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하일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9월 10일 | ISBN 978-89-374-8578-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5 · 236쪽 | 가격 11,500원

책소개

한국 문단의 영원한 사건 『경마장 가는 길』그리고 영원한 이방인 하일지그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다

오늘,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손님이 찾아온다!

1990년대 한국 문단의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비롯해 경마장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하일지의 열한 번째 장편소설 『손님』이 출간되었다. 2009년 『우주피스 공화국』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놀라운’, ‘포스트모던한’, ‘현대성의 징후’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소설을 끊임없이 창조해 온 작가가 또다시 새로운 소설적 실험을 통해 지금까지의 소설 세계를 일신하는 경이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 준다. 『손님』은 한 낯선 남자가 하원이라는 마을을 방문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블랙코미디로, 소설을 읽다 보면 우스꽝스러운 상황 앞에 배를 잡고 웃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목덜미가 섬뜩해진다. 그동안 그가 보여 준 실험 정신을 여전히 발휘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 묘사, 감칠맛 나는 대사들, 넘치는 유머와 위트로 읽는 재미를 훨씬 더해 흥미로운 한 편의 잔혹동화를 읽는 듯하다. 인간의 삶을 가차 없이 폭로하고 우리 모두가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그의 소설은 우리의 의식을 자유롭게 하며, 우리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운다. 이러한 ‘감각의 갱신’을 통해 우리는 삶의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지금까지 우리가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전혀 낯설고 새로운 손님의 방문

1990년 하일지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거대한 전환점을 보여 주었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가차 없이 폭로하고 인간 심리의 출구 없는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 낸 다섯 편의 ‘경마장’ 시리즈를 통해 하일지는 문단과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후 한국 문학의 진로를 전향시켰다. 그는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실험적인 문학 세계를 끈질기고 치열하게 추구해 왔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새』, 『진술』, 『마노 카비나의 추억』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 세계가 보여 준 전례 없는 내용과 형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일지 소설의 진가는 재발견되며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다.그런 그가 다시 한 번 놀랄 만한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손님』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블랙코미디로, 배를 잡고 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목덜미를 섬뜩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다. 하일지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사전 구상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떠오르면 거기에 이어 둘째 줄을 쓰고, 둘째 줄에 이어 셋째 줄을 쓰는 방식이다. 즉, 그에게 있어 작품 구상은 첫 문장과 함께 시작되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을 써 나가면서 진행되며,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쓰는 것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를 놀라게 한 열한 작품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손님』 역시 이토록 신비롭고 매혹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해거름 녘에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허표의 동생 허도는 고욤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대체 저 모자 쓴 사람이 오늘 밤 어느 집에서 잘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한 폐결핵에 걸려 이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허도는 저녁 무렵이면 으레 고욤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동구 밖을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고욤나무 밑 축축한 흙 속에는 굵은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 허도는 그것을 캐 먹곤 했던 것이다. 허도에게로 다가온 낯선 남자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핏기 없이 하얀 얼굴을 한 허도는 해골이 드러날 만큼 앙상하게 여위어 있었던 것이다. 낯선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안녕하세요? 여기가 하원입니까?”

이렇게 낯선 손님 하나가 하원이라는 마을로 불쑥 찾아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손님 ‘슈’는 허순을 찾아왔다면서, 그녀의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허순은 바로 허도의 누나로, 허도는 손님을 허순의 아파트로 인도한다. 얼마 전 허순이 무용반 학생들을 데리고 무용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서울에서 손님을 만난 것이다. 손님은 값비싼 최고급 양주를 선물이라며 내놓고, 무용반 학생들도 불러들여 모두들 기분 좋게 술을 마신다. 석태는 너희 같은 촌년들이 언제 이렇게 멋진 남자 품에 안겨 보겠느냐며, 온갖 음담패설과 욕설을 퍼붓는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허순은 다 함께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통역을 맡은 채령은 손님에게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속이고, 손님은 개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계산할 때가 되자, 허순은 계산서를 손님에게 내민다. 손님은 흔쾌히 모든 음식값을 계산한다. 그들은 석촌호 가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데, 여학생들은 저마다 서로 손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 거나하게 취한 손님이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며 석촌호로 뛰어들어 저편의 조그마한 바위섬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유나도 속옷 바람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손님을 따라 헤엄친다. 바위섬 뒤로 사라진 한참 뒤, 유나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혼자 헤엄쳐 돌아온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무 일도 없었고, 손님과 그저 달을 바라보고 있었노라고 말한다. 작별 인사를 할 때 손님이 허도를 조용히 불러 100만 원을 쥐여 주며 “개고기 사 먹어.”라고 한국말로 말하면서, 당신은 내 형제며, 우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말하지만, 허도는 너무 놀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허순은 손님에게 왜 동생 허도에게는 돈을 주면서 자신에게는 돈을 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며 따진다. 그러자 손님이 허순에게 돈을 주며 “당신은 내 어머니를 닮았어요.”라고 한국말로 말하지만 허순 또한 너무나 기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손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여학생들이 유나에게 어젯밤 손님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묻자, 유나는 손님과 함께 달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손님이 “양고기 맛있었어.”라고 정확한 한국말로 말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한국말로 나눴다는 것이다. 그들은 순간 왜 손님이 하원에 찾아와 그렇게 많은 돈을 써 가며 눈뜬장님처럼 당했을까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 한국 문학의 영원한 이방인 하일지, 그가 당신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우다

그동안 하일지는 형용사 및 유추, 은유, 작가의 임의적 판단이나 느낌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카메라로 피사체를 포착하듯이 치밀하고 집요하게 객관적인 묘사를 해 왔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고 독자에게 장면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독자와 작품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독자는 더욱 속도감 있게 작품을 읽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변주되며 모티프가 반복되는 순환적 구조를 통해 소설적 실험을 보여 왔다. 『손님』 역시 이러한 실험 정신을 여전히 보여 주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 묘사, 감칠맛 나는 대사들, 넘치는 유머와 위트 등 읽는 재미가 훨씬 배가되어 흥미로운 한 편의 잔혹동화를 읽는 듯하다. 이 작품 속 세계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해 대고, 아이들 또한 아이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들을 해 댄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한없이 순수하게 느껴질 만큼 천진난만하게 그려지고 있다. 판타지적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이 소설은 한 편의 묘하고 신비로운 환상소설처럼 읽힌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겪게 되는, 한 번도 체험해 본 적 없는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가 그려 내는 세계는 무척 낯선 듯 보이지만, 틀림없이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의 말처럼 “대상을 모방하되 모방하는 대상을 낯설게 만드는 글쓰기, 현실을 재현하되 그 재현된 현실이 이미 있는 세계가 아닌 새로 창조된 세계인 글쓰기, 그것이 바로 하일지의 소설이다.”  그는 고도의 감정 절제와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문장,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대사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가차 없이 폭로하고 우리 모두가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며, 인간 심리의 출구 없는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 낸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저씨가 한국말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렇게 콩닥거렸던 가슴이 슈 아저씨가 한국말을 하자 왜 갑자기 잠잠하게 가라앉았나 하는 거야, 그렇게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아저씨의 물건이 아저씨가 한국말을 하는 순간부터 왜 갑자기 거북스럽게만 느껴졌나 하는 거야.”(중략)“어쩌면 우리는 슈 아저씨를 눈뜬장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 장님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막상 장님이 아니라는 걸 알면 갑자기 몸을 추스르게 되는 것과 같은 거 아니야?”“아무래도 그게 정답인 거 같다.”―226~227쪽

외국인이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욕을 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말을 할 줄 알더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가 누군가에게 들켜 민망했던 상황 등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소설은 매 순간순간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충격을 준다. 우스꽝스러운 상황 앞에 배를 잡고 웃다가도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이유다. 하일지 문학이 기존 한국 소설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독자에게 어떠한 진실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교양과 지식을 주고,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깨우치려 하는 기존 한국 소설과 달리, 몸서리쳐질 만큼 치밀하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묘사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다. 그는 독자들이 그의 글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의식이 보다 자유로워지기를, 그들의 잠들어 있는 감각이 깨어나기를 바란다고,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그런 ‘감각의 갱신’을 통해 우리는 삶의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일상에 불쑥 찾아든 손님, 당신의 감각을 새로이 깨워 줄 불청객의 방문이 반가운 까닭이다.

편집자 리뷰

● 본문에서

“오늘 저녁 식사는 계순이 아줌마네 집에 가서 먹기로 한다. 좋지?”그러나 이번에 학생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을 뿐 탄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열심히 통역을 하던 채령이마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통역을 중단했다.“그렇지만 계순이 아줌마네 집은 개고깃집이잖아요?”선영이가 허순에게 말했다.“개고깃집이면 어때?” 허순이 말했다.“그렇지만 개고기 못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슈 아저씨도 그렇고.”선영이가 말했다. 개고깃집에 간다는 사실을 차마 통역할 수가 없었는지 채령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허순의 큰아들 정대가 선영이에게 말했다.“나는 개고기 먹을 수 있다. 개고기 맛있다.”허순의 작은아들 정수가 형을 두둔하며 말했다.“맞아!”“개고기는 비싸대요, 선생님. 이 많은 사람이 그걸 먹으려면…….”보람이가 말했다.“그런 걸 왜 니가 걱정하니? 누가 너한테 돈 내라고 했어?”허순이 말했다. 보람이는 말문이 막혀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석태가 나섰다.“야, 이년들아, 너네들이 개고기 맛을 알아? 한국 사람이면 개고기 맛을 알아야 해.”“그렇지만 슈 아저씨는 어떻게 해요?”아영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옛날 속담에 이런 말도 있어. 개고기 먹는 놈은 개 같은 놈이고, 개고기 못 먹는 놈은 개보다 못한 놈이라고. 한국에 왔으면 슈도 개고기를 먹어 봐야 할 거 아냐. 슈가 개고기를 못 먹으면 개만도 못한 놈이 되는 거야, 안 그래?”석태의 이 말에 가장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채령이였다. 이 상황을 손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찾아 쓰며 말했다.“캐고기가자!”이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당황한 표정들로 손님을 올려다보았다. 보람이는 수진이의 귓전에다 대고 속삭였다.“슈 아저씨 우리가 하는 말 다 알아들은 거 아냐?”“에이, 설마!”수진이가 말했다. 그때 다시 손님이 자신의 조그마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며 말했다.“캐고기가자!”이렇게 하여 학생들은 저마다 마뜩지 않은 표정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순의 두 아들, 정대와 정수만은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달려 나갔다.“캐고기가자!”현관문을 나서면서 슈는 다시 한 번 소리쳤고, 이번에 학생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슈의 뒤를 따랐다. 채령이는 슈에게 개고기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 게스, ‘캐고기가자’ 이즈 더 네임 오브 레스토랑, 이즌트 잇?”채령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51~53쪽

작가 소개

하일지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리모주 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경마장 가는 길』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에서 생긴 일』, 『위험한 알리바이』,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새』, 『진술』, 『우주피스 공화국』, 『손님』, 『누나』, 영화소설 『마노 카비나의 추억』,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 Blue Meditation of the Clocks』, 『내 서랍 속 제비들 Les Hirondelles dans mon tiroir』, 이론서 『소설의 거리에 관한 하나의 이론』, 철학서 『하일지의 ‘나’를 찾아서』 등이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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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황정수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