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5월 31일
ISBN: 978-89-374-3836-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38 · 156쪽
가격: 11,000원
시리즈: 쏜살문고
프란츠 카프카 서거 100주기 기념 잠언‧일기 모음집
카프카의 사상, 세계관, 종교관이 담긴 잠언
카프카의 불안, 사랑, 문학에 대한 열정이 적힌 일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는다. 그것도 세 가지 종류나 된다. 첫째, 인간은 이 삶을 원했을 때 자유로웠지만, 이제 그는 물론 더 이상 이를 되돌릴 수 없다. 그는 당시에 그 삶을 원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살아가면서 당시의 의지를 실행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인간은 이러한 삶의 방식과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셋째, 언젠가 다시 한번 존재할 자로서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도 삶을 뚫고 나아가며, 이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의지를 가진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게다가 선택 가능한 길이지만 미로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그런데 인간은 이 삶의 어떤 지점을 건드리지 않고는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세 가지 속성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동시에 존재하므로 한 가지다. 실은 자유의지든 비자유 의지든 의지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한 가지다.”
─ 「잠언」에서
“사방에서 견뎌 내야 하는 불안. 나를 향해 곧장 들이미는 듯한 의사의 진찰. 나는 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나는 그의 공허한 말을 내 안에 간직하고, 경멸하지만 반박하지는 않는다.”
─ 「일기」에서
“카프카는 20세기를 가장 순수하게 표현한 작가다.” -엘리아스 카네티
“카프카의 작품 중 나와 무관하거나 나를 놀라게 하지 않은 구절은 없다.” -토마스 만
잠언 ― 7
일기 ― 53
해설 ― 121
20세기 문학의 징후, 온 시대 통틀어 가장 독특한 문학 세계를 축조한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쓴 일기와 잠언을 한데 엮은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_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가 민음사에서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카프카가 1909년부터 1922년까지 쓴 일기의 일부를 수록했으며, 1920년에 막스 브로트가 발간한 잠언집 『죄, 고뇌, 희망과 참된 길에 대한 성찰』에 수록한 잠언의 일부, 여기에 ‘가사(假死) 상태에 관해’를 포함했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자전적 성찰, 글쓰기에 대한 카프카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소설 초안 및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카프카는 1917년부터 1918년 봄 사이에 걸쳐 8절지 노트에 자신의 사상, 세계관, 종교관을 담은 아포리즘을 기록했는데,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_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에서는 모두를 수록하지 않고, 카프카를 이해하는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췌했다. 이 책에 수록된 카프카의 잠언과 일기를 통해 독자는 카프카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흔히 알려진 카프카의 인상과는 다른 면모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일기를 보면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기괴하고 부조리한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 사라지고, 진지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열정적인 사랑꾼의 모습이 나타난다.
카프카의 잠언
카프카의 잠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세계, 삶, 인간 그리고 길이다. 카프카가 말하는 길은 노장 사상의 도(道)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카프카가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경』에 관심을 갖고 읽은 것으로 보인다. 카프카의 아포리즘과 산문은 서로를 보충하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카프카의 산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언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카프카의 글쓰기 방식으로 볼 때 삶이 지속되는 한 해결은 어렵고, 삶이 끝나는 순간 해결은 무의미하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강신(降神) 행위다.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히브리어를 배우기도 한 카프카는 동방 유대인의 종교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이러한 토대는 그의 작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카프카와의 대화』를 쓴 구스타프 야누흐에 의하면, 카프카는 진실한 삶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야누흐는 카프카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 실존을 위한 카프카의 조용한 격전을 예리하게 주시한 뒤 이렇게 기록했다. “그것은 불안과 섬세함과 관련 있는 힘인데, 카프카는 사소한 모든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카프카의 일기
카프카는 19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며, 1912년 펠리체 바우어를 만나 교제한 뒤에는 수많은 편지를 쓰는 한편으로, 일기에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적었다. 카프카의 일기는 타인에게 보여 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면의 기록이다. 일기에는 막스 브로트와 책 편집을 논의하는 모습, 밀레나에게 일기장을 넘겨준 이야기, 애증 관계인 아버지로부터 질책을 듣는 이야기, 결핵에 대한 단상 등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와의 두 번의 약혼과 파혼으로 인한 불면과 두통으로 인해 심각한 병을 불러들였으며, 결국은 혹사당한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털어놓는다. 카프카의 이 내밀한 일기는 연애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중심축은 불안이다. 병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유대인으로서의 불안, 형이상학적인 삶의 불안 등이 중심을 이룬다.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 예센스카는 1921년에 카프카로부터 일기와 미완성 장편 소설 『실종자』 원고를 넘겨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카프카는 글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엄격하게 절제된 생활을 유지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회사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 오후 3시부터 7시반까지 잠을 잤다. 그런 다음 친구들과 혹은 혼자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후 밤 11시경 글을 쓰기 시작해서 새벽 2시나 3시 혹은 더 늦게까지 글을 썼다.
카프카의 삶은 온통 문학이었다.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서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카프카에게 현실은 문학이 되고 문학은 현실이 된다. 카프카의 친구인 유대계 작가 게오르크 랑거의 회고에 의하면, 카프카가 미발표된 글을 불태워 달라고 하자 랑거가 그럴 거면 왜 글을 쓰고 발표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카프카는 이렇게 답했다. “나도 잘 몰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기억을 남기도록 내몰고 있어.” 카프카 자신이 보기에는 태워야 할 부족함 많은 작품일지 모르나, 카프카가 남긴 많은 글들은 오늘날 카프카라는 작가의 심오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