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

김수영, 김춘수, 김종삼, 이성부, 강은교, 장정일, 허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9월 22일 | ISBN 978-89-374-4594-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98 · 112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 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오늘의 시인 총서 앤솔로지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민음사의 전통을 보여 주는 시리즈인 ‘오늘의 시인총서’ 출간 50주년을 앞두고, 시를 통해 지난 반세기의 감수성을 되새겨봄과 동시에 추억 속에 잠겨 있던 시집을 꺼내 다시 읽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기획된 책입니다. 오늘의 시인 총서로 시집을 출간한 6명의 시인과 내년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인 등 모두 7명의 시 5편씩, 총 35편의 시를 수록한 시 선집입니다. 제목은 이성부 시 「우리들의 양식」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늘의 시인 총서’는 민음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시 선집 시리즈입니다. 1974년에 출간된 김수영 시선집 『거대한 뿌리』가 1번이었죠. 어느새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김춘수, 김종삼, 천상병, 오규원 등 한국 현대 시사에 굳건히 자리잡은 시인들의 시를 선별한 선집인 만큼 당대는 물론 이후에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더 낯설고 더 새로운 감각들의 출현을 기다리는 사이, 오래된 시를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정신임임을 상기하며 ‘오늘의 시인 총서’ 앤솔로지를 선보입니다.

김수영, 김춘수, 김종삼, 이성부, 강은교, 장정일을 비롯해 내년 출간을 앞둔 허연의 시에 이르기까지, 일곱 명의 시인이 보여 주는 일곱 개의 언어 속에서 시에 대한 질문을 완성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편집자 리뷰

■시의 일곱 가지 색깔

시는 파격입니다. 김수영 시의 파격성은 모더니즘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파격과 결을 같이 합니다.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거대한 뿌리」)이라고 일갈하는 김수영의 시는 무엇이 시어이고 무엇은 시어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해체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모더니즘의 생생한 현장으로서 김수영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뿌리라고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시는 자유롭습니다. 이때의 자유는 언어로부터의 자유이자 언어로 규정된 사물로부터의 자유를 모두 지칭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꽃」) 시인 김춘수를 모르는 사람도 이 유명한 구절만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김춘수는 언어가 갖는 의미보다 언어의 존재에 깊이 천착함으로써 시가 할 수 있는 사유의 진폭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시는 침묵합니다. 김종삼의 시를 ‘보고’ 있으면 여백으로 가득한 동양화 앞에 선 것처럼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이내 침묵 속에 깃든 적막한 아름다움에 온몸이 전율합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고, 이런 것이 또한 시가 아닐까요. 전부 다 알 것 같은 침묵을 여백으로 안고 있는 시. 내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바로 시라는 미학이 아닐까요.

시는 모두의 것입니다. 개인을 발견하는 것이 시라고는 하나, 개인을 초과하는 공적 존재가 필요할 때 시는 개인을 결합시킵니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벼」)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이성부의 시를 관통하는 것은 가장 공적인 개인입니다. 그러므로 이성부 시의 화자들은 밤이 되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우리들의 양식”을 습득합니다. 시로 만나는 공동체의 정동을 이성부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는 먼지입니다. 강은교의 시는 존재의 바닥을 흐르는 허무의 심연을 통찰하는 허무의 주체를 발견합니다. 시인은 우리의 적이 “전쟁”이나 “부자유”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적은 “끊어지지 않는 희망”이거나 “매일밤 고쳐 꾸는 꿈”, 무엇보다 “아직 살아 있음”이라는 것입니다. 왜 시인은 그 좋은 것들을 오히려 적이라고 할까요. 인간의 실존은 언제나 허무, 공허, 의미의 세계와 싸워지 않으면 금새 추락하고 말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는 뒷면을 비춥니다. 장정일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소비시대로 변모해 가는 세상의 풍속을 재치 있게 풍자합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현존하는 유일한 요정은 샴푸 요정이다.”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저녁 티비 속 광고에 15초간 등장하는 모델 “샴푸의 요정”을 사랑합니다. 매끈하고 효율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어쩐지 군색하고 왜인지 처량한 초상들에서 소비자본주의시대의 이면을 읽습니다.

시는 비명입니다. 그것도 외마디 비명. 허연의 시를 이루는 배경에는 도시와 도시인의 우울이 있습니다. 그의 시가 포착하는 도시인의 내면은 일상과 비일상이 가까스로 공존하는 불안의 전초기지로, 그들은 언제나 자기와의 전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복잡한 인간 내면의 심리적 상흔으로서 그의 시가 스스로에게 불행을 명령하는 존재론적 공황에 다다를 때, 그들이 내는 외마디 비명은 현대인의 출구 없음에 대한 쓸쓸하고도 정확한 발화를 의미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세상에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을 배웁니다. 시가 내 마음에 일으키는 무늬가 무엇인지, 패턴의 질서와 그러한 질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누구도 나 대신 말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낡은 책장 속에 넣어 두었던 시집을 다시 꺼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시작해 보는 겁니다. 시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면서 말입니다.

목차

편집자의 말 5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19

푸른 하늘을 22

거대한 뿌리 24

현대식 교량 27

사랑의 변주곡 29

 

김춘수

꽃 35

꽃을 위한 서시 37

눈에 대하여 39

시1 41

시2 43

 

김종삼

북 치는 소년 47

묵화 48

문장 수업 49

산 50

서시 52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55

밤 58

이 볼펜으로 60

되풀이 63

믿을 수 없는 바다 65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69

자전3 71

봄 무사(無事) 73

저물 무렵 74

우리의 적은 76

 

장정일

샴푸의 요정 81

축구 선수 85

험프리 보가트에게 빠진 사나이 87

하숙 90

햄버거에 대한 명상-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92

 

허연

칠월 99

내 사랑은 101

슬픈 빙하시대2 103

서걱거리다 105

나쁜 소년이 서 있다 107

작가 소개

김수영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1941년 선린상업학교에 재학했다. 이후 동경 성북예비학교에 다니며 연극을 공부했다. 1944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일본에서 귀국, 안영일 등과 연극을 했다. 가족이 있던 만주로 가서 연극 활동을 계속했다. 1945년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으나 한 학기를 다닌 후 자퇴했다. 1946년 《예술부락》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했다. 1949년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참여해 「공자의 생활난」 「아메리칸 타임지」를 발표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북한군 후퇴 시 강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두 달만에 탈출했으나 체포되어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52년 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 교사로 지냈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상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1959년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출간했다. 1960년 4·19 혁명 발발 이후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잡지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선보였다. 1968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수영은 과감하고 전위적인 시작법으로 오늘날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되었다.

김종삼

1921년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토요시마(豊島)상업학교 졸업
1954년 『현대예술』에 <돌각담> 발표
1957년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
1969년 시집 『십이음계』 출간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1979년 시집 『북치는 소년』 출간
1978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출간
1984년 12월 8일 사망
1989년 『김종삼 전집』 발간

이성부

고교시절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경희대 국문과 진학
동아일보 신춘문예 <우리들의 양식> 등으로 등단
<영도> 동인에 참가. 김광협, 이탄, 최하림, 권오운과 함께 <시학>동인 결성
<창작과 비평>에 참여.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현대문학상 수상><백제행><전야><빈 산 뒤에 두고> 등
현재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근무>

강은교

1945년 12월 13일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 백일 만에 서울로 이주. 1964년 경기여자중고등학교 졸업. 1967년 연세대학교 재학시 연세문화상 문학상 수상. 1968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9월 월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 외 2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1970년 사단법인 「샘터」사에 입사, 동년 김형영, 정희성 등과 「칠십년대」 동인지 활동. 1971년 첫 시집 「허무집」(칠십년대 동인회) 출간. 1974년 시선집 「풀잎」(민음사) 출간. 1975년 산문집 「그물 사이로」(지식산업사), 「추억제」(민음사), 역서 「예언자」(K. Gibran, 문예출판사) 출간. 제2회 「한국문학 작가상」 시부문 수상. 1976년 역서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E. Dickinson 시선, 민음사) 출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77년 시집 「빈자일기(貧者日記)」(민음사), 산문집 「도시의 아이들」(진문출판사) 등 출간. 1978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1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입학. 1982년 시집 「소리집」(창작과비평사) 출간. 1983년 동아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교수로 임용, 삶의 터전을 부산으로 옮김. 인도 등 잠시 여행.

1984년 시선집 「붉은 강」(풀빛), 산문집 「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문학세계) 출간. 1985년 산문집 「어두우니 별뜨는 하늘이 있네」(영언문화사) 출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1986년 시선집 「우리가 물이 되어」(문학사상) 출간. 1987년 시집 「바람노래」(문학사상) 출간. 1988년 문학선 「순례자의 꿈」(나남사), 시화집 「어떤 미루나무의 꿈」(영언문화사) 출간. 학위 취득. 1989년 시집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실천문학사), 비평연구집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공저, 세계사) 출간. 1990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1991년 시선집-한국대표시인100인선 「그대는 깊디깊은강」(미래사) 출간. 1992년 시집 「벽 속의 편지」(창작과비평사) 출간. 제37회 「현대문학상」 시부문 수상. 1993년 산문집 「잠들면서 참으로 잠들지 못하면서」(한양출판사) 출간. 1994년 동화집 「하늘이와 거위」(삼성출판사) 출간. 1995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장정일

1962년 경북 달성 출생.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등이 있다.

허연

서울 도심에서 나고 자랐다. 오랫동안 꿈꿔 온 가톨릭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시인의 길을 선택, 스물여섯 살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의 시가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문청들의 교과서이자 청춘의 경전으로 불리는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에서부터 성과 속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실존주의자의 허무를 노래하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광기와 심리적 허기가 불협하며 만들어 낸 시적 착란은 매번 새롭게 아름다운 폐허의 한복판을 만들어 내며 허연의 시가 지닌 독자적 리듬과 독보적 색채의 근간이 되었다.

시집 외에도 『고전여행자의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시의 미소』 등 고전을 탐닉하며 쌓아올린 지성과 취향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명작의 세계를 안내하는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김종철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매일경제신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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