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2월 23일
ISBN: 978-89-374-6435-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16쪽
가격: 16,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35
분야 세계문학전집 435, 외국 문학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자 『제2의 성』으로 페미니즘을 혁신한 사상가
공쿠르상, 예루살렘상, 오스트리아 국가상 수상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체험한 계약 결혼과 실험적인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재의 불안을 탐구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20세기 프랑스 문학 중 가장 예리하고 심오한 성취 중 하나.” -《뉴욕 타임스》
“『초대받은 여자』는 전통적인 가족과 결혼 제도, 모성에 얽매여 있던 여성의 운명을 혁신한 작품이다.” -비올레트 르뒥(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을 읽는 일은 늘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비비언 고닉(비평가, 에세이스트)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 조지 엘리엇, 앨리스 워커, 엘렌 식수, 앤절라 데이비스와 시몬 베유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다.” -제이디 스미스(『하얀 이빨』, 『런던, NW』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과 작품은 결코 빛바래지 않는다.” -로런 엘킨(『도시를 걷는 여자들』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상황을 구현하고 한 개인을 창조해 내는, 진정한 소설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A. S. 바이엇(부커상 수상 작가)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해 내고자 하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시도에 항상 경외심과 영감을 느낀다.” -데버라 리비(『모든 것을 본 남자』, 『살림 비용』의 저자)
2권
2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그녀를 단죄하거나 그녀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행동은 오직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다. 지금 완성되어 가는 것은 바로 그녀의 의지였고, 더는 그 무엇도 그 의지를 그녀에게서 떼어 놓지 않을 터였다.” -본문에서
『제2의 성』을 발표하며 실존주의 철학과 페미니즘 사상에 현저한 영향을 끼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첫 장편 소설 『초대받은 여자』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1943년, 실존주의의 경전이자 20세기 최대의 철학적 성취로 평가받는 장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와 같은 해에 발표된 이 작품은 실험적인 계약 결혼, 사르트르와 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를 둘러싸고 빚어진 삼각관계를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 낸, 일종의 실화 소설(Roman à clef)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오직 실화(삼각연애의 진상)에 입각해서 『초대받은 여자』를 독해한다면 자칫 이 작품이 지닌 깊이를 간과할 수 있다. 보부아르 스스로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은 다양한 개별적 사례를 구현하는 등장인물의 힘을 빌려 실존에 대한 추상적 사유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빚어낸 ‘형이상학적 소설(roman métaphysique)’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초대받은 여자』의 세 주인공(프랑수아즈-보부아르, 피에르-사르트르, 그자비에르-올가 코사키에비치) 및 그들을 관찰하는 주변 인물들(피에르의 동생 엘리자베트, 프랑수아즈의 제자 제르베르)은 보편적 실존 상황을 대변하는 구체적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부아르는 과연 무엇을 논변하기 위해 이러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을까?
보부아르는 『초대받은 여자』를 시작하기에 앞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인용한 “모든 의식은 저마다 다른 의식의 죽음을 좇는다.”라는 문장을 굵게 새겨 두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부아르가 다종다양한 실존 상황 중 프랑수아즈의 사례를 통해 특히나 들려주고자 한 바는, 바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충돌과 갈등이다. 예컨대 프랑수아즈와 그자비에르 그리고 피에르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은 통속적인 치정 사건을 넘어, 별개의 자유로운 의식들이 주체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숨 막히는 존재론적 투쟁을 형상화한다. 기본적으로 (보부아르 자신을 반영한) 프랑수아즈는 유아론(唯我論)적 환상에 한껏 취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또 그녀는 자기 삶의 “모든 순간을 명료하고 세련되고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서 되돌려 주는”, 완전한 진실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존재로서 피에르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녀는 세상에 자신과 피에르 외에도 수많은 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데, 이는 곧 자기가 주인으로 군림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랑수아즈는 타인의 주체성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타인을 자기 세계에 속한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소유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프랑수아즈는 그자비에르를 처음 ‘초대했을’ 때,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만큼 프랑수아즈에게 격한 기쁨을 안겨 주는 경험은 없었다. 그자비에르는 무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정열에 들뜬 자신의 얼굴이 더욱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모른 채, 손에 든 커피 잔의 곡선을 손가락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의 곡선을 느낄 수 있 는 건 오직 프랑수아즈뿐이었다. 그자비에르의 몸짓, 표정, 심지어 그 애의 삶이 실재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필요했다.” -본문에서
하지만 ‘초대받은’ 그자비에르는 단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상태에 머물지 않고 프랑수아즈의 세계에 봉합할 수 없는 치명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프랑수아즈는 고집스레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자비에르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낯선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하게 구축한 또 다른 의식과 대면하거나 스스로가 다른 의식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 모두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느끼기 마련인 박탈감 혹은 소외감 말이다.
“그자비에르의 광적 향락과 증오, 질투를 통해서 죽음만큼이나 괴물 같고 치명적인 파렴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최후의 선고가 내려진 듯, 프랑수아즈의 눈앞에 그녀의 의지와 무관한 상태로 무엇인가가 실재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유롭고 절대적이며, 결코 꺾을 수 없는 낯선 의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죽음이자 총체적 부정이며, 영원한 부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충격적이리만큼 모순적이게도, 이 무의 구렁텅이는 스스로를 현존하게 할 수 있었고, 자신을 위해 자기를 충만하게 실재하도록 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
프랑수아즈를 뒤덮은 불안은 결국 ‘세계-내-존재(l’être-au-le monde)’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 존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대상화’ 경험이 야기하는 감정이다. 이는 곧 기만적 환상에 빠져 있던 한 인간이 애매성이라는 실존의 진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적 불안이다. 요컨대 프랑수아즈가 마주하는 그자비에르의 공포스러운 시선, 그 굳건한 현존은, 우리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타인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초대받은 여자』는 삼각관계라는 자극적인 외피를 뒤집어쓴 채 의식인 동시에 육체이고, 의식의 주체이며, 타인의 의식이 지향하는 대상이기도 한,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 치닫는 인간 존재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규명해 낸다. 보부아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같은 인간 존재의 ‘비결정성’을 ‘애매성(l’ambiguïté)’이라 칭했다. 또 주체로 존재하는 ‘나’를 객체로 탈바꿈시켜 주체와 객체, 둘 중 그 무엇에도 온전히 일치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하는 타인의 존재야말로 실존의 애매성을 야기하는 결정적 요인이자, 나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주된 방해물이라 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실존 조건은 필연적으로 나와 타인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도록 하므로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끔 우리를 이끈다. 바야흐로 보부아르는 (스스로 체험한) 『초대받은 여자』 속 프랑수아즈와 그자비에르 그리고 피에르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 줌으로써 자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실존의 애매성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독려하는 사상의 독창적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한다.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 윤리, 즉 “애매성의 윤리(une morale de l’ambiguïté)”는 바로 『초대받은 여자』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작품이 결코 시들지 않는 까닭은, 보부아르의 모든 맹아가 여전히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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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쟁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프랑스 파리, 희곡 작가 프랑수아즈는 명망 높은 연극배우 피에르와 동료보다 친밀하고 연인보다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스스로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프랑수아즈는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피에르와 함께 생활하며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사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목적의식도, 의욕도 없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불투명한 신비를 간직한 소녀, 그자비에르가 나타난다. 프랑수아즈는 무슨 일이든 자기 뜻대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무기력한 그자비에르에게 더 넓은 세상과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애쓴다. 그러나 프랑수아즈가 초대한 그자비에르는 그의 의도와 예상을 한참 뛰어넘으며, 차츰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결국 ‘고집스러운 의지’인 그자비에르가 프랑수아즈와 피에르의 사이를 더욱 깊게 파고들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뜻밖의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