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도서목록 | 보도자료 게시판 프린트 | 읽기도구 닫기

정치의 몰락


첨부파일


서지 정보

카피: 대한민국 모든 선거 뒤에는 그가 있었다 국내 최고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2012년 한국 정치를 컨설팅하다

부제: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

박성민, 강양구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2년 2월 1일

ISBN: 978-89-374-8437-7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변형 145x215 · 332쪽

가격: 14,000원

분야 논픽션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3월 23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6월 30일 | ISBN 978-89-374-8448-3 | 가격 9,800원


책소개

한국 정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최고의 전략가
박성민 대표가 말하는 ‘정치의 본질’
20∼30대가 다시 정치에 몰입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군림해 온 보수 우위 시대는 왜 막을 내리게 되었는가? 지금 대한민국을 ‘분노’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나꼼수’의 ‘막말’과 ‘셀러브리티’의 코멘트에 열광하는 20대, 그들이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보수 타도’와 ‘진보 박멸’을 외치며 여전히 이념 전쟁에 머무르고 있는 ‘촌스러운’ 기성 정치인들, 과연 보수를 타도하고 진보를 박멸할 수 있을까? 무상 급식 논쟁에 재정 논리로 답하는 게으른 보수, FTA 논쟁에 최루탄 던지는 진보, 이런 무책임한 정치에 20대에서 40대까지 모두가 등을 돌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낳은 안철수 현상은 과연 안철수 ‘시대’로 이어질까? 좌우를 막론하고 ‘강남 우파’와 ‘강남 좌파’에 열광하는 디지털 세대, 그들을 매혹하는 ‘쿨’한 ‘강남성(性)’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금의 반한나라당 연합은 과연 ‘진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을까? “촛불보다는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세다.” 근본적으로 지금의 여의도 시스템을 전복하지 않고는, 그 누가 리더가 되더라도 정치 개혁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국내 최고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가 말하는 한국 정치의 모든 것을 담았다.


목차

여는 글: 누가 정치를 죽였는가?
1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자판기 커피 세대 vs.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 / 25년마다 등장하는 젊은 세대 / 20, 30, 40대가 한 덩어리? / 40대의 진정성 / 반(反)한나라당은 ‘패션’ / ‘탐욕’에 대한 분노 / “옛것은 죽어 가고 있으나…”
2 보수의 일곱 기둥이 무너지다
권력 이동 / 대안 없는 게으른 보수 / 보수의 일곱 기둥 / 실존▶민주▶자유▶공화 / 안보·시장 보수 vs. 사회 진보의 등장 / 국민▶시민▶소비자
3 \\\\\\\\\\\\\\\\\\\\\\\\\\\\\\\’75퍼센트 민주주의\\\\\\\\\\\\\\\\\\\\\\\\\\\\\\\’를 향하여
보수 타도 vs. 진보 박멸 / 75퍼센트의 힘 / 결승전이 필요하다! / 75퍼센트 국회 / 결과에 의한 연대 / 진보당­민주당­공화당­자유당 / 선거는 많을수록 좋다!
4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시대’로 이어질까?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 / ‘安風’과 ‘昌風’ / 우리 시대의 교황 / 멋진 ‘강남성(性)’ / ‘인기인’과 ‘정치인’ / 안철수, ‘신보수’의 등장
5 지도자가 사라진 시대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의 교훈 / 지도자의 필수 조건 3가지 / 신념 윤리 vs. 책임 윤리 / 지도자의 자질 4가지 / 선대 정치인의 공과(功過) /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6 인턴들이 지배하는 나라
인턴 헌법 기관 / 능력 있는 40대 대통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전, 포르노, 정치 자금 / 차세대 지도자를 배출할 정당 / 선출 권력 vs. 비선출 권력
7 정당은 끝났다?
무당파 & 정치 혐오 / 조직의 위기 / 동지▶동업▶동거 / 무책임 정치 / 책임 정치의 조건1 “우군을 확인하라!” / 책임 정치의 조건2 “갈등을 두려워하지 마라!” / 책임 정치의 조건3 “담대한 제안을 하라!” / 새로운 정당
8 편 가르는 정치 vs. 편 들어주는 정치
두 개의 대한민국과 세 개의 국립묘지 / 화해의 정치 vs. 선동의 정치 / 민주주의와 그 적들 / 평면 싸움에서 3D 진보로 / 정치, 죽기로 결심하다?


편집자 리뷰

★ 흔들리는 보수, 권력 이동의 신호일까?

반세기 이상 군림하던 보수 권력에 균열이 일어났다. 시대정신이 변했고 대중의 정체성도 변했는데, 게으른 보수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 보수를 지탱하던 일곱 기둥이 무너지면서, 지금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전략적 대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1) 지식인: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지식 사회는 보수 학자들이 지배했다. 철학의 박종홍, 경제학의 남덕우, 사회학의 김경동 등이 보수의 담론을 주도했고, 그들의 제자들이 학계, 관계, 정계에 퍼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는 거의 다 진보 진영이 차지하고 있다. 지식 사회의 권력은 이미 보수에서 진보로 이동한 것이다. 2) 언론: 1990년대까지 보수 언론의 프로파간다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SNS 시대에 보수 일간지 같은 올드미디어의 영향력은 뚝 떨어졌다. 3) 기독교: 풀뿌리 수준에서 교회는 보수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둥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처럼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없고, 개신교 신자 수도 하락하는 등 교회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 4) 문화: 어느 사회나 문화는 진보적이기 마련인데, 김동리, 서정주, 이문열 등 한국사회는 문화에서조차 보수의 영향력이 더 컸다. 그러나 이제 문화가 진보로 넘어갔다는 것은 보수 입장에선 치명적인 타격이다. 5) 기업: 과거에 잘나가는 기업은 우리 국민의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대기업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삼성이 잘나가면 그만큼 중소기업도 잘나가고, 고용도 늘어야 하는데 이런 순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6) 권력 기관: 청와대, 국가정보원, 경찰, 국세청 등 각종 권력 기관들은 완력과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방부 불온도서 사건에서부터 샤넬 검사까지 검찰, 군대 등이 모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7) 정당: 과거에는 보수 정당이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집합소였다. 1960-1970년대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1980년대에는 검찰, 중앙정보부 등의 요직을 거친 인물들이, 1990년대에는 운동권 출신이 유입되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리더십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없다. 2000년대부터는 정치인 양성 메커니즘이 없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은 이러한 보수 권력의 균열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전에는 한국에서 보수 권력은 절대 강자였지만, 2002년부터는 자칫 권력을 잃을 수도 있는 정파의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보수는 여전히 우세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략과 정신력에서 진 것이다. 한편 2011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박원순, 안철수라는 정당 밖의 두 인물이 기성 정치권과 정치 지형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자판기 커피 세대’와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의 대결이었다.

이 책은 총선과 대선을 모두 치르는 2012년이 과연 보수 우위 시대가 끝나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탐색한다.
 

★ 세대교체, 한국 정치의 ‘새 시대’를 여는 기회일까?

20대를 ‘정치 혐오’ 세대라고 낙인찍었던 지식인들이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갑자기 20대를 ‘진보 세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혼란은 한국 정치의 개혁을 예고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현대사를 살펴보면 25년마다 20대가 역사의 중심 무대에 등장했다.

1) 1960년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 혁명에서 20대가 정치의 중요한 주체가 되었지만 이들은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결국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맞았다. 2) 1985년 총선의 신민당 돌풍에 20대가 선두에 포함되었다. 이때는 4·19 때와 달리 1970년대부터 축적된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었다. ‘군사 정권 타도’라는 전략적 목표와 ‘개헌’이라는 전술적 목표가 분명했다. 이들이 성취한 6공화국 헌법, 이른바 ‘87년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투표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비가역적인 제도’를 탄생시켰다. 3)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대거 등장한 20∼30대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이어졌고,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흥분은 4·19 세대처럼 혼란으로 끝날 “시대의 마지막 밤”이 될 것인가, ‘87년 체제’처럼 “새로운 시대의 전야”가 될 것인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네 번의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4·19 혁명은 5·16 군사 쿠데타를 막지 못했고, 1979년 10·26 이후에는 12·12 군사 쿠데타를 맞아 결국 1980년 ‘서울의 봄’은 5·18 ‘광주의 비극’으로 끝났다.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구제 개편, 대연정 등 구조의 틀을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오직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만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여야의 대타협으로 새로운 헌법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가역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의미한다. ‘87년 체제’ 이후로는 그 누구도 선거를 통하지 않고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즉 그 이전의 체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정치학자 애덤 쉐보르스키의 정의대로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 있는”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이행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혼란이 새 시대를 알리는 전주곡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비가역적인 체제 변화’를 이루어 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 ‘절학의 빈곤’을 겪고 있는 ‘게으른’ 보수

한국의 보수는 안보와 성장을 상징하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계기로 한국 사회는 “돈을 향한 무한 질주를 멈추고 삶과 사람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수직적 권위의 시대가 가고 수평적 연대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여전히 안보와 성장, 즉 북한과 돈 외에는 세상을 보는 다른 프레임을 갖추지 못했다. 보수는 ‘망국적 이념 전쟁’으로 치달을 게 아니라 대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이건희 손자’ 논리는 유치한 수준을 떠나 보수가 얼마나 게으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습니다. ‘철학의 빈곤’을 날것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우선순위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보수 진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진보 진영과 논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어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요. 돈이 충분하면 당연히 무상 급식을 하면 좋다. 하지만 한정된 돈을 갖고 나라 살림을 해야 하니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그 예산이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와 있는 사병들 월급을 40만 원으로 대폭 올려 주는 게 먼저다. 우리와 안보 상황과 경제 상황이 비슷한 이스라엘과 타이완도 그 정도는 준다. 젊은 사람을 나라가 데려왔으면 그 정도는 해 주는 게 국가의 도리 아니냐, 그게 무상 급식보다 먼저다……. 이렇게 맞불을 놓았다면 새로운 곳에서 전선이 마련되었을 텐데요.

이미 한국 사회의 의제는 ‘사회’와 ‘문화’로 넘어갔는데 보수는 여전히 모든 것을 ‘돈’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급식도 ‘재정’ 차원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20∼30대, 그리고 일부 40대는 부르주아의 야망과 성공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헤미안의 저항과 창조에 대한 열정을 동경하는 ‘보보스’의 특징을 띠고 있다. 경쟁과 성취에 집착하면서도 저항의 제스처를 자기 정체성의 필수 아이템으로 여기는 세대다. 경제적으로는 보수지만 문화적으로는 진보다. 이들에게 박정희 패러다임에 갇힌 구보수와 한나라당의 논리는 한마디로 ‘촌스러운’ 것이 되었다.
 

★ ‘75퍼센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장집 교수가 ‘갈등’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다면, 저는 갈등의 ‘해소’ 과정에 좀 더 주목해서 정치의 본질을 말하고 싶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선호하는 정치의 정의는 ‘어젠다(Agenda)를 넌어젠다(Non-Agenda)로 바꾸는 기술’이라는 것이에요.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어젠다가 탄생합니다. 그 어젠다를 정치인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넌어젠다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서 대중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가시거리’를 확보해 주는 기술이라는 거죠.

다수결 원칙, 즉 51퍼센트만 확보하면 모든 것을 다 장악하는 식은 정치보다는 시장, 엄밀히 말해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다. 기업에서는 51퍼센트의 주식을 가지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CEO 출신들이 정치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문화에 익숙해 있어서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바로 ‘정치’다. 다수와 소수의 이해관계는 대립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각각 대변하는 정치인이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미국처럼 승복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낮은 지지율은 정통성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가 힘들다.

‘87년 체제’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다섯 명의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대통령도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어요. 노태우 대통령은 36.6퍼센트, 김영삼 대통령은 42.0퍼센트, 김대중 대통령은 40.3퍼센트, 노무현 대통령은 48.9퍼센트, 이명박 대통령은 48.7퍼센트였어요. 이렇게 대통령의 정통성의 기반이 약하다 보니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등과의 차이가 고작 1.5퍼센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작 2.3퍼센트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승복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들에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너희 대통령’이지 ‘우리 대통령’이 아닙니다.

문제점을 알았다면 해결 방법을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시스템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 즉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 선진화란 법과 제도를 통해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모두가 수긍하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과반수가 지지하는 대통령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를 실시해야 한다.

1위를 한 후보가 50퍼센트를 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3, 4, 5위 후보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겠죠. 그들을 지지한 시민이 결선투표에서 자신을 찍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결과를 놓고 연정 제안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 정당 측에 노동부 장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당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고, 녹색당 측에 환경부 장관을 할당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진보 정당, 녹색당이 장관을 배출하고, 직접 권력에 참여해 본다면 다음 선거에서 그 정당의 존재감은 훨씬 더 또렷해질 거예요.

즉 ‘결과에 의한 연대’가 가능해진다. 지금처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불확실한 선거 결과를 미리 예상해서 ‘결과를 위한 연대’를 이끌어 내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각자가 최선을 다한 다음에 그 결과를 가지고 연대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것이 바로 결선투표제가 가져올 긍정적인 모습이다.

한편 우리 국회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만 너무 많이 대표되고(과잉 대표) 그 밖의 다른 많은 집단의 이해관계는 너무 적게 대표되는(과소 대표)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회의 결정에 상당수 시민이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한미 FTA는 이러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한미 FTA 및 4대강 사업의 찬반 여론은 대체로 40:60에 가깝다. 이럴 경우 반대 측은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측이 절박하기 때문에 목소리만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와 2008년 촛불집회 때의 여론 지형은 대체로 75:25였다. 1993년 긴급명령 형식으로 실시된 금융 실명제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파격적인 조치였지만 의외로 역풍은 미미했다. 당시 국민의 78.6퍼센트가 ‘찬성’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적어도 75퍼센트 이상이 동의해야 승복이 가능하다.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국회는 절대로 75퍼센트의 민의를 반영할 수 없다. 전 국민의 과반수가 자신의 대표를 국회의원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구조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75퍼센트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방법일 수 있지만, 선거제도는 현역 국회의원들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역구에 목을 매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찬성할 리 없다. 따라서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게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이다.

경기도 고양시를 예로 들어 봅시다. 현재 고양시는 총 네 개의 지역구에서 네 사람의 국회의원을 선출합니다. 그런데 이 고양시 지역구를 하나로 합친 다음에 세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거대 정당이 복수 공천을 할 수도 있지만 한나라당,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진보 정당이든 녹색당이든 소수 정당의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어요? 최소한 고양시에 사는 시민의 75퍼센트 정도는 자신이 찍은 사람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죠. 자신의 대표자가 국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어쨌든 유권자의 75퍼센트가 당선자에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당선자 득표율의 합이 75퍼센트, 낙선자 득표율의 합이 25퍼센트 정도가 되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복잡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조로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최소한 당이 네 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 맨 왼쪽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서민 자영업자를 비롯한 사회 약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진보당’이, 맨 오른쪽에는 시장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유당’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진보당 오른쪽에는 민주당, 자유당 왼쪽에는 공화당이 위치한다. 민주당은 특히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계승하는 당이 될 것이고, 공화당은 시장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국가의 개입을 적극 고려하는 보수주의자의 정당이 될 것이다. 이념과 이해관계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네 개 정당이 존재한다면, FTA의 경우 자유당, 공화당, 그리고 민주당까지도 찬성 입장에 설 수 있다. 반대로 무상 급식의 경우에는 진보당에서 발의하고 민주당, 공화당까지 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최소한 75퍼센트는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75퍼센트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시대’로 이어질까?

안철수 교수는 공공성과 소통이 결여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길항으로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안철수 교수가 진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이유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안 교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구보수에 대항하는 신보수에 더 가깝다. 이 시대 대중은 무엇보다도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사를 살핀다. 그런데 대중은 안철수 교수에게서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빌 게이츠와 혁신가로서의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부자 워런 버핏의 이미지를 모두 보고 있다.  
안철수 교수는 구보수에 대항하는 신보수이며, 진보-민주-공화-자유 스펙트럼에서 공화에 가깝다. 그런데 대중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할 대안을 안철수 교수에게서 찾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불만의 실체는 공공성 결여와 소통의 부재다. 안철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길항으로 존재한다. 대중이 안철수 교수를 반한나라당과 반보수로 인식하는 이유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것은 ‘성장’과 ‘안보’를 두 축으로 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권위주의는 시대착오다. 그들에게 박정희 패러다임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되었다. 안철수 현상은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열망의 산물이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예고하는 상징일 뿐,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 시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 안철수 현상을 얘기하는 이들은 바로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저자가 ‘75퍼센트 민주주의’가 등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의 틀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역전 불가능한 비가역적인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지도자라도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 “의도가 선하다고 저절로 선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새로운 체제는 선한 사람들의 선한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제도’를 통해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 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나?

지도자가 대중에게 평가받는 조건은 세 가지, 즉 이미지, 업적, 비전이다. 그중에서 짧은 시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이미지다. 그런 이미지는 브랜드, 스토리, 정체성으로 구성된다. 박근혜 의원은 아직 업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품격, 신뢰, 강단 등으로 지도자 이미지를 쌓았다. 안철수 교수는 ‘닮고 싶은’ 이미지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스토리’를 만들었다. 정치인을 포함한 대다수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시대에 ‘생각하는 대로 사는’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이미지만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젊은이를 ‘이끄는’ 멘토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의 이미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이미지만으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대중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지도자의 또 다른 조건인 ‘업적’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가 자나 깨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지도자들이다.

정치가는 또한 국민에게 꿈을 주는 존재다. 케네디와 오바마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다른 미래’를 감동적으로 호소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연설은 언제나 꿈으로 가득하다. “전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지도자의 요건 3요소 가운데 ‘비전’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정치인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합리적인 사람보다는 합목적적인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는 자들은 사적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이라고 보면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정치인은 선한 의도뿐만 아니라 선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정치인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질은 크게 네 가지, 즉 정치가, 사상가, 경영가, 운동가로서의 자질이 필요한데, 이중 한 가지는 확실히 갖추어야만 지도자가 될 수 있다.

1) 정치가는 ‘결단력’이 강력한 무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통해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2) 사상가는 ‘통찰력’이 뛰어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항상 대중의 기대를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했다. 독재에 맞서 ‘민주’를, 그리고 냉전에 맞서 ‘평화’를 내세운 것이다. 3) 경영가는 ‘추진력’이 힘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치 군대의 장군이나 기업의 CEO처럼 대한민국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었다. 4) 운동가에게는 ‘설득력’이 필요하다. 운동가의 자질을 갖춘 노무현 대통령이 ‘선동’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설득’하는 데는 미숙했다는 점이 아쉽다.  
정치인은 선대 정치인의 공(功)보다는 과(過)를 봐야 한다. 고 김근태 의원은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겠지만 늘 두 사람의 민주화 운동을 높이 평가했고, 그 공은 어떤 과로도 덮어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정치인이지만, 그들의 공을 칭찬하기보다는 과를 더 많이 비판하면서 ‘양 김’과 선을 그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미국은 애플의 스티븐 잡스와 겹칠 것이다. 지금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가 만들었다.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 지식인들이 어떤 수준의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수준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지도자의 수준이다.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처칠의 크기가 영국의 크기이며, 드골의 크기가 프랑스의 크기이다. 대한민국의 크기는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공화의 시대에 새로운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의 퇴장은 곧 새로운 시대의 예고이기도 하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대중은 비로소 조선 왕조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30년 후인 1949년 백범 김구가 타계했을 때 대중은 비로소 독립운동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30년 후인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독재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또 30년 후인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었을 때 대중은 ‘민주화’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2039년 또 한 명의 지도자를 눈물로 보내려면, 지금 공화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

 
★ ‘위대한 지도자’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공천 방식을 사람의 손에서 시스템으로 넘겨 제도화해야 한다. SNS를 포함해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선거 운동을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도덕 정치’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 정치자금을 과감하게 풀어서 비현실적인 정치 자금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오픈 프라이머리’든 다른 방식이든 간에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공천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과 후진의 차이는 ‘사람’에 의존하느냐 ‘제도’에 의존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한국 정치는 4년마다 당대 최고의 ‘개혁’ 인사로 ‘수혈’을 하지만, 4년만 지나면 그들이 다시 ‘개혁’ 대상이 된다. 그건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도덕군자가 아니라 파렴치한이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더라도 시스템대로만 움직이면 평균 이상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제도의 힘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평균 이상 되는 사람이라고 모아 놓아도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비현실적인 정치자금 제도 때문에 비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을 사법 처리할 수 있는 악순환의 구조가 생겼다. 미국의 경우 불법 정치자금이 큰 문제가 되자 정치자금을 누구나 합법적인 틀 내에서 투명하게 걷어서 투명하게 쓰기만 한다면 사실상 무한대로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은 정치자금을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정치자금에 족쇄를 채워 두면 돈 있는 사람만 정치를 하는 최악의 구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당은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지도자를 키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의 진보 정당은 아직도 반독재 혹은 반자본 운동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정당은 당내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좋은 정당이 되기 위해 발전시켜야 할 리더십과 권위 체계를 심각하게 약화시켜 왔다. 가능한 한 민주적 가치와 원리가 당내에서 발전해야겠지만 그것이 조직으로서의 정당 내지 리더십의 발전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물신화하는 일이다.

반대 운동은 기존의 단단한 권력을 (자크 데리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해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그런데 기존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권력을 ’구성‘하는 것이다.
   
★ 미래 사회, 정당은 살아남을 것인가?

디지털 혁명 이후 SNS 시대에 조직의 역량이 떨어지자 정당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이제 정당에서만 정치 지도자가 나오는 시대는 끝났다.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다수당의 다수파’로 당선됩니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수당의 소수파’로 당선되었고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수당의 다수파’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수당의 소수파’로 대통령이 됩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 안철수 교수는 정당의 도움 없이 그냥 ‘개인’인데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는 가장 먼저 없어질 것 중의 하나로 정당을 꼽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정치의 몰락’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1) 제1당인 한나라당과 제2당인 민주당 지지율의 합은 몇 년간 55∼65퍼센트 사이였다. 여기에 소수 정당 지지율까지 합하면 65∼75퍼센트에 이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긴 했지만 민주당 후보와의 경선을 치른 야권 후보로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일부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정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2)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하여 정당에 속한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의 합 역시 50퍼센트 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정당의 몰락’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3) 투표율 또한 상당히 높다. 서울 시장 보궐선거는 48.6퍼센트, 분당 보궐선거는 49.1퍼센트, 2010년 지방선거는 54.4퍼센트였다. 특히 그동안 투표에 소극적이었던 20∼30대의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면, ‘정치 혐오’는 한국 정치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당은 ‘당파성’을 같이하는 이념 조직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논할 때 당의 비전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지지자의 이해관계를 떠안을 자격이 있는지는 뒷전이다.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을 고려한다. 대통령에만 당선되면 당에 소속된 국회의원, 관료, 직원들은 정부 부처, 산하 기관 등의 장관, 차관, 기관장, 감사 등 수만 곳의 자리를 꿰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정당에는 ‘동지’는 없고 이권을 나누는 ‘동업’만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시민이 정당을 외면하는 중요한 이유다.

새로운 한국형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교회는 육아에서부터 장례까지 모든 집안의 대소사에 관여하며 대가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교인이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단지 신앙 때문만이 아니다. 시민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당비를 안 낼 이유가 없다. 정당도 시민을 상대로 법률 상담에서부터 문화 학교까지 재미, 정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생활 공동체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풀뿌리 구청장, 풀뿌리 국회의원도 나올 수 있다. 엥겔스가 강조했듯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혁명, 즉 비가역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한국 정당이 세계사, 그리고 한국사 속에서 바로 이런 ‘희망의 불꽃’을 발견하고 새로운 한국형 정당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 두 개의 대한민국과 세 개의 국민묘지

‘이념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은 지금도 ‘오른쪽 대한민국’과 ‘왼쪽 대한민국’으로 나뉘어 ‘보수 타도’와 ‘진보 박멸’을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립묘지가 세 개나 있다. 현충원, 4․19민주묘지, 5․18민주묘지는 각각 보수, 중도, 진보를 대표하며 광기와 야만이 낳은 현대사의 상처를 담고 있다. 또한 ‘국민의례’는 하는 사람은 애국가를 부르고, ‘민중의례’를 하는 사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하지만 국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념 갈등에는 언제나 서민만 희생된다. 사실 대북 정책이나 복지 정책에 대해서 시민은 정치인, 지식인, 더 나아가 언론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고 유연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이 비판했듯이, 오히려 정치인과 지식인이 대중을 선동해서 개인의 사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우리는 세 가지 폭력을 목격했다. 첫째, 최루탄으로 대변되는 물리적 폭력, 둘째, 날치기로 상징되는 제도적 폭력, 그리고 셋째로 언어의 폭력이다. 정치인의 말은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 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폭력에 저항한 역사를 갖고 있다. 폭력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87년 체제’가 성공했던 것은 학생, 시민, 노동자가 들고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변화의 압력 속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타협을 했고, 그 결과물로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무기는 폭력보다 훨씬 더 힘이 센 ‘제도’이다. ‘75퍼센트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제도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정당의 몰락’과 ‘정치의 죽음’을 논하는 지금, 한국 정치는 지금이야말로 ‘정치의 힘’과 ‘정치의 가능성’을 믿고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 그런 변화는 외부에서 인기인을 모셔 오는 이벤트로는 불가능하다. 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2012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대타협을 통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결선투표, 중대선거구제 혹은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 개혁을 통해 75퍼센트 이상의 민의가 반영되는 ‘75퍼센트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작가 소개

--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정치 컨설턴트. 1991년부터 정치인들의 선거 캠페인과 정치적 진로를 자문하고 있다. 수많은 캠페인을 통해 한국 정치의 변화를 체험하면서 정치적 감각과 컨설팅의 노하우를 쌓았다. 정세를 읽는 능력과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해 주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와 함께 일한 정치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보여 주는 직관과 돌파력에 높은 평가를 보낸다. 정치인들이 그를 신뢰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들이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본령인 정치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현실을 고발한다.

"박성민"의 다른 책들

--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이 있다.

"강양구"의 다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