻔하게, 나른하고 단호하게 진술하는 작품이다. 어떤 이유로 눕는다거나, 누워 있었기에 어떤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인과가 뒤섞인 채 우리는 시의 화자와 시가 음…… 누워 있었군…… 하는 사실만을 마음에 아로새기게 된다. “아침이 돼서야 이를 닦는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다른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다// 왜? 누워 있으려고”라는 식. 결국엔 “졸음”까지 “데리고 와 같이 눕는다”(「눕기의 왕」). 이 단순하고도 어딘지 웃음이 나는 임지은식 문답을 상상해 본다. “어제 뭐 했어?” “누워 있었어.” “왜?” “누워 있으려고.” 일상의 어떤 구간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세계. 아마도 그 단순하디 단순한 대답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빛나고 있을 것만 같다. 문학평론가 최선교는 해설에서 “이건 시집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시집을 읽는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자세이기도 하다.”라고 제안한다. 좋은 걸 좋다고, 지금 하는 걸 하고 싶어서 그냥 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화법과 보법을 따라 읽고 살기. 그것이 어쩌면 ‘뭔가의 왕’이 취할 법한 자세 아닐까.


 

■너무 열심히 사는 세상에서 하는 딴생각
임지은은 묻는다.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기본값」) 우리 모두 대부분 현실에서 이런 질문을 들으면 이렇게 되받아 말할 것이다. “너도 열심히 살잖아.” 시 속 화자의 친구 역시 비슷하게 말한다. “너도 밥 먹고 시만 쓰잖아”(「기본값」). 시인은 ‘열심’이 기본값이 아닌 ‘보통’이 보통인 시대를, ‘대충’도 괜찮은 세상을 바라지만, 시인이 되돌려받은 친구의 말마따나 세상의 이모저모를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 채집에 숨 가쁜 이가 바로 그 자신이다.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에는 온통 그가 가장 열심이고 열중했던, 치밀하고 찬란한 딴생각들이 우글거린다. 그가 가장 즐거워하는 딴생각은 역시 당연한 것들을 불러내 요리조리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일인 것 같다. 소인국에 놀러 온 걸리버처럼, 작은 언어들을 데리고 즐거워하는 (반쯤 누운)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는 정말로 타국에서 놀러 온 이방인처럼 빛나는 눈으로 언어를 대한다. “한국어는 뜨거운 국물이 시원한 것만큼 이상합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가/ 자리가 없다는 뜻도 있다는 뜻도 되니까요// 그럼 여기 나 있어요, 는/ 내가 있기도 없기도 한 상태입니까?”(「혼코노」) 이방인으로부터 익숙한 세상의 질서가 지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딴생각으로 인해 숨겨진 진실이 끌려나오기도 한다. 임지은의 시집은 이런 밀고 당기기로 우리를 그의 딴생각 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딴생각이 만든 낯선 시선으로 시집 바깥의 세계를 돌아볼 때, 우리는 아마 조금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본문에서

뭐든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기엔 누워 있는 것이 제격이니까
다른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다

왜? 누워 있으려고
―「눕기의 왕」에서

 

그렇게 토끼는 죽은 듯이 잠이 들었고
거북이는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때부터 토끼의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누구도
토끼를 깨워 주지 않았다는 것
―「토끼잠」에서

 

당신이 탄 버스가 부산행이라는 믿음만이
당신을 부산으로 데려다줍니다

행복엔 잘잘못이 없고 계속하면 됩니다
―「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 2」에서

 

언어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해와 다툼과 싸움이
같은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말에도 창문이 있고 먼지가 쌓인다는 것을 모른다

실어증을 앓는 사람은 쓰레기를 버리려다
쓰레기통까지 버린 사람이다
―「정리하지 않은 게 정리」에서

 

오후에는 우산을 챙기라고
오늘은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기상청은 날씨를 돌려 말하지만
무엇이든 끝내고 싶을 땐 끝! 이라고 해야 한다
끝은 돌려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뺑뺑이 맑음」에서


 

■ 추천의 말

시집을 절반쯤 읽었을까. 나는 내가 속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임지은 시인이 사물에서 신기한 규칙들을 찾아낸 줄 알았다. 세계에 마법을 걸고 있는 줄 알았다. 난 내가 이상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임지은 시인은 이상한 얘기의 달인이 아니라 당연한 얘기의 천재였다. 임지은은 숨 쉬듯이 당연한 얘기만 한다. 너무 당연해서 내가 잠깐, 어제, 그제, 몇 달 전에…… 그게 그렇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까먹었을 뿐이었다. 언제 까먹었는지는 모르는, 어쩌면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는 것만 같은 당연한 얘기들. 임지은의 당연한 얘기는 물음표가 달리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집엔 당연하지 않은 얘기들도 있어. 최대한 사물을 긍정할 때. 무생물이 나를 딸, 이라고 불러도 특별한 일이 아닐 때. 세 번째 시집은 시집이 되고, 우리는 임지은을 세 번째 시집을 가진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말 당연하지. 이름이 있다는 게. 이름이 없어도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너무 당연해서 위로받는, 무서운, 시집, 시집, 시집.
-김승일(시인)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어쩐지 당연해서 좋은 시의 세계. 티셔츠에는 “머리부터 집어넣는 티셔츠의 세계”가 있고, 빨대에는 “몸통이 구멍인 빨대의 세계”가 있다(「사물들」).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도 덩달아 허락받는다, 이 시집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유행 티켓을 손에 쥐여 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행복엔 잘잘못이 없고 계속하면 됩니다”(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 2」).
-최선교(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

임지은

2015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 『때때로 캥거루』, 에세이 『우리 둘이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