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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첨부파일


서지 정보

정한용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1년 8월 5일

ISBN: 978-89-374-0793-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52쪽

가격: 8,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76

분야 민음의 시 176


책소개


“우리는 아직도 여기 있다”잊히지 않는 폭력의 기억, 울부짖는 유령들의 목소리전쟁과 학살, 인류의 괴로운 진실에 렌즈를 들이대다

『유령들』은 돌연 카메라를 우리에게 들이대고 묻는다. 이 무자비하고 또 일상적인 폭력 앞에서 왜 분노하지 않는가. 대체 어인 이유로 절망하지 않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저 폭력이 과연 우리의 외부인가. 저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연 타자인가. ―이문재(시인)
정한용의 시 언어는 참사를 당했던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목소리로 그 시간들을 다시 보여 준다. ―이원(시인)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활발한 행보를 보여 온 정한용의 다섯 번째 시집 『유령들』이 민음의 시 176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쟁과 테러, 노예 사냥, 인종·민족 차별, 정치적·종교적 분쟁에 뒤따랐던 제노사이드를 낱낱이 드러낸 르포 시집이다.
  정한용은 난징 대학살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5·18 광주와 아프간 전쟁 등 지구 곳곳에서 목격된 문명의 잔인한 현장을 이 시집에 집결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폭력의 고발로 이보다 더 적나라한 시를 본 적이 없다.”라고 평했을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시편들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더욱 섬뜩하다. 때로는 피해자의 목소리로, 때로는 가해자의 목소리로, 때로는 감정을 일체 배제한 객관적 사실의 나열로 재현된 장면들은 이 몸서리치는 폭력의 현실에서 모두가 희생자임을 간파한다. 그리고 지금도 둥글지 않은 세계에 사는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는 ‘괴로운 진실’을 목도하라고 설파한다. 인간의 존엄함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유령들』이 소환하는 ‘유령들’의 증언을 듣고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편집자 리뷰

■ 불편한, 불편해서 잊혔다고 믿고 싶어 하는, 그러나 잊힐 수 없어 사라질 수도 없는 끔찍한 시간들
  시집 『유령들』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꿈틀거린다. 노예로 팔려 가는 흑인의 입을 빌려, 킬링필드로 아버지를 잃은 캄보디아 소년의 입을 빌려, 이라크 아낙의 입을 빌려 전쟁과 학살, 폭력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황폐하게 하는지 묘파한다. 아우슈비츠, 난징, 보스니아, 다르푸르, 바그다드 등 시편의 공간적 배경은 전 세계에 뻗어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이 벌인 처참한 시간들은 이들의 울부짖음로 재현된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보장받지 못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유령들”의 울부짖음으로.
 
비 긋고 나면 내일모레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말들 하던데
우리 갈 곳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국경 너머
아직 소식 어둡습니다
어두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난민촌에서 온 편지」에서
  정한용은 가해자의 정황 또한 놓치지 않는다. 월남전 참전 병사가 고국의 어머니에게 전하는 편지 속에는 살인을 ‘학습’해 버린 인간의 광기와 절망이 절절하고, 이라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가 남긴 짧은 메모에는 생존을 대가로 무너진 정신세계가 현현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희생자인 것이다.
  이에 더해 지극히 사실적인 기술로 써 내려간 시편은 이 믿을 수 없는 살인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집행되었음을 증언한다. “민간인 사망 비율/ 1차 대전―10%/ 2차 대전―60%/ 아프간/이라크 전쟁―90%”(「911, 그리고」), “거기에선 삶도 죽음도 가벼웠다/ (중략) 아우슈비츠 유태인들은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루 두 차례 멀건 죽과 열일곱 시간의 노동/ 그걸 견딘 자들도 가스실에서 마지막 운명의 문을 닫았다”(「회색인들」)라는 간명한 숫자와 진술 위에서, 공식 기록으로 남은 역사와 희생자의 절규하는 노랫소리의 대비는 비극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 ‘폭력의 스펙터클’에 가려진 진짜 폭력을 고발하는 진실의 목소리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히도 비극 역시 반복된다.  
 
1980[2005]년 5월, 마침내 불꽃이 타올랐다. 대한민국[우즈베키스탄] 남쪽[동쪽], 광주[안디잔]의 봄은 참혹했다. 총성이 울리자 금남로[바부르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공수 부대[특수 부대]를 피해 흩어졌다. 총알을 맞고 넘어졌다 다시 대검에 찔리기도 했다. 무기를 든 시민군들이 주먹밥[호밀 빵]을 먹으며 버텨 보려 애썼다. 하지만 군부[독재 정권]는 민주화 요구가 확대될 것을 두려워해 무자비한 진압을 결정했다. 결국 피비린내가 휩쓸고 지나갔다. 상황은 끝났다. 전두환 계엄 사령관[카리모프 대통령]은 일부 극렬 용공 폭도[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국가 전복을 기도했으나 진압되었고, 이 과정에서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피해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광주―안디잔」에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사건들은 이러한 참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일어나고 있음을 일깨운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새들의 노래」). “누군가 남아서 이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말해야”(「지옥문」)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오늘과 내일을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말보로맨」). 그러나 그 슬픔마저도 정한용은 껴안아야 할 진실이라고, 견뎌내야 할 삶이라고 말한다. 시인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외면된 진실을 대면한다. 그는 설명하거나 강의하지 않는다. 함부로 교훈을 전하거나 어설피 위로하지도 않는다. 냉엄한 진술로 폭력의 정사와 야사를 관통하며 권력과 미디어의 장막에 가려진 무자비한 현실을 가리킬 뿐이다. 자아의 밑바닥에 침잠해 있는 우리 문학의 현주소에서 외면된 진실을 대면하고 세계를 재구성해 나가려는 의지가 투철한 정한용의 시집 『유령들』은 분명 두드러진다.

■ 추천의 말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걸프전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냐?”라고 물었다. 음모론이 아니다. 가상 현실이 현실을 대체했다는 반어법일 것이다. 텔레비전과 영화, 디지털 미디어가 세계를 재구성하는 시대에서 모니터는 재현과 소통의 거의 유일한 프레임이다. 타자의 정치학이 놓쳐서는 안 될 신종 바이러스가 바로 이 모니터-프레임이다. 지구는 더 이상-아직 둥글지 않다. 인간은 더 이상-여전히 존엄하지 않다. 폭력이 거대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한, 피해자와 가해자는 왜곡, 변질된다. ‘폭력의 스펙터클’과 폭력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스펙터클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관계를 단절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소비하는 스펙터클 대부분이 권력과 결탁한 거대 미디어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보여지는 것만 볼 수 있다.
『유령들』은 우리에게 낯익은 모니터-프레임이 아니다. 소파에 기대어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동영상이 아니다. 『유령들』의 시적 주체가 움켜쥔 카메라는 종군 기자, 아니 거대 미디어 그룹에서 뛰쳐나온 1인 미디어, 즉 독립 언론의 카메라다. 『유령들』은 한국 현대시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카메라-프레임이다. 걸프전은 실제로 일어났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 갔다. 그리고 지금도 둥글지 않은 지구 곳곳에서 신과 정의, 민족과 평화의 이름으로 야만이 야만을 부르고, 폭력이 폭력을 낳고 있다. 『유령들』은 돌연 카메라를 우리에게 들이댄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인간인가. 당신이 인간이라면, 이 무자비하고 또 일상적인 폭력 앞에서 왜 분노하지 않는가. 대체 어인 이유로 절망하지 않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저 폭력(성)이 과연 우리의 외부인가. 저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연 타자인가.
―이문재(시인)
 
정한용의 시집은 불편한, 불편해서 잊혔다고 믿고 싶어 하는, 그러나 잊힐 수 없어 사라질 수도 없는 끔찍한 시간들로 붐빈다. 난징 대학살, 아우슈비츠, 5‧18 광주, 9․11과 아프간 전쟁……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들끼리 벌인 처참한 시간들을 시인은 왜 새삼스럽게 한곳에 집결시키고 있는가. 시의 언어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낼 수 있는가’가 정한용이 택한 질문의 방식이다. 시의 언어는 참사를 직접 당했던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목소리로 그 시간들을 다시 보여 준다. 한없이 애달픈 인간의 것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씻김굿이나 진혼곡 속에 놓이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시킬 뿐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승 누군가의 “온몸의 주름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때 “새처럼 따라” 울며 존재한다. 그러므로 보고서 형식의 기록과 유령들의 목소리의 대비 속에서 시의 언어는 거대한 침묵으로 변환된다. 3000…… 40000…… 377400…… “숫자에도 입이 있다.” 빙산을 거느린 일각의 칼끝이 우리 앞에 막 도착했다.
―이원(시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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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195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1985년 《시운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현재 문학동인회 ‘빈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시집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나나 이야기』, 『흰 꽃』과 평론집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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