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영이, 김영욱, 이지선, 박진영, 육주원, 오은정, 조원희, 지수, 이재임, 김호성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1월 19일
ISBN: 978-89-374-9165-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27x182 · 212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인문잡지 한편
분야 한편
집이란 먹고 자고 쉬는 곳이며 또한 끊임없이 돌보고 살림하는 곳이다. 평생의 목표, 자산 증식의 수단, 보금자리 또는 감옥인 각자의 집. ‘자기만의 방’ 속에서 편안함과 불안감, 욕망과 희망이 뒤섞인 채로 우리가 새롭게 알아갈 게 뭐가 있을까? 가장 가까운 내 몸의 감각에서 시작해 내 방, 우리 동네, 한국 사회, 이 지구, 우리 은하까지 돌아보고 나서 다른 존재가 되어 귀환하는 한편의 인문학.
13호를 펴내며 집 안팎을 흐르는 바람
영이 내 영역
김영욱 장자크 루소, 집 없는 아이
이지선 21세기 우주인의 귀향
박진영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
육주원 이슬람 사원 짓기
오은정 후쿠시마의 주민들
지수 집이 없어, 하지만!
조원희 전세 제도의 미래
이재임 쪽방의 장례식
김호성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
분투하는 워킹맘, 집 없는 아이들, 우주정거장의 미아,
바쁜 1인 가구, 무슬림 유학생, 후쿠시마의 주민들……
아주 사적이고 서로 너무나 다른 집 이야기에서
작지만 결정적인 공통분모를 찾기
“아주 사적인, 집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일들을 못 참고 터뜨리듯 말한다. 난 친구와 동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집 밖에 해도 될까?”
《한편》 13호 ‘집’은 엄마가 되면서부터 집의 의미가 완전히 뒤바뀐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집은 어떤 공간인가?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나? 너무나도 다른 서로의 경험은 연결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꺼내 놓을수록 다른 한쪽은 더욱 입을 다물게 될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연결을 위해 작은 공통분모를 찾는 데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낯설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기 위한 첫 번째 글은 나의 몸에서 시작한다. 작가 영이는 자신의 집을 ‘나’의 안전 영역으로 정의한다. 「내 영역」에서 밝히는 신체적 트랜지션의 경험은 안전 영역을 침범한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과 맞닿아 있음을 전한다. 한편 불문학자 김영욱은 「장자크 루소, 집 없는 아이」에서 루소의 부랑아 경험에 주목한다. 근대적 가족을 중심으로 한 집의 개념이 막 형성되던 17~18세기 프랑스에서 안정적인 집은 특권이었다. 그런데 철학자 루소에게 여러 집을 떠돌던 비참한 어린 시절은 그의 방대한 사유를 형성해 나가는 배경이 된다. 철학자 이지선의 「21세기 우주인의 귀향」은 집의 스케일을 우주적으로 키운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시작하는 이 글은 아이를 잃은 엄마가 저 먼 우주까지 도망쳤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업가 일론 머스크의 꿈처럼 우주는 도피처가 될 수 있을까? 찬찬한 철학의 답을 들어 보자.
이어지는 세 편은 집의 안팎을 이루는 이웃과 주변 환경을 살펴본다. 환경사회학자 박진영의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는 집 안팎을 움직이는 개인들에게 화학물질의 사용과 그 책임이 어떤 식으로 성립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간편한 생활화학제품으로 얼룩을 지우고 열심히 환기를 시키면 가장 깨끗한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사회학자 육주원은 「이슬람 사원 짓기」에서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주민’ 간 충돌을 지켜본 경험을 전한다. 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보다 동네에 더 오래 살았던 무슬림 유학생은 ‘국민’이라는 구분선 밖으로 밀리며 주민조차 아니게 된다. 인류학자 오은정의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난 생활을 하다다 고향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귀향을 선택한 사람과 원전 사고지 인근을 떠날 수 없는 사람. 바다 건너까지 움직이는 방사능의 존재는 견고하게 닫힌 집의 이미지를 풀어놓는다.
‘영끌’과 고독사의 시대 속에서
집을 둘러싼 지긋지긋한 추문 곁에서
자유롭고 안락한 삶을 그리려면
누구나 알듯 한국에서 집은 자산 증식 수단이다. ‘영끌’, ‘상급지·하급지’와 같은 부동산 신조어가 미디어를 떠도는 가운데, 경제학자 조원희는 한국에만 있다는 전세 제도의 특징을 설명한다. 「전세 제도의 미래」는 집값의 장기 우상향을 직접 겪은 베이비붐 세대로서 거시경제학적 관점을 통해 세대 간 연대를 위한 밑그림을 그린다. 이어 세입자들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기르는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가 지수는 소유가 아닌 점유의 권리를 역설한다. 「집이 없어, 하지만!」은 세입자로서 모욕인 줄도 모르고 받았던 모욕을 딛고,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을 생동하게 만드는 거주자로서 도시의 정치에 참여하자고 제안한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재임과 호스피스 병원의 의사 김호성은 서울 맞은편 쪽방 최대 밀집지 동자동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병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쪽방의 장례식」은 동자동 주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을 소유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집을 고치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전한다.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는 집에서 죽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를 지나 다수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지금,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묻는다. 무리를 지어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새들처럼, 가장 편안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기 위해 우리가 마련해야 할 준비물을 일러 주는 마지막 글이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3호 ‘집’에 적용된 글꼴은 우리들의 집인 지구에 닥친 기후변화를 녹아내리는 빙하로 표현한 기후위기체의 한글 버전이다. 미국 국립 빙설자료센터가 제공한 빙하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폰트에 위기의 집 이미지가 겹쳐 보인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 ‘플랫폼’, ‘우정’, ‘집’에 이어 2024년 5월 ‘쉼’을 주제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