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지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12월 8일
ISBN: 978-89-374-0938-7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224쪽
가격: 12,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318
분야 민음의 시 318
시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 동안 마주치는
순간 이전의 순간, 자유 이전의 자유
I. pílĕus
셰익스피어 발레 작품에서 마음이 녹아내릴 때
생강이 된다는 것 13
운명과 자두와 힘 14
스무디와 희생을 생각하는 몇 가지 26
모처럼, 그래 28
아기 미소, 아기 자유 30
그런 건 그냥 슈만의 것이라고 34
음악 없는 마음 35
갤러리에서 작별 38
태어나는 물 39
눈·코·입이 없는 저녁에 40
II. fidámen
모과나무야, 너의 뼈를 믿어
이어지는 세대들 45
내일은 포근한 절망으로 47
고요한 쿠키 48
기타시외 5823 50
기타시외 5462 52
기타시외 5760 54
기타시외 5548 55
노래하는 페이지 56
모순책 58
세상을 바라보는 갈색 키위의 균형 59
미래가 끝난 다음에도 60
호박과 호박의 피와 호박의 시간 62
파란 밤 64
책과 마법 66
III. jŭbar
별과 체리와 빛
이미지와 나 77
조약돌 소극장 78
휠과 철 96
스피커 시대의 곡 선정 타임 97
존재성 가득한 베이비 목장에서 98
투영하는 물질들 100
잠자리를 타고 날아가면서 107
까마귀라는 언어 108
떠도는 불 113
표현과 맹세 117
오버뷰 125
IV. virídia
초록집 두 개, 시냇물 하나
작은 오리와 작가 129
상계동 135
언제부터 대파에게 음악을 가르쳐 줄까 136
에칭프레스 140
기타시외 5501 144
기타시외 5507 145
기타시외 5529 146
양탄자 147
넓고 가득한 그것 148
수첩보다 작은 방 154
V. moméntum
나의 수평선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과 극시 159
작품 해설-양순모(문학평론가) 189
희곡과 시를 오가며 시의 지평을 넓혀 온 이지아 시인의 신작 시집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가 민음의 시 318번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제4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시적 영토의 고유함을 증명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지아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가 자서에서 밝히듯 “BC 390년에서부터 날아온 시의 구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는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에 맞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의 시원을 좇는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는 시인이 시를 쓰고 있는 현재와 시가 탄생한 기원전의 어느 때라는 긴 시간이 시편마다 함께 녹아든 독특한 시간성 위에 서 있다.
일상의 무게로 점철된 삶에 찾아와 준 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오직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기원부터 좇는 시인의 태도에는 경외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삶을 이루는 소중한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게 일상에 잠식되어 간다. 이지아의 시는 지독한 일상의 무게를 떨치고 시를 마주한다. 그때 비로소 찾아오는 기이한 자유가 있다. 어쩌면 자유 이전의 무엇일지 모르는 자유가.
■ 거꾸로 걷기
텍스트,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
내 식탁 위의 바게트, 바게트 연구, 왜 오늘의 아침 식사는 나무보다 바게트에 더 관심이 가는지
행여, 텍스트의 구조와 뼈대, 얼마든지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무질서,
공포,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과 극시」에서
모든 예술은 형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텍스트가 시가 될 수 있을지라도 시라는 형식에 대한 거대한 합의 없이 시가 완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손에 쥐어진 모든 시편들은 형식에 대한 인식과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쓰였다. 형식은 이지아 시인에게도 오랜 화두였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에는 “서사시의 형식으로”, 혹은 “극시의 형식으로”라는 부제를 단 장시들이 등장한다. 언뜻 ‘나의 시’를 위한 최적의 형식은 무엇일까라는, 예술가들의 오랜 고민을 반복하는 듯 보이는 그의 시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방향성이 정반대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지아는 형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시를 완성하고자 하기보다는 형식 그 자체를 탐구하기 위해 거꾸로 길을 걷는다. “식탁 위의 바게트”에 대해 쓰기보다는 “왜 오늘의 아침 식사는 나무보다 바게트에 더 관심이 가는지” 그 근원을 향하는 시. 불확실로 점철된 이 여정은 때때로 “무질서”와 “공포”에 휩싸이지만 시인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 차창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풍경들처럼
그렇다면 누가 이걸 다 정해 놨을까
마음대로를 산소라고 배웠지
커 가는 내내
도저히, 안되는 건 멈춰야 한다고
하지만 다시는 갖지 못할, 나는 요컨대 자유 이전의 그것을 알아
―「아기 미소, 아기 자유」에서
시적 여정은 끝날 기미가 없다. 목적지가 너무 멀리 있어서라기보다는 목적지에 다름 아닌 “다시는 갖지 못할” “요컨대 자유 이전의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는 여행이 무한히 이어질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고 출발한 여행자 특유의 단호함과 여유를 등에 업은 채 수많은 장면들을 보여 준다.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전환, 변환”되는(문학평론가 양순모) 이미지들은 개체가 아닌 연속성에 그 의미가 있다. 이지아의 시는 차창 밖으로 수많은 풍경들이 쏟아져 내리는 기차를 탄 것처럼 질주한다. 우리는 승객이 되어 하나의 장면과도 같은 시편들을 연쇄적으로 읽어 내며 그의 시가 새롭게 정의한 시간성의 의미를 가늠해 본다. 끝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아닌, 무한히 이어지는 여정 동안 마주치는 장면들을 만나기 위한 시, 그리고 시의 시간. 낯설고도 친근한 아기 늑대와 동행하며 시의 시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해 보자. 뜻밖의 장면들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본문에서
아니야, 밥을 먹으면서 커피를 생각해, 잠을 자면서 일을 생각해,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러 가지
다시 말해서 나의 현대성은 픽션의 픽션을 만드는 일인지도 몰라, 다른 형식의 체계를 가져오지 않고도 타당한 주체를 계속 생산하면서
반복과 더 비슷한 반복의 시간이 필요했어
―「모처럼, 그래」에서
문을 열고,
사람이 사람을 들고 온다. 욕조에 넣자, 죽은 사람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물이 넘친다. 멈추지 못할 것이다.
반대의 현상들은 서로의 구조가 되어 가는 중.
그렇지만 나는 바람이 스산한 날에 비누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더 지켜봐야 하기에, 거울은 멸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갈색 키위의 균형」에서
이제부터 이 구역의 개념을 바로 잡고자 하여
잘하면 나는 거, 높이 나는 거, 그런 걸 보여 줄게
아직도 울고 있는
어린 편견과 상실에게 포클레인 열여덟 조각을 선물해 주고 싶어
다 맞추면 모래 놀이 하고 있으렴
―「까마귀라는 언어」에서
■ 추천의 말
인간의 자유를 넘어선 자유, 자유 이전의 자유. 인간의 자유가 하나의 목표이고 그렇기에 자꾸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이 된다면, ‘순간 이전’ ‘자유 이전’을 생각하며 시인은 순간과 자유를, 그토록 인간적인 그것들을 기어이 부수고자 한다.
─양순모(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