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브 연락 없다
원제 Sin Noticias De Gurb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6월 29일 | ISBN 978-89-374-6290-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196쪽 | 가격 11,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290 | 분야 세계문학전집 290
에스파냐 문학의 거장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바르셀로나에 바치는 유쾌한 찬가사라진 동료 구르브를 찾아 좌충우돌하는 외계인의 지구 탐사 일지에스파냐 전통 서사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대도시 삶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소설
▶ 바르셀로나와 나, 우리는 무척이나 금실 좋은 부부로 지내 왔고, 무척이나 강하고 튼튼한 자식들을 두고 있다. —에두아르도 멘도사 ▶ 위대한 책. 문학적 항우울제. —《코스모폴리탄》▶ 멘도사의 흠 없는 서술 기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앙드레 크라벨(영화감독)
에스파냐 현대 문학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구르브 연락 없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90)으로 출간되었다. 『구르브 연락 없다』는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소설이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 패러디 기법과 SF 요소를 더해 대도시 바르셀로나의 혼돈과 무질서, 요지경 같은 도시인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 낸다. 멘도사는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한 어조로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고향 바르셀로나의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가볍게 조롱하는 동시에 경이에 찬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르셀로나의 명소와 명사, 역사적 사건 등을 세심하게 훑어 보인다. 에스파냐 최대 일간지 《엘 파이스》에 먼저 연재되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현재까지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독특한 서사 기법과 수사법이 주는 재미는 물론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에스파냐 정규 교과서에 수록되고 자국 내 15세 이상 필독 도서로 선정되었다.
■ 한없이 낯선 지구가 한없이 친근해질 때까지, 별난 외계인의 별난 지구 탐사 일지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한두 해 앞두고 두 외계인이 에스파냐에 착륙한다. 이들은 생김새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해 지구의 생활 형태를 탐사하려 한다. ‘나’는 동료 구르브에게 착륙 지점 일대의 탐사를 일임하는데, 구르브는 에스파냐의 유명 여가수 마르타 산체스로 변신해 탐사에 나선 뒤로 연락이 두절된다. 혼자 남은 ‘나’는 구르브를 찾기 위해 유명 인사들로 모습을 바꿔 가며 바르셀로나 일대를 헤매 다닌다. 복잡한 대도시를 무작정 돌아다니며 구르브를 찾던 ‘나’는 거처로 사용하던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자 은행 계좌를 조작해 마련한 돈으로 아파트를 얻고 구르브의 연락을 기다리며 본격적으로 지구 생활을 시작한다. 단골 음식점의 주인 부부나 아파트 수위와 친분을 쌓고, 이웃집 미혼모에게 반해 그녀와 데이트할 방법을 강구하는가 하면 날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에 취해 사건을 일으키고 경찰서를 들락거린다. 그렇게 요지경 같은 지구 생활에 적응해 가기를 이십여 일이 지났을 때, ‘나’에게 수상한 초대장이 날아든다.『구르브 연락 없다』는 멘도사 자신이 말하듯 매우 “유별난” 소설이다. 주인공은 자유자재로 생김새를 바꾸는 외계인으로, 낯선 지구, 낯선 대도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바를 매일 매시(심지어 술에 취한 순간까지도) 일기를 쓰듯 빠짐없이 기록한다. 외계인이 영화배우나 교황, 동물로 변신하고 지구인처럼 눈물을 흘리다 몸이 쪼그라들거나 더위에 약한 머리가 폭발하는 등 공상 과학 소설 같은 설정이 주는 재미에 더해 시간마다 기록되는 현재형 문장들은 바로 지금 외계인과 함께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것 같은 현장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술에 취해 경찰서에 끌려가고, 이웃집에 잠입해 도사견을 페키니즈로 바꿔 놓고, 아픈 주인 부부를 대신해 음식점을 맡아 기계를 몽땅 고장 내는 등 좌충우돌하며 지구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외계인의 모습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구르브 연락 없다』가 멘도사의 다른 걸출한 작품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특유의 유머와 입담이 200쪽 남짓 되는 이 짤막한 소설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 에스파냐 서사 전통과 기발한 상상력, 유머의 향연이 만난 유쾌한 풍자 소설 『구르브 연락 없다』는 1990년 여름 《엘 파이스》에 연재되고 이듬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외계인의 일기’라는 설정은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소설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독창적이다. 그러나 이 외계인 화자가 전혀 낯설고 새롭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가는 곳마다 말썽이 끊이지 않는 모험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떠오르지 않는가. 멘도사는 이미 전작에서 에스파냐 전통 문학 양식인 피카레스크 소설의 인물과 구성을 꾸준히 패러디해 왔다. 『경이로운 도시』의 오노레프, 삼부작(『납골당의 미스터리』, 『올리브 열매의 미로』, 『미용실에서 생긴 일』)의 이름 없는 탐정처럼 『구르브 연락 없다』의 화자 역시 에스파냐 문학 전통에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패러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피카레스크 소설이 주인공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들춰내고 풍자하듯 『구르브 연락 없다』 역시 외계인의 탈 많은 지구 적응기를 통해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예컨대 빈부 격차와 인종 문제까지 폭넓게 건드린다.
21:00 (중략) 지구인들은 여러 범주로, 특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 중 하나다.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다. 부자들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
09:50 (중략) 모든 인종들 중에서 흑인은(말 그대로 피부가 검은 사람은) 백인보다 나은 특별한 재능을, 즉 크고, 강하고, 빠른 재능을 타고났다. 물론 어리석기는 흑인이나 백인이나 마찬가지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백인들의 집단적인 잠재의식 속의 먼 옛날, 그러니까 흑인이 지배층이고 백인이 피지배층이었던 시대의 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짧고 가벼운 작품의 특성상 이러한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잡다하고 일상적인 인간사의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면면을 새롭게 비틀어 보는 해학적인 재미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재미는 작품 전반에 적절하게 쓰인 과장과 익살로 더욱 증폭된다.
01:30 나는 무시무시한 굉음에 놀라 잠이 깬다. 수백만 년 전에(혹은 더 오래 전에) 지구에는 끔찍한 지각 변동이 있었는데, 사나운 대양은 해안을 휩쓸며 섬들을 집어삼키고, 거대한 산맥은 땅속으로 폭삭 가라앉고, 용암을 분출하던 화산은 폭발하면서 새로운 산을 형성하고, 엄청난 지진은 대륙을 이동시켰다. 이 도시의 시청은 시민들에게 이러한 자연현상들을 각인시키려고 밤이면 밤마다 청소차를 아파트에 보내서 엄청난 굉음을 유발시키나 보다.
21:30 나는 호텔 근처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고깃덩어리를 대충 분석해 보니, 거세한 소, 당나귀, 아라비아 낙타, 코끼리(아시아산과 아프리카산), 비비, 누, 메가테리움이 들어 있고, 말파리와 잠자리, 배드민턴 라켓, 너트, 병마개, 자갈, 극소량의 이물질까지 섞여 있다.
03:41 아니다. 그게 아니다. 느닷없는 소동에 웨이터가 뛰어온다.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주와 약혼자가 예약한 만찬석이란다. 예약 날짜는 1978년 4월 9일이지만, 예약은 아직까지 취소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파기할 수도 없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식탁보와 냅킨을 세탁하고, 식기 세트를 닦고, 꽃 장식을 바꾸고, 벌레들을 퇴치하고, 빵(백색 밀과 콩으로 만든 빵)을 오븐에서 갓 구워 낸 것으로 교체한단다. 그러고 보니 실내 한쪽 구석에 거미줄을 둘러쓴 사진기자 대여섯 명이 진을 치고 있다.
『구르브 연락 없다』는 짧고 가벼운, 말 그대로 소품 같은 소설이다. 멘도사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없다. 관점도 예외적이고, 경이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이다 보니, 비극도 없고, 비판도 없다.” 하지만 달리 보면 『사볼타 사건의 진실』과 같은 전작들의 압도적인 무게와 신랄함 대신 매 순간 번뜩이는 상상력과 유머로 독자의 혼을 빼놓고 무방비로 일상을 발가벗기는 노련한 고수의 소설이 바로 『구르브 연락 없다』인 것이다. ■ 가장 에스파냐 작가다운 작가 멘도사가 바르셀로나에 바치는 오마주『구르브 연락 없다』의 화자는 전통적인 피카레스크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회의 어두운 면을 풍자하는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유쾌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외계인 화자 ‘나’의 모험 일기를 통해 우리는 올림픽 준비로 시끌시끌한 대도시 바르셀로나를 속속들이 마주하게 된다. 온통 공사 중인 대로며 미술관과 박물관, 비둘기들이 똥을 싸지르는 국립공원, 인테리어 상을 받은 술집에, 미식가가 쓴 책에 나오는 레스토랑까지, 바르셀로나의 온갖 명소들을 방문하고 그가 변신하는 인물이나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을 통해 당시 바르셀로나의 명사들, 그에 얽힌 유명한 사건들과도 만나게 된다. 나아가 카탈루냐 지방의 노래, 춤, 음식, 방송 프로그램, 격언과 사투리까지 접하고 나면 이 책이 유머러스한 바르셀로나 여행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04:20 자? 왜, 구르브? 넌 우리 별로 돌아가고 싶어? 그야 물론이지. 너는 안 그래? 아, 몰라, 난 모르겠어. 사실 우리 별은 너무 따분하고 고루해. 구르브, 넌 아직도 어떤 미련이 남아 있나 보구나. 그래, 사실 난 여기 남았으면 해. (중략) 이 도시는 땅을 파고 또 파도, 그때마다 황금이 나오는 금광 같은 곳이잖아.
이방인의 눈에 비친 지구와 지구인들의 삶은 복잡하고 불편하고 지저분하며 모순 덩어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르브와 ‘나’는 결국 지구에 남는다. “금실 좋은 부부”처럼 지내 왔다는 바르셀로나에 대한 멘도사의 진솔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멘도사는 외계인의 입을 통해 바르셀로나를 조롱하면서도 그곳만의 매력과 가치를 독자들에게 널리 전하려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 정창은 이렇게 말한다. “애증은 상대적이고 반어적이다. 미움의 이면에는 그만큼 아끼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 『구르브 연락 없다』는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자신의 고향(조국) 카탈루냐에, 자신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나아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바치는 오마주인 셈이다.”
구르브 연락 없다 7
작품 해설 173
작가 연보 183
독자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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