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들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32 | 분야 세계문학전집 432, 외국 문학
독일 ‘질풍노도 운동’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 실러의 문제작 『도적들』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 후반 독일 문단을 휩쓴 ‘질풍노도 운동’은 이성 만능의 합리주의를 뒤엎고 억눌린 개인의 감정과 개성을 발산할 것을 역설했다. 실러는 괴테와 함께 이 ‘질풍노도 운동’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도적들』의 주인공 카를과 프란츠 형제의 반목과 도적 집단의 생생한 폭력 묘사를 통해 법과 자유의 관계를 탐구하는 한편 ‘정의로운 범죄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1782년 독일 만하임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객과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독일 ‘질풍노도 운동’은 무엇인가?
“극장은 마치 정신병원 같았다. 관객들은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뜨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흐느끼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여성 관객들은 마치 쓰러질 듯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모든 것이 혼돈처럼 녹아내렸고, 그 혼돈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다.”
실러의 첫 드라마 『도적들』이 1782년 1월 13일 만하임 국민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감격에 못 이겨 온통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일부 관객들은 작품의 윤리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작가를 감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편에서는 특히 대학생과 청년들이 『도적들』에 환호했다. 실러는 이 작품 속에 담긴 사회 비판적인 태도로 인해 구금과 집필 금지 명령을 받고 고향을 탈출해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실러의 희곡 『도적들』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질풍노도의 문학은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에 반항하면서 감정의 해방과 개성의 존중을 주장했다. 특히 1770년에서 1785년 사이 괴테와 실러를 비롯한 시민 계급 출신의 젊은 작가들은 사회적 관습과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천재성을 찬미했다.
한편 같은 독일 고전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괴테와 실러의 문학적 태도는 서로 차이가 있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대 문화에 눈을 뜬 반면, 실러는 역사와 칸트 철학에 천착했다. 살아생전에 괴테는 많은 명예와 부를 누렸지만, 실러는 그렇지 못했다. 또한 괴테가 사회의 인습과 이성의 질곡에 억눌린 개인적 감정의 자유로운 발산을 주장했다면, 실러는 정치적 억압과 폭정에 대항하여 반란과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도적들』의 중심 주제는 법과 자유의 관계이다.
■ 과연 ‘성스러운 도적’이 존재할 수 있는가?
“도둑의 죽음은 영웅의 죽음이 될 수 없다. 도둑에겐 사는 게 이득이고, 끔찍한 일은 그 다음이다. 도둑은 죽음 앞에서 벌벌 떨 권리가 있다.” —본문에서
18세기 중엽 독일, 모어 백작에게는 카를과 프란츠라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 카를은 총명하고 다재다능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반면 동생 프란츠는 음흉하고 독살스러운 성향으로 늘 아버지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다. 카를이 타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프란츠는 형의 편지를 날조하여 형이 폭행과 살인으로 범죄자가 되었다고 아버지에게 고한다. 그의 목표는 아버지를 죽이고 형의 권력과 연인 아말리아를 차지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답장을 기다리던 카를은 프란츠의 거짓 편지를 받고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오해한 채 친구들이 만든 도적단의 두목이 된다.
도적단을 이끄는 인물들은 지식인 프롤레타리아다. 이들은 사회에서 낙오된 정신적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롤러, 슈프테를레, 라츠만이 실제로 원하는 직업은 도적이 아니라 문필가나 목사, 의사이다. 중간에 도적단에 합류한 코진스키는 귀족의 후예로 자신의 약혼녀를 영주의 소실로 뺏긴 분노 때문에 도적의 길을 선택한다. 즉 이들은 지배 계층의 관습적이고 승인된 도둑질에 대항해 의로운 반역을 꿈꾼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이들의 이상과 꿈은 오히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도적들은 겉으로는 지배 계층의 횡포에 대항하여 자유를 위한 혁명을 하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실상은 대량학살과 방화를 서슴지 않고 여성과 어린아이 등 약자를 골라 괴롭히는 그야말로 ‘악인’으로 변한다. ‘숭고한 도적’을 지향하던 카를은 뒤늦게 도적단과 결별하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동료들에 대한 부채의식에 발목이 잡힌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도적단의 일부가 되었으며 자신 역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살인자임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 본문 중에서
“법은 지금껏 위대한 남자를 만들어 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자유는 거대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을 길러 낸다네. 그들은 폭군의 뱃가죽 속에 방책을 치고 앉아, 그의 위장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방귀 냄새에 옴짝달싹 못 하지.” (38쪽)
“내가 침착하라고 하지 않았나. 자유도 다스리는 자를 필요로 해. 로마와 스파르타도 우두머리가 없어서 망하고 말았던 거야.” (58쪽)
“내 영혼은 행위를 갈망하고, 내 숨결은 자유를 갈망한다. 살인자, 도적! 이 말과 함께 법은 내 발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내가 인간성에 호소했건만 사람들은 내게 그것을 숨기고 모른 척했다. 그러니 내게서 동정심이나 인정 따윈 기대하지 말라! 내겐 이제 더 이상 아버지도 없고, 더 이상 사랑도 없다. 피와 죽음이 예전에 내게 그나마 소중했던 것을 잊도록 가르칠 것이다!” (62쪽)
“만약 자네들이 승리를 거둔다 해도 자네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치욕과 저주와 박해뿐일 것이네. 자네들은 사실상 저주받은 몸이나 다름없는데 하늘과 화해시켜 준다고 하지 않는가. 자네들 중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녀석은 하나도 없어. 뭘 더 생각하는가? 뭘 더 망설이는가?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신부님, 저들을 좀 도와주시오! (144쪽)
“자네들은 무도한 도둑일 뿐이야! 형리의 손에 들린 비루한 올가미처럼 보다 원대한 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가련한 도구일 뿐이다! 도둑의 죽음은 영웅의 죽음이 될 수 없다.” (145쪽)
“저런 파렴치한 말을 내뱉는 야비한 혀에 왜 벼락이 내려치지 않는 걸까! 내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한 당신을 지아비라 불러야 하다니요! 당신은…….” (154쪽)
“그 말 잘했네.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면 더욱 잘한 일이네! 이보게…… 나는 숱한 사람들을 보았네. 그들의 사소한 걱정과 웅대한 구상을 보았네. 그들의 신적인 계획과 옹졸한 행위, 행복을 좇는 기이한 경쟁을 보았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탄 말이 잘 뛸 것을 믿고, 다른 사람은 당나귀의 코를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두 발을 믿는다네. 삶의 이 같은 다채로운 복권에 당첨되려 자신의 결백함과 자신의 천국을 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결과는 모두 꽝이네. 아무도 당첨되지 않는 거지.” (164쪽)
“뛰어들기 전에 나락의 깊이를 먼저 따져 보게! 자네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기쁨이라도 낚아채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자네가 눈을 뜰 순간이 올지도 모르는데, 그때가 너무 늦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 여기에 있다간, 말하자면 인간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어 좀 더 고상한 인간이 되든가, 아니면 사탄이 될 수밖에 없는 걸세.”(171쪽)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 모습이 마치 자유의 꿈을 잃고 절그럭거리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 꼴이 아닌가? 아니, 차라리 나의 비참한 생활로 되돌아가련다! 죄수는 그동안 불빛을 잊고 살았지만, 자유에 대한 꿈이 밤하늘을 더욱 어둡게 하는 한밤중의 번갯불처럼 그의 머리 위를 스쳐 가는구나. 잘 있거라, 고향의 골짜기들아! 너희들이 옛날에 본 소년 카를은 행복한 소년이었지. 그런데 지금 너희들이 보는 남자는 절망에 빠져 있다.” (181쪽)
등장인물 9
1막 11
2막 75
3막 149
4막 177
5막 241
작품 해설 287
작가 연보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