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이 작가의 글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김화영/문학평론가▶ 깔끔하면서도 속도 빠른 문장에다 성격창조에 있어서도 신인 같지 않은 능란함이 느껴진다. -이문열/소설가▶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걸맞는 주제(이를테면, 광고문화 속의 인간 실존)를 구체적인 생활과 섬세한 의식의 빼어난 형상화를 통하여 녹아내듯 잘 드러내고 있다. -조성기/소설가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장밋빛 인생』은, 본심 심사위원들이 흔쾌히 의견을 일치할 만큼 기법과 주제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아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 자체가 광고 카피를 연상시키는 현란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는 환상, 껍데기, 포장, 화면, 카메라, 분장, 조명발, 디스플레이 등 휘발성 \’겉모습(paraitre)\’이 \’존재(etre)\’를 압도하고 대신하는 세계의 \’비어 있음\’을 동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데 효과적이고 또한 적절하다. 자신이 선택한 소재, 즉 \’광고\’와 \’이미지\’의 세계를 다루는 작가의 자유자재한 솜씨는 거의 \’직업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자주 감탄을 자아낸다. 상품과 인간, 사물과 삶의 연결과 소통이 직업이지만 정작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존재의 표면에서 부유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고독하게 찾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은 그 건조함 때문에 새롭고도 감동적이다. – 김화영/문학평론가
『장밋빛 인생』은 한 분야의 전문성을 보편적인 관심과 흥미의 대상으로 바꾸는 데 무엇보다 뛰어났다. 육화(肉化)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푹 밴 직업적인 정보와 지식이 주는 재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깔끔하면서도 속도 있는 문장에다, 성격 창조에 있어서도 신인 같지 않은 능란함이 느껴진다. 현대성의 이해에도 나름의 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 이문열/소설가
『장밋빛 인생』은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걸맞는 중요한 사회학적인 주제(이를테면, 광고 문화 속의 인간 실존)를 구체적인 생활과 섬세한 의식의 빼어난 형상화를 통하여 녹여내듯 잘 드러내고 있다. 탄력 있는 문장으로 끝까지 독자를 사로잡아 이끄는 힘이 이 작가의 역량을 보증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조성기/소설가
『장밋빛 인생』은 사막 같은 현실에서 습기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정서적인 금치산자\’들의 이야기를 강렬하고도 세련되게 풀어낸 소설이다. 광고회사, 헬스센터, 방송국 등을 배경으로 광고나 헬스, 요리, 화장 속에 편재해 있는 \’조작된 환상\’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 김미현/문학평론가(예심평에서)
이 소설은 광고, 헬스, 요리, 메이크업 등 가시적ㆍ감각적 외관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삶의 양식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신인답지 않게 소설의 육화(肉化)에 적절히 성공함으로써, 존재의 표면에서 부유하면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고독하게 찾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을 다룬다. 작가는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 강점을 보이는데, 이미지 속에 사는 인물, 즉 \’15초의 인생\’을 사는 광고인의 직업 세계를 적절히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은 1인칭 화자의 회상으로 시작되며, 화자가 관찰한 세계의 이미지가 단상처럼 흐른다. 비단 광고장이인 \’나\’뿐만 아니라, \’나\’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또 다른 인물 \’이강호\’도, \’나\’의 옛 연인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민\’도, TV 프로 \’사랑이 꽃피는 요리\’의 진행자인 \’나\’의 아내 정애도, 헬스클럽에서 만난 여인 재즈스쿨 강사도, 모두 이미지 속의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조작된 환상’을 보여주는 인물이거나, 혹은 그 ‘조작된 환상’ 속에 살 수밖에 없는 단자화된 현대인들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입는 건 청바지가 아니라 리바이스의 자유로움이며, 들이마시는 건 담배가 아니라 말보로의 마초 이미지”이다.이 ‘조작된 환상’이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광고 문화, 이미지 문화, 메이크업, 요리 등의 소재는 실재 아닌 실재를 구현한다. 이들은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이며 바로 시뮬라크르이다. 시뮬라크르, 이미지, 환상에 의해 구성된 세계가 상상 세계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모방할 혹은 재현할 실체가 없고 이미지가 실체인 세계에서는 상상 세계는 존재를 상실한다. 작가는 가상실재 속의 삶의 표현하는 데 넉넉한 직업의 세계를 다루어,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절히 성공한다.
어느 날 ‘나’에게 ‘민’의 죽음이 알려진다. 그것도 ‘민’의 남편에게서. 그는 ‘민’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살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나’는 ‘민’에 대해서, ‘민’과의 사랑에 대해서 회상하기 시작한다. 광고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온 나(광고 회사의 AE)에게는 30초만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이었다. 인생에 결코 의미를 두지 않는 삶. 사람은 잠들어도 광고는 밤새도록 펼쳐지며 보는 이를 유혹하지 않는가. 무엇을 살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갖는 삶이란 소비의 유형으로 규정되어지는 현대인의 삶의 극점을 보인다.내가 다니는 광고 회사에 인턴 사원 ‘이강호’가 들어온다. 그는 광고만을 위해서 사는 양, 미친 듯이 광고에 매달린다. 그가 추구하는 광고란 “역사성을 획득하면서 두고두고 찬양받아야 할 예술”이다. 그렇듯 열정적인 존재인 이강호에게 ‘나’는 현실을 바로 보라는 충고를 한다: “광고는 광고일 뿐이야. 광고의 화려한 포장을 벗기면 거기 돈이 있다. 광고는 돈의 포장지일 뿐이다.”그러나, 이강호의 삶은 보다 젊은 시절의 ‘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이미 광고계에서는 초신성이라 불릴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놓았다. 그러나 나는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하고 나면 자신이 꼭 헝겊인형처럼 느껴”지는, “몸속에 수분이 하나도 없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나에게는 30초만이 의미 있었지만, 그 무렵 ‘민’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30초 바깥의 편안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민’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1년 전 일 때문에 만난 사이다. 그때 이미 ‘민’은 결혼한 상태였고, ‘나’는 “사랑이란 그저 행복한 한 순간일 뿐” 어느 한 여자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민과 단지 눈길, 갈증, 기억의 편마암에 새겨진 그림을 강박적으로 교환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꿈이나 현실의 어려움, 혹은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눈빛을 입술을 혀를 성기를 정액을 나누고 기억까지 뒤섞고 마는, “서로의 존재의 바닥에 닿고야 말리라는 간절함”, 그에게 내 기억을 이식해 놓으려는 간절함, 안타까운 몸짓이 “사랑”이 아닐 것인가. 나는, “한 편의 광고를 만들 때마다 자신의 영혼을 5센티미터씩 잘라서 넣는 것 같은 이 생활”에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민’ 때문이라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민에게 경도되어 간다.그러나, 현실 속의 삶은 여전히 버겁다. 민은 나와 육체 이상의 것을 나누었어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민은 오히려 나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나 역시 민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민에게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다. 결국 둘의 관계는 내가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정애’와 결혼하고 끝나게 된다. ‘정애’와의 삶 역시 같다. 결혼은 15초 안에 끝나는 광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결코 현실을 꾸려갈 의지도 능력도 없다. 정애와의 말없는 삶, 정애가 구현해 나가는 또 하나의 조작된 환상, 내가 지속해 나가는 삶 속에는 더 이상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헬스클럽에서 몇 번 스친 적이 있던 재즈스쿨 여강사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에어로빅과 재즈댄스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다고 수강생들에게 믿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영이며 헬스까지 해야 하고, 그걸 제자들이 알게 되면 좌절감 때문에 운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여강사가 조작하는 환상, 그것은 형태만 다르지 광고판에 있는 그 실체와 다르지 않다.‘나’의 다른 자아인 ‘이강호’도 이러한 조작된 환상, 혹은 시뮬라크르의 이미지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는 이강호에게서 끊임없이 과거를 환기한다. 이강호는 ‘나’를 존경하면서, ‘나’와 같은 광고장이가 되려 하지만, 동맥이 서서히 괴사하는 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강호는 심약함을 잊고, 자신의 몸이라는 하드웨어와 정신의 소프트웨어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적인 인물이다.
‘정애’와의 말없는 삶, 재즈스쿨 강사와의 스쳐가듯 한 정사, 이강호와, 일 사이에서 맴돌던 ‘나’의 무의미한 삶 앞에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놓여진다. ‘민’의 남편이 건네준 ‘민’과 ‘나’의 추억이 되올려진다. ‘무엇이든 잃고 나서야 제 마음속에서 그것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의 크기를 손으로 더듬을 수밖에 없는 게 나라는 인간인지.’ ‘민’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민의 남편’의 말. 민의 남편은 자신 때문에 둘 사이에 애가 생길 수 없었는데도, ‘민’이 죽을 당시에 임신 중이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제는 “셀로판지로 바라본 부분일식처럼” 아릿하게 기억에만 새겨져 있는 ‘민’의 모습.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 빛바랜 기억뿐이다. ‘장밋빛과도 같은 인생’이다. 광고 촬영 현장. “누군가 날 좀 꺼내줘. 이토록 현란한 화면 속에서 날 꺼내줘. ……이 어지러운 화면 속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외침은 광고 콘티 속의 한 여인이다. 거의 흑백에 가까운 화면. 그 여인은 ‘민’이었던가. 아니면 30초면 끝날 CF의 한 장면일 뿐인가. 누군가 불을 켰고, 밝은 화면은 우연치 않게 찾아온 사고가 ‘이강호’를 덮쳤음을 보여준다. ‘크리에이티브’한 삶과 자유로운 발상, 늘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추구를 보여준 이강호는 결국 삶의 우연성을 보여줄 뿐이다.
*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장밋빛 인생』의 작품집에는 작가가 《문학사상》 2002년 1월호에 발표한「결혼기념일」이란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상작인 『장밋빛 인생』과는 달리, 사회의 음습한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에 연루된 한 개인의 하루를 통해 체제의 음습함에 점차 동조되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 메시지를 잔잔하게 깔아놓는 적절한 어조와 소재적인 흥미 때문에 수상작에 못지않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 정미경
1960년생.1982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 수상.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2001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비소 여인」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데뷔.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1. 장밋빛 인생 2. 결혼기념일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