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밀란 쿤데라 전집 세계 최초 간행세르반테스, 발자크, 프루스트, 카프카의 뒤를 잇는 소설의 거장
원제 La lenteur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2년 1월 13일
ISBN: 978-89-374-8408-7
패키지: 양장 · 신국변형 132x225 · 180쪽
가격: 13,000원
분야 밀란 쿤데라 전집 8
▶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기다려 온 쿤데라 작품의 결정판
▶ 소설, 단편집, 희곡, 에세이, 쿤데라의 전 작품 15종 정식 계약 완역판
매 홀수 달마다 출간, 2013년 7월 완간
▶ 쿤데라와 마그리트, 두 거장의 특별한 만남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답고 품격 있는 문학 전집
느림 7
■ 호텔이 되어 버린 파리의 옛 성,
그곳에서 펼쳐지는 18세기의 사랑과 20세기의 결투
‘나’ 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호텔이 된 파리의 옛 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고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한 후 베라는 잠이 들고, ‘나’는 창가에 서서 이백여 년 전의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를 목격한다.
18세기 한적한 시골 성이었던 그곳에서 T 부인은 남편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정부인 후작 대신 한 젊은 기사를 식사에 초대한다. 남편은 뚱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둘만 남긴 채 자리를 뜬다. 이때부터 그들의 밤이 시작된다. 그들은 정원을 산책하고, 정자에서 사랑을 나누고, 이른 새벽, 헤어진다.
한편 20세기의 이 호텔에서는 지식인 베르크와 뱅상, 체코 학자 체호르집스키가 각자 자존심과 명예, 쾌락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 베르크, 뱅상, 그리고 체호르집스키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베르크. 자신의 이미지와 명성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에이즈 환자에게 키스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아프리카로 날아가 얼굴이 파리 떼로 뒤덮인, 죽어 가는 한 흑인 소녀 곁에서 사진을 찍고 시대의 위대한 어릿광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춤꾼들의 순교왕”이다. 어느 날 베르크는 호텔에서 열린 학술 모임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뱅상을 만난다.
뱅상. 그는 베르크를 “대중매체의 어릿광대, 엉터리 배우, 잘난 체하는 치, 춤꾼”이라 여겨 경멸한다. 뱅상은 감추어진 베르크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만 오히려 베르크에게 공격당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모임에서 만난 여자 쥘리와 정사를 나누려 한다.
그리고 체호르집스키. 호텔에서 열린 학술회에 참석한 이 육십 대 체코 학자는 거대한 유럽 국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조국 체코의 그림자를 어깨에 짊어진 채, 자신과 조국의 명예, 그리고 그의 “우울한 긍지”를 지키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어딘지 뒤틀린 채 방향을 잃은 이 등장인물들은 그날 밤 달빛 환한 수영장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고,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절정에 달한다.
■ ‘속도’라는 엑스터시에 취해 버린 현대인, 그리고 ‘느림’의 미학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성에서 하룻저녁 하룻밤을 묵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옛 성이었던 호텔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미친 듯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도로에서 맞닥뜨린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이들, 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속도는 사람을 시간으로부터 해방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해방한다. 하지만 쿤데라에게 있어 이는 ‘긍정적’ 해방이 아니다. 마치 약에 취한 듯, 망각과 부정으로 점철된 해방이다.
호텔에서 벌어진 20세기의 전투와 18세기의 사랑은 작품 속에서 기묘하게 맞물린다.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조우하는 등장인물들. 무의미한 싸움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느리지만 감미롭게, 절대 잊히지 않을 사랑을 나누는 이백여 년 전 연인들.
쿤데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두 사건을 통해 ‘속도’라는 엑스터시에 취한 채 과거도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헛된 현대인들의 삶을 한탄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 쿤데라와 마그리트, 두 거장의 만남—쿤데라 전집만의 아주 특별한 품격
쿤데라 전집의 모든 작품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작품이 쓰인다. 마그리트 재단은 도서 등에 대한 마그리트 작품의 2차 가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쿤데라 전집에 대한 사용을 특별히 허가해 주었다. 또한 쿤데라 역시 마그리트 작품이 사용된 자신의 전집 표지 시안을 보고 “이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답다.(they are great, they have ever been. We saw everything and everything is more that wonderful.)”라고 격찬했다.
마그리트 작품의 신비한 분위기,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그 속에 숨은 유머와 은유가 쿤데라의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제껏 한국 문학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답고 품격 있는 문학 전집이 탄생되었다.
이로써 독자들은 쿤데라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얻어 새롭게 태어나는 마그리트의 작품까지 함께 소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쿤데라 전집 08 『느림』의 표지 이미지는 마그리트의 「피레네 산맥 위의 성」이다. 쿤데라 작품 속 배경이 옛 성인 것, 그곳은 현실과 과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불분명한 초현실적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하늘에 묵직하게 떠 있는 바위의 모습에서 마치 시간이 ‘거의 멈춘 듯이’ 흘러가듯 느껴진다는 점 등을 볼 때, 이보다 더 『느림』에 잘 어울리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