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Le Comte de Monte-Cristo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2년 3월 25일
ISBN: 978-89-374-0388-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0x215 · 476쪽
가격: 16,000원
분야 외국문학 단행본
발행일 2013년 10월 25일 | ISBN 978-89-374-8832-0 | 가격 8,400원
뒤마 탄생 200주년 기념 완역 출간(전5권)
▶ 묘사의 집중포격과 탁월한 이야기 기술을 통해 한방에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 멋진 소설이다. – 움베르토 에코▶ 그는 <읽고자 하는 욕구>를 창조해 낸다. 사람의 영혼을 파고 들어가 거기에 씨를 뿌린다. 그곳에는 찬란한 빛과 정오의 태양 같은 밝음이 있다. – 빅토르 위고▶ 몬테크리스토, 감미로운 광기가 넘쳐흐른다.- 발자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다. – 마르케스
베르투치오오퇴유의 집복수피바다무제한 대출점박이 회색 말 관념론하이데 모렐 가족피라무스와 티스베독물학 로베르 르 디아블주식의 등락카발칸티 소령안드레아 카발칸티채마밭누아르티에 드 빌포르 씨유언신호기복숭아를 갉아먹는 들쥐로부터 정원사를 구해 내는 법유령만찬거지부부 싸움결혼 계획검사실
1802년에 태어난 알렉상드르 뒤마가 올해(2002년)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흔히 프랑스 문학사에서 뒤마는 위고와 비교되는데 위고와 같은 해에 태어난 것도 이 두 작가의 운명이라고 할 만하다. 그 동안 프랑스의 비평계에서는 위고를 위대한 작가로 치부한 반면 뒤마는 위고의 그늘에 가려져 ‘대중 작가’라는 멍에를 지고 있었다. 이제 뒤마 탄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는 뒤마 영화제와 심포지엄, 작품 낭독회, 뒤마 관련 미술 전시회, 서한집과 문집 발간, 학술대회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의 위인들 가운데 위인들만이 묻히는 영광을 누리는 팡테옹에 올해 가을에 이장될 계획이다.
대중문화의 천재, 알렉상드르 뒤마의 생애
뒤마는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82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초는 패기 넘치는 젊은 뒤마에게 작가로서의 장래를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828년에 화려한 문체로 프랑스 문예 부흥을 묘사한『앙리 3세와 그의 조정(Henri Ⅲ et sa cour)』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3일치라는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하고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씌어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었다. 1929년 이 작품의 공연은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마를 후원한 루이 필립은 매우 흡족해했으며 한때는 극단적인 왕당파였던 빅토르 위고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뒤마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뒤마는 위고, 비니Vigny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많은 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란》에 연재소설이 등장하였다. 뒤마는 연재소설에 매력을 느껴 차츰 극작품보다는 소설, 특히 역사소설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일만큼이나 삶의 자극에 탐닉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권태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연애, 음식, 잠, 쾌락, 여가, 운동 등 여러 방면의 자극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마는 여자, 오페라,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런 가운데 그의 대작들이 잉태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44년에 리슐리외 시대의 모험담인『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를, 이어서『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역되고 차용되고 표절되는 등, 한마디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 되었다.
『삼총사』와『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성공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당시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그의 사생활은 날로 황폐해 가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에 빠져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그는 발자크처럼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써내야 했고, 그 때문에 발자크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뒤마에게는 또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춘희(La Dame aux camelias)』(1848)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뒤마 2세이다. 이들 부자 작가는 각자 이름 뒤에 아버지와 아들을 표시한 필명을 쓰고 있다.
아버지 뒤마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 뒤마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유능한 작가가 되었지만, 작품의 경향은 전혀 다르다. 아버지의 무책임한 사랑 놀음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들 뒤마는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한 작품을 썼다. 아들 뒤마의 가장 재미있는 희곡으로는『사생아(Le Fils naturel)』(1858)와 자신의 아버지 성격을 나름대로 해석해 극화한『방탕한 아버지(Un Pere Prodigue)』(1859)가 있다.
뒤마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나오기까지
빅토르 위고의『레미제라블』이 그러하듯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 시대가 낳은 작품이다. 뒤마는 프랑수아 피코라는 실재 인물의 삶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파리 경찰 기록 보관소에서 그가 찾아낸 한 사건의 경위는 대략 다음과 같은 줄거리이다.
1807년, 프랑스 남부 출신의 피코라는 한 청년이 영국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카페를 경영하던 마티외 루피앙이 피코와 그의 약혼녀 마르가리타와의 사랑을 시기한 나머지 친구인 피코를 모함한 것이다. 그리하여 피코는 피에몬테에 연금되었다가, 프네스트렐의 한 성에 감금되었다. 거기서 피코는 어떤 이탈리아 사람을 섬겼는데, 그가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죽게 되자 피코에게 숨겨둔 보물을 일러주었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자유를 찾은 피코는 이름을 조제프 뤼셰르로 고치고, 보물을 찾은 후 파리로 돌아왔다. 마가리타는 이미 루피앙과 결혼한 뒤였다. 피코는 변장을 하고 체포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알뤼에게 접근하여 거액의 다이아몬드를 주면서 자신을 파멸시킨 사람들과 그 음모의 전말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적들을 하나씩 복수한다. 그러나 복수의 과정에서 그에게 음모의 전모를 알려준 알뤼와의 불화로 알뤼가 피코를 죽인다. 1818년, 알뤼가 임종시에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뒤마는 삼면 기사거리의 이 특이한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정치적 음모에 휘말린 한 청년의 사랑과 모험과 복수라는 대서사극을 탄생시켰다.. 그 극적인 탈바꿈이 독자들을 매혹시킨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들이 작용한 것이다.
1) 화려한 상상력 한 범죄 사건을 화려하게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배경을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음모와 사회적 혼란에 연루시켜 가능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대변혁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해방감만이 분출하고 있을 때 이 작품이 펼쳐내는 화려한 상상은 얼마나 멋진 자극인가!.이제 자유를 획득한 시민들의 상상은 날개를 활짝 펴고 새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날지 모를 모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행복하다. 이제까지 모르고 있던 보물이 새 세상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며, 과거에 자신을 억압했던 사람들, 서러움 받던 일들이 모두 사라질 뿐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행운의 여신만 만나는 날에는 예상 못하던 극적 인생이 펼쳐질지 누가 알랴.독자들의 상상은 부지불식간에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끝없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분명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에드몽 당테스는 독자들의 꿈을 대리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2)이국에의 동경뒤마는 소설의 첫무대를 파리가 아닌 마르세유로 옮겼다. 마르세유는 프랑스 남단의 항구 도시로서 지중해에 접해 있다. 소설은 지중해로 그 무대를 넓힌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이 파리에서 일어나긴 하지만(주인공의 외국 여행을 제외하면 39장부터 104장 사이의 배경은 파리다), 바다는 주인공의 삶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운명의 무대이다. 탈출과 자유가 모두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다는 가능성이며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이다. 그 바다를 무대로 뒤마는 지중해 연안 지방 출신의 인물들을 다수 등장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이국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이국 정취는 당시 프랑스 작가와 예술가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지중해는 유럽과 동양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다. 게다가 1821년 그리스에서는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혁명이 일어났고, 1830년에는 지중해 무역의 안정을 구실로 프랑스가 알제리의 땅에 들어서는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당시 지중해는 유럽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는 이처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동양과 이탈리아, 그밖에도 낯선 나라의 풍물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그것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동경과 하나의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매혹적인 그림이 된다.
3) 추리소설의 묘미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자신을 시기하는 친구들의 모함으로 무시무시한 지하 감옥에 갇힌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 그는 이곳에서 파리아 신부의 도움으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주인공은 신분을 감추고 마치 신의 대리인인 듯 자신의 적들에게 벌을 내린다. 여기서 뒤마의 독창성이 발휘되는 점은, 그가 몬테 크리스토를 단순히 사사롭게 복수하는 자로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악인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파헤친 과거의 또 다른 죄가 드러나면서 파멸하게 된다.
한편 몬테 크리스토는 진실을 밝힘으로서 악인을 벌하는 자, 즉 탐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수법은 현대적 탐정소설의 수법과 맥을 같이한다.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은 에드가 알렌 포의 작품(『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병 속에서 찾은 원고』,『황금벌레』)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이를테면 보물의 위치를 찾아내는 파리아 신부의 암호 해독방식이나 당테스의 분석 방법 등이 그러하다. 물론 파리아 신부는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분석력과 추리력에서 독자들은 명탐정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보물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 신부가 당테스를 통해 그 어마어마한 보물의 실체를 눈앞에 들이댔을 때 독자들의 놀라움과 쾌감은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
1829년 보물을 찾아낸 당테스는 자기 아버지와 메르세데스의 소식을 듣고, 모렐의 빚을 갚은 후에 다시 9년간 사라진다. 그후 새롭게 등장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의문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처음에 독자는 그가 ‘신드바드’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 당테스와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음울한 성격에 감정도 없어 보인다. 그는 친구 알베르와 프란츠를 잔인하게 겁주기를 즐기는가 하면 강도 루이지 밤파와도 친구이다. 이 유령 같은 인물은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바이런이나 돈 후안, 뱀파이어 같은 하나의 캐릭터로 투사되어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멋진 인물로 부각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 소설이 낭만주의적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새바람 속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꾸며진 줄거리, 이국적인 배경과 풍물, 신비스러운 오리엔트 문화, 다채롭고 잔인하고 퇴폐적인 서구 문명의 이면, 흥미진진한 추리 과정 등이 뒤마 자신의 오랜 여행 경험과 해박한 지식에 힘입어 독자들의 기대와 환상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한 마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 안에는 그 시대 독자들이 요구하던 낭만주의적 모든 특성이 집약되어 있다. 이처럼 뒤마는 대중적인 극장 문화, 역사, 현실성을 바탕으로 낭만주의적 이야기를 극적으로 구성해 냄으로써,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일반 독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현대의 문화 장르에 영향을 준,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원래 1844년 8월부터 1846년 1월까지 신문 《논단(Journal des Debats)》에 연재되었다. 이어서 열여덟 권 분량으로 출판된『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같은 해에 4쇄까지 인쇄되었으며, 많은 해적판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없이 재인쇄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1845년 《에인즈워스 매거진》에 연재되었고, 다음해에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덴마크에서는 1845년에, 스위스에서는 1846년에, 이탈리아에서는 1847년에, 스페인에서는 1858년에, 노르웨이에서는 1881년에, 그리고 독일에서는 1902년에 번역되었다. 또한 세계 여러 곳에서 연극과 텔레비전 드라마로는 물론이고, 축약본, 청소년용, 만화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영화로는 미국(1908, 1913, 1934, 1975, 2002)과 프랑스(1914, 1942, 1953, 1961)에서 제작되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그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많은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소개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 자체의 매력 때문이다. 배신, 억울한 감금, 그리고 복수라는 중심 테마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중간에 부차적인 줄거리가 생략되더라도 그 생명력이 꺾이지 않으며, 따라서 다양한 매체의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초월할 수 있다.
옮긴이 오증자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역서로는『고도를 기다리며』,『바다의 침묵』,『에밀』,『미라보 다리』,『위기의 여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