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시뮬라시옹’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유작세계화와 기술 지배를 향해 극단으로 내달리는 인류에 던지는 장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메시지
원제 POURQUOI TOUT N’A-T-IL PAS DEJA DISPARU?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2년 5월 11일
ISBN: 978-89-374-8424-7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18x180 · 104쪽
가격: 10,000원
분야 논픽션
세계화와 기술 지배를 향해 극단으로 내달리는 인류에 던지는
장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메시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의 유작 『사라짐에 대하여』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07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한 장 보드리야르가 남긴 마지막 텍스트들 가운데 하나로, 사라짐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짧은 에세이다. 그는 근대와 함께 시작된 인간의 잠재적 사라짐에서부터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초래된 이미지의 범람으로 인한 모든 실재의 사라짐에 이르기까지, 사라짐에 관한 다양하고 복잡한 사유의 변주를 이 짧은 텍스트 안에서 엮어 나간다. 이미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꿰뚫은 바 있는 그는 객관적 지식 습득과 기술 지배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에 실제 세상과 인간은 사라졌으며, 현대의 문화는 유령으로 가득 찼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공룡 같은 매스 미디어에,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권력에 지배되는 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여전히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서문 7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 11
주 95
옮긴이의 말 99
▶보드리야르가 죽기 직전에 남긴 이 책은 기술의 진보와 인공 지능을 통해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드는 인간에 대해 사유한다. 유령으로 가득 찬 현대의 문화에 대한 분석은 묵시록적 정취를 풍긴다. -《가디언》
▶이 책은 간결함이 미덕이다. 그 간결함은 이 도발적인 철학자를 보다 잘 통찰하도록 한다. -《퍼블리셔 위클리》
◆ 실체 없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대 사회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의 유언장
따라서 인간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해 말하자. 사라짐의 문제이지 고갈, 소멸, 또는 몰살의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고갈, 종의 멸종은 물리적 과정이거나 자연적 현상일 따름이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다. 인류는 분명 자연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다. 어쩌면 사라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장 보드리야르가 2007년 죽기 직전에 남긴 텍스트 가운데 하나인 『POURQUOI TOUT N\’A-T-IL PAS DEJA DISPARU?(WHY HASN\’T EVERYTHING ALREADY DISAPPEARED?)』,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를 옮긴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이론가,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 등으로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철학과 문학, 사회 이론, 사진, 영화, 공상과학 등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글을 통해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보여 왔다. 그는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 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없어지고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소비 사회를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으로 논파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원본과의 관계가 끊어진 복제이다. 진실, 도덕, 권력, 신, 역사, 상상, 이데올로기, 삶과 죽음 등에 의해 형상화되던 실재는 그 기호, 이미지, 모형인 시뮬라크르에 의해 대체되어 파생실재로 변환한다. 이처럼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실재로 전화되는 과정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바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재와는 상관없는 인공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1차 이라크 전쟁을 두고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라는 했던 그의 도발적 주장은 그 전쟁으로 발생한 수많은 사상자와 참상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실제 현실의 전쟁은 참혹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게임처럼 접한다. 실재성을 느낄 수 없는, 미디어에서 다루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미디어에서 중개하는 시뮬라크르로서의 전쟁이 실제적 차원을 감추고 나아가 사라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지적한 반어법인 것이다.
◆ 가치의 상대성이 증폭되는 시대
보드리야르와 그의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강력한 틀로 각광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포스트모던의 최전선에서 급진적 사상을 전개한 그의 죽음과 함께 포스트모던 담론의 종언을 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로 대표되는 그의 독특하고도 급진적인 사유와 문제 제기는 여전히 현대 사회와 현대성을 탐구하는 데 유효하고도 본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인터넷 환경과 세계화의 급진적 물결은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수많은 가치들을 뒤흔들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혼란스럽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 나아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는 일을 일상으로 겪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 위계의 해체와 상대적 가치의 증폭으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정점에 들어섰음을 보여 준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와 기호,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분석하고 사유하고 비판한다. 과잉 생산된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면서 현실의 실재적 본질을 사라지게 하는 폭력을 휘두른다. 보드리야르는 이런 폭력이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다고 본다. 미디어는 폭력을 특수하게 현대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로 인해 폭력의 진짜 원인을 성찰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살, 학교 폭력, 살인 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을 생각해 보자. 그런 현상들의 진짜 원인인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에 대한 분석과 성찰 없이 마녀사냥식의 단속과 검열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의 폭력과 파괴의 시대를 환기하면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거론한 바 있으며, 그 자신이 수준급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2005년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진전이 열린 적이 있는데, 그 어떤 의미의 덧붙임으로 인한 ‘폭력’을 경계하려는 듯 관람객에게 “아무 생각 없이 보라.”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사진이 침묵을 통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고 그 어떤 의미나 개념을 덧씌우는 폭력에 저항하며 그런 저항 형태로서 이미지의 순수한 사건을 다시 찾아낸다고 역설했다. 디지털이나 합성 이미지가 아닌 사진은 가장 순수한 형태 속에서 이미지를 그 자체로서, 현실 세계와는 다른 환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미지의 폭력과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 모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지 왜곡의 원천을 찾고, 실재가 사라진 이미지를 어떻게 원래대로 돌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언어가 그것이 지칭하는 것보다 중요하고. 이미지가 그것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깨어 있지 않으면 언어는 가시성의 조작자, 즉 미디어에 불과하게 되고, 이미지는 그 독창성과 순수성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