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자와 가둔 자, 저주와 축복을 뒤바꾸는 전복의 시
전통, 지식, 진리의 언어들을 점유해 나를 말하기
금칙의 원리를 뒤집어 내게 향해 있던 총구를 돌리기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이질적인 언어들을 풍성하게 불러내 과감하게 한 폭에 담아내는 언어적 배짱이 있다.”─허연(시인)
★★“흘러넘치는 활화산 같은 언어가 페이지를 뒤덮는다.”─이수명(시인·문학평론가)
★★“확산적이지만 틀림없이 중심을 보유한 묶음. 그것으로 자신만의 시론을 지시한다.” ─조강석(문학평론가)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한 올해 김수영 문학상 투고작 가운데서도 박참새의 『정신머리』는 활화산처럼 들끓는 에너지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한 과감한 발상과 파격적인 형식들, 다채로운 화자가 빚어내는 매력은 압도적인 장점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 너머에 있었다. 바로 우회나 주저함 없이 끝까지 시적 주제를 파고드는 정통적인 힘, 낱낱의 파격을 강하게 붙들어 중심을 잡는 고유한 “자신만의 시론”이었다.
“너는 너만의 말로 지은 집에서 홀로 살 것이다.”(「건축」) 축복이자 저주인 이 말로부터 박참새의 ‘나’가 태어난다. ‘나’는 집, 강의실, 병원, 교회를 종회무진 누비며, 보이고 들리는 대로 잡아챈 말과 글과 이미지를 뒤집고 쪼개고 접붙이며 거침없이 시를 쓴다. ‘나’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전통, 지식, 진리의 언어들을 점유해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호소하고 협박한다. 금칙의 원리를 뒤집어 자신을 향해 있던 총구를 돌린다. 이제 저주를 받은 쪽도, ‘말의 집’에 갇힌 쪽도 ‘나’가 아니다. ‘나’는 저주를 벗어난 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 축복을 내린 자, 진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선언하는 자가 된다.
박참새 시인은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는 ‘상속자’이자 그에 맞서는 ‘챌린저’로서 우리 앞에 선다. 누가 시를 왜 쓰냐고 물어보면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겠다는 박참새 시인의 수상 소감처럼, 시인은 유산을 상속받는 동시에 그에 들러붙은 규칙과 규율을 모조리 폐기하고 오롯이 ‘제 것’으로 삼는다. 있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 올린 다음 다시 무너뜨리며 이 상속과 폐기를 영원히 반복한다. 이를 통해 박참새 시인은 과거를 답습하는 대신 오류를 남발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하는 대신 영원히 들러붙어 싸우는 방식으로 과거를, 우리가 사랑하는 죽은 것들을 되살려낸다. 수많은 사람들, 책들, 한때 믿음으로 충만했으나 텅 비어 버린 기도들을.
■ 자연사를 거부하는 시
너는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집을 짓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유일한 재료이자 소재인 것으로.
― 「건축」에서
『정신머리』를 여는 ‘0’부는 수상한 죽음에서 기묘한 탄생으로 이어지는 단 세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첫 시 「수지」는 ‘수지’라는 여성의 죽음을 다룬다. 이 시의 화자는 수지를 키운 양육자로, 세상의 모든 불합리와 폭력으로부터 수지를 보호하기 위해 23년간 매달 육백만 원의 연금보험료를 지불하며 “노력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을 마련해 주었다. 이로부터 수지는 살해, 강간, 취업난, 왕따, 성희롱, 결혼, 연애가 모두 사라진 “티 하나 없이 생활 기스 하나 없이 깨끗”한 삶을 얻지만, 중년이 된 어느 날 자신이 “수지로 태어난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말하며 조력사로 사망하기를 택한다. 한편 ‘0’부 마지막 시 「건축」에서는 ‘너’의 탄생을 그린다. ‘너’는 “네가 가진 유일한 재료이자 소재”인 “말”로 집을 짓게 될 것이라는 예언 속에 태어난다. 네가 살아갈 ‘말의 집’은 “연결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면서 단절을 초래하는” ‘말의 감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너’의 소명은 매일매일 집을 보수하고 새로 짓는 일이다.
‘수지’의 죽음과 ‘너’의 탄생은 앞으로 시인이 『정신머리』를 통해 보여 줄 모든 사건을 예고한다. 가장 인위적인 죽음이 된 ‘자연사’와 돌발적이고 우연한 ‘조력사’의 발견은 『정신머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의 진위와 맥락을 의심하게 만든다. 믿는 동시에 의심하고, 끌어안는 동시에 밀어내게 된다. 시인은 집이자 감옥이 되어 버린 이 세상을 영원히 함께 배회해 보자고 말한다. 저주하면서, 그러나 꿈꾸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 디펜딩 챔피언에 맞서는 챌린저
이것을 다 묶는 의식이 있으면 좋아요 이를테면 사상 같은
― 「이렇게 쓰세요」에서
박참새의 화자는 부모, 선생님, 의사, 신부님을 수시로 마주한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빼앗겨 본 적 없는 이들은 하나 같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화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박참새의 화자는 마음을 절박하게 고백하고 호소하며 “어딜 가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다가도, 한순간 차갑게 돌변해 “선생님도 모르겠죠/ 표정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창작 수업」)라고 비아냥거리며 공격한다. 깊은 사랑과 끈질긴 집착을 넘나들며 박참새의 화자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디펜딩 챔피언’들이 감춘 진실이다. 이들의 말은 텅 비었다. 이들의 언어는 “진리를 덮기 위한 진리”(「청강」)로 남은 지 오래되어 이제 ‘아무도 보지 않는 표지판’ 같다. 그러나 박참새는 그 표지판 앞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악취”(「커피하우스 가는 길」)를 따라 근원을 찾는다. 죽어 버린 말들을 제 것으로 삼아 시를 쓴다. 강의실에서 배운 “금칙 같은 것들”(「창작 수업」)은 폐기하기로 한다. “감상이 지나치고 질척”대는 ‘구린’ 말을 그냥 쓴다. ‘구린 것’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텅 빈 언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의미 부여도 하지 못하는 채로 쓰기만 하는 일종의 ‘관성’이자 ‘회피’이므로.
■ 본능적인 난해함을 믿기
내가 나의 아군이라면
나 자신을 원하겠지
― 「Defense」에서
박참새는 의미가 텅 빈 말을 다른 언어로 부러 채워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시에 불쑥 끼어드는 수많은 인용, ‘글’로 읽히기보다 ‘텍스트 형태의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문장들은 우리가 익숙한 방식대로 읽기를 멈추고 『정신머리』의 방식대로 뒤바꿔 읽기를 유도하는 박참새의 시도들이다. 그 외에도 『정신머리』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들이 넘쳐난다. 뉴스 링크, 전시 도록, 논문, 인용문 출처처럼 무엇보다 진실로 믿어지는 형식 속에 가짜들이 숨겨져 있다. 챗GPT가 “번역 작업을 수영처럼 부드럽고 자유롭게 수행한다는 의미”(「Defense」)를 담아 지어 준 번역가 이름 ‘이수영’처럼, 박참새의 시에서는 ‘가짜’야말로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 “나의 아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신머리』에서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의 완벽한 혼재이다. 박참새는 사실의 진위 따위는 묻거나 따지지 말고, 난삽하고 복잡하게, 다각도로 의심하며 이 시집을 읽으라고 권한다. 기어코 이 시집을 집어 든 “당신의 본능적인 난해함”만을 믿으면서. 박참새가 그를 둘러싼 세계에 그러했듯,이 시집을 읽는 당신 또한 샅샅이 파헤치고 낱낱이 쪼개며 자유롭게 오독해 보라고.
■ 본문에서
우리는 환상의 팀이었어 자기가 벌고 나는 벌리고 자기가 계산하고 나는 계획하고 자기가 협박하는 동안 나는 달랬지. 우리의 수지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돈으로 가난을 미리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야 티 하나 없이 생활 기스 하나 없이 깨끗한 우리의 수지를 봐, 수지는 정말 행복했을 거야 이 시대 최고의 행운아였을 거야
― 「수지」에서
카프카 그립다
사실은 낮잠을 자니까
밤잠을 설치는 거였는데
그 시간을 유의미한 불면으로
착각하며
시간으로 침몰하면서
말도 안 듣고
편지만 쓰던 걔가
그립다
― 「잠은 적 잠 나의 적 착란」에서
대비하십시오
말들이 현재를 살생할 수 없도록
그것이 직업이 되지 않도록
굶지 말고
손쓰며 막으십시오
― 「우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야지」에서
우리 함께 읽은 것들 읽고 말한 것들 읽고 말하고 쓴 것들 읽고 말하고 쓴 다음에도 또 쓴 것들 모조리 죄다 전부 다 내게 남기고 가. 나가서 돌아오지 말고 돌아서 보지 말고 더 멀리 나가서 진짜를 애쓰지 마. 그만큼의 악의가 언제나 널 뒤쫓을 거야.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줘. 나만 한 스승 없었다고 해 줘. 그런 풍광 만들어 줘. 배경 없는 그것은 모두 물건에 불과하다.
― 「마지막 수업」에서
미친 듯이 활자가 쏟아져 나올 때는 정말…… 내가 이 순간을 위해 나머지의 삶을 견딘 것만 같았고
보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한 것만 같았지.
아마 나는 그때 이미 알았던 것 같아.
내 정신의 살결이 모두 모였다.
그때부터 난 다음 생이었던 거야.
― 「T.H.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와서는 오만가지 돌을 내게 다 던지고 갔지. 그렇게 가라앉은 돌들이 나의 지층을 이루었지. 울퉁불퉁했지. 맨발로 걷기엔 아팠지. 그래서 정말 나에게로 들어오진 않았지. 나에게도 던져 버리고 싶은 몸과 미쳐 버리게 될 영혼이 있는데 어쩌지를 못했지. 나를 위한 폐기장은 없었지.
― 「펜시브」에서
그날이 내 기일인 것을 너 알고 있었을까. 나는 죽어 있다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요즘의 나는 죽다가 살아나기를 반복이다. 반복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소멸이니 나는 언제나 활자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지. 말을 긁어내며 살아야 하는 삶인데도 말이다.
― 「국어의 신」에서
사랑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지 호칭 않고 호명하는 것이지
내 이름 아는 당신들 나만 보던 너
내 글 읽고 울지도 아프지도 말아요
사랑은
거리를 무시하는 일이지
곳곳에서 솟아나는 마음 마르지 않게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지
나만 보던 눈 당신들 읽고 나는 조금 울게요
― 「사랑의 신」에서
■ 추천의 말
“이질적인 언어들을 풍성하게 불러내 과감하게 한 폭에 담아내는 언어적 배짱이 있다.”
─허연(시인)
“흘러넘치는 활화산 같은 언어가 페이지를 뒤덮는다.”
─이수명(시인·문학평론가)
“확산적이지만 틀림없이 중심을 보유한 묶음. 그것으로 자신만의 시론을 지시한다.”
─조강석(문학평론가)
끊임없이 짜깁기되는 박참새의 ‘나’는 그 자신이 바로 말들의 경합 장소로서 출몰한다. 자신의 돌출을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만드는 모든 보편적 금칙 자체를 우리가 다루어야 할 논쟁의 주제이자 대상으로 만든다. 박참새가 활보하는 고백으로부터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가 누비는 진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Sick House Syndrome’을 “새로움의 기표”이자 “변화의 예측”(「새집증후군」)으로 읽어 내라는 것. 이는 우리의 말, 우리의 토대를 함께 뒤흔들고 ‘나’ 자신의 장소를 바로 이곳에서 끝없이 구성해 내라는 종용이자 명령이다.
―최가은(문학평론가) | 작품 해설에서
0
수지 11
양육 15
건축 17
1
커피하우스 가는 길 23
무해한그릇 — 물 마시는 시 25
얼음, 에덴 29
말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벌이 있는 것일까 33
Defense 39
2
잠은 적 잠 나의 적 착란 50
젊고 우울한 시 53
청강 56
우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야지 61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65
정신머리 71
새집증후군 75
울음 찾는 자 79
마지막 수업 85
T.H.에게 남기는 편지 88
3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4년뿐이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인간이성애 95
새시대 97
이야기서점이야기 101
창작수업 104
소설 「모두가 죽지 않는다」를 위한 초기 구상 108
내가 무너질 날 111
편지 생일 117
언니나무 120
인간나무 124
이파리의 기분 — 나무는 왜 이렇게 무책임한 거야?”에 대한 항변(118쪽 참조) 126
4
멋쟁이 토마토 A 씨의 치료 일지 131
태초에 집이 있었다 137
이렇게 쓰세요 140
지나친 다정함의 고통 142
전부 144
법칙성 145
자기만의…… 침대 147
알아 두면 좋을 서로에 관한 열 가지 진실 149
심장이 천천히 쌓이는 눈에게 150
5
국어 155
연극 「올드 러브」를 위한……미완성 구상 156
유랑의 인내심 161
손과 날과 말과 칼 163
패인 165
환생 168
유감 172
유머와 센스 174
시인의 말이라는 말은 참 웃긴 말이다 177
시인의 말 181
리퀴드 에러 183
리퀴드 메모리 186
6
펜시브 193
예쁜 얼굴
불편한 마음 197
국어의 신 — i에게 201
수면의 신 — 모래인간에게 203
사랑의 신 — 등장인물에게 205
작품 해설–최가은(문학평론가)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